[서평]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산호 그림 / 들녘 / 2020년 7월

좀비 소재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를 끈다. 그래서 새로운 영화 개봉이나 책의 출간이 반갑게 느껴진다. 이번 책도 줄거리를 보자마자 읽어야겠다 했던 책이다. 좀비가 등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구 멸망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지구인이라는 설정까지 되어 있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좀비에게 지구를 넘겨주고 탈출해야 했던 지구인들이 결국 102년만에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는 얘기인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을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그러고보면 그렇게 많은 좀비 소재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내가 만난 이야기들 중에는 좀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좀비를 피해 인간들만 살아갈 수 있는 청정지역을 만들어내 그 구역 내에서 살아가는 결론이 가장 무난한 거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정말 좀비와의 전쟁은 왜 항상 패배일까? 승리하는 이야기는 만들 수 없는걸까? 갑자기 조금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좀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결국 다시 세상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이야기를 만났으면 좋겠다.

이야기는 지구를 떠나 달에 정착지를 만들어 살고 있던 인류는 다시 지구로 돌아와 정착해보기로 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여전히 활동 중인 좀비들을 없애야만 한다. 정찰 결과 10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꽤 많은 수의 좀비들이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K-기준.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좀비들의 환영식(?)에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한차례 소동이 가라앉고서야 본격적인 정착지 건설이 시작된다. 작업을 지시해 둔 기준은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나섰다가 오래전 생존자가 머문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았고 그가 남긴 기록을 발견한다. 사실 현재 달 정착지에서 살게된 1세대 지구인들은 당시에만 해도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기에 과거, 현재의 기록을 남겨둘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후손들은 옛 시절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때문에 어쩌면 이 기록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기준은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과거. 순식간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혼란에 빠졌었다. 기록의 주인공 '나'는 교회 사람들과 기도원으로 들어간다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프리덤 워치라는, 정부에서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진짜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인터넷상에 올려 알리는 사람들 중 몇몇과 함께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커피숍을 요새로 만들고 그곳에 머물게 된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한두달이면 이 소동이 끝날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같은 편끼리 싸우기도 하고,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서울 정도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남은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서 앞으로의 일을 도모해도 모자를 판에 서로를 믿지 못해 싸우다니. 인간은 역시 이기적인 동물이다. 어쨌든,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기록을 읽어나가던 기준은 어쩌면 자신이 지구 정착에 큰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놓고 기록만 읽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어마어마한 좀비떼가 그들을 향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좀비들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걸까? 과연 이번만큼은 좀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무사히 지구에 정착할 수 있는걸까? 정말 꽤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가독성이 좋아 술술 잘 읽혔다. 다만, 너무 열린 결말이라는 점은 그닥 마음에 차지 않았다. 조금만 더 뒷 이야기를 들려주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만큼 어느새 다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쉬웠던 것 같다. 좀비든 귀신이든. 인간이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대상은 같은 '인간'일 뿐이었다. 세상이 망해도 나쁜 인간은 끝까지 나쁜 인간이었다. 이런 나쁜 인간들이나 좀 잡아가지, 하는 생각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