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고나니 저자의 전작 <종이 동물원>은 어떨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언젠가 읽겠다고 책장 한켠에 고이 꽂아둔 책이었는데, 조만간 꺼내들게 될 것 같다. 저자의 상상력, 필력. 진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차분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계속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한번 집어들면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손에 들고 처음엔 살짝 망설였었다. 책에서 풍기는 느낌이 어쩐지 어렵게 느껴졌던 까닭이다. 보통 SF 들이 난해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래서 조금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더랬다.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을 만날까봐.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즘의 나에겐, 쉽게 읽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폭 빠져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주는 책이 가장 최고의 힐링템이다. 과연 이 책은 어떨지. 손에 쥐고 참 궁금해 했더랬다. 본래 첫 느낌이 그러면 잘 안 읽는 편이다. 그 느낌을 무시하고 읽었던 책 중에 안 읽었으면 후회할 뻔 했다 싶은 책이 손에 꼽아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희한하게도. 그래서 읽은 책인데, 안 읽었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이렇게 괜찮은 SF 단편집을 만나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11편의 단편을 묶은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단편집 [은낭전(The Hidden Girl and Other Stories)], 장편 판타지 시리즈 '민들레 왕조 연대기'의 2부인 [폭풍의 벽(The Wall of Storm)] 이 차례로 출간이 될 모양이다. "'민들레 왕조 연대기' 1부는 이미 출간이 되어 있는건가?" 하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아.. '제왕의 위엄'이 1부였었다. 출간 당시 크게 관심있게 본 책이 아니었었는데. 한번 찾아봐야겠다. 어떤 이야기인지. 읽지 못한 시리즈보다 앞으로 출간될 단편집들이 더 궁금하다. 빨리 만나봤으면 좋겠다. 이야기들은 모두 술술 잘 읽혔고, 짧은 SF 드라마 혹은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했다. 모두 단편 드라마나 단편 영화로 제작되어 영상화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현대의 기술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집착과 의존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미리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나면 IT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첫번째 '호', 그리고 싱귤래리티 3부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충격적인 설정도 그랬지만, 이야기 전개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작품들이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들이랄까? 발전하는 기술에 현혹되어 점점더 기계에 의존하게 되는 삶의 끝이 과연 어떠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내가 만난 미래를 다룬 작품들의 대부분은 암울하기만 하다. 인간들은 점차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갔고, 모든 일에 시작과 끝이 있듯,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끝은 결국 지구의 멸망이 될거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의 단편들 또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많은 작가들이 경고하고 걱정하는 우리의 미래. 매해 심해지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면 마냥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가 없다. 이제는 정말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앞으로 계속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될 작가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