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 룸
레이철 쿠시너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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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잘 모르겠다. 폭력과 살해방법을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려 받았으면 싶은 범죄자들이 늘어만 가서 말이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굉장히 뻔뻔하고 당당한 이들도 많다. 뉴스나 기사를 통해 보면 자신의 범죄행각을 굳이 반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문제는 범죄자들의 나이가 점점 낮아지는데도 법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약한 법 때문에 생각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지 않고, 법을 이용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형을 다 살고 나왔을 때 문제가 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법이 힘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고, 공권력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주인공 로미에게 닥친 일을 보면 말이다. 그녀가 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린 아들이 있는 어미로서 아이을 위해서라도 이런 일을 벌여서는 안됐었다. 하지만 그녀를 그지경으로 몰아세운건 피해자인 그 남자였다. 이게 죽어 마땅하다는 의미는 아니나, 그가 한 짓 또한 제대로 법정에서 다뤄졌어야 맞는 거였다.


커트 케네디는 내게 병적으로 꽂혀 있었다. 그 인간은 내 아파트 건물 밖에서 진을 치고 있기를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내가 차를 대는 차고에 들어가 있기. 내가 다니는 구멍가게의 좁아터진 통로에 도사리고 있기. 도보나 오토바이로 나를 미행하기. 그 인간의 오토바이 소리, 고음으로 끽끽거리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흠칫흠칫 놀랐다. 그는 습관적으로 내게 연달아 서른통씩 전화를 걸었다. 나는 번호를 바꿨다. 그가 새 번호를 입수했다. 마스 룸에 찾아오거나 이미 거기 있거나 했다. 다트에게 그 인간 좀 입장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그 사람, 우수 고객이야." 다트가 말했다. 나는 소모품이었다. 돈을 쓰는 남자들은 아니었다. 커트 케네디는 나를 사냥했고,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담당 검사는 피해자의 그 같은 행동이 사건과는 관련 없다고 판사를 설득했다. 그의 과거 행적들이 사건 당일 밤에 급박한 위험을 야기한 것은 아니었고, 그에 따라 배심원들에게는 스토킹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단 하나의 세부사항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 사실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판사였지만 나는 존슨의 변호인을 탓했다. 나를 돕기로 되어 있었으면서 정작 그랬다는 느낌을 들지 않았기에 나는 존슨의 변호인을 탓했다.  - P. 113


제대로 된 변호인조차 만나지 못한 로미는 종신형을 두번이나 선고받고 거기에 6년을 추가로 받았다. 그런데 그녀의 불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들을 데리고 있던 친정엄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이 국가의 보호아래 놓이게 되었고, 이후 아들의 소식을 전혀 들을 수가 없게된 것이다. 교토소 내에서는 그 누구도 그녀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았고, 아들의 소식을 알아봐주려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지정되었던 국선 변호인은 그녀를 귀찮아 하더니 급기야 은퇴를 해버렸다. 스토커 한 명이 몰고 온 불행은 그녀를 끊임없이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것만 같았다. 더 떨어질 곳도 없어보이는데도 말이다. 누구 한명이라도 그녀의 아들에 대한 소식을 알아봐줬더라면, 그녀의 사건을 제대로 다시 수사해서 올바른 판결로 죄의 댓가를 치루게 했더라면. 그녀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텐데.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모두가 한통속이라도 되는 것마냥 그녀의 사건을 엉터리로 끝내버렸다. 로미는 법정에서 존중받지 못했고, 그들은 그녀의 삶을 너무나 쉽게 부숴버렸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이야기는 처음엔 너무 왔다갔다 하는 통에 헷갈리기도 했다. 읽으면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이 부분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결말... 정말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 결말이 딱 맞기는 하지만, 마음 한켠은 불편했고 답답했다. 실제로 로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죄수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결국 억울한 것을 풀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읽다보면 머릿속에 영상이 흘러가는 듯하다. 영화 한편을 보고난 것 같은 느낌. 아, 이래서 이 책이 팝콘과 함께 도착한거구나 싶었다. 이 책을 읽는다면, 팝콘과 콜라 하나를 옆에 두고 있길 바란다. 이 책과 아주 딱 어울리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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