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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미 에브리싱
캐서린 아이작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엄마는 팔을 뻗어 내 손을 꼭 잡고 "난 헌팅턴병으로 죽어가는 게 아냐"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거야. 둘은 엄연히 달라. 난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 병세가 아주 악화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 작정이야. 내 주위의 좋은 것들만 생각하고, 내게 닥칠 미래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거야. 바다에서 수영하고, 케이크를 굽고, 춤을 더 많이 출 거야." - P. 392
날벼락 같이 유전병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 유전병이 언젠가 나에게도 들이닥칠 예정이고, 내 아이에게도 유전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건 바로 싱글맘 제스의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10살 아들 윌리엄과 엄마의 죽기 전 소원인 '윌리엄과 아빠의 돈독한 관계 만들기'를 시도하기 위해 전 남자친구이자 윌리엄의 생물할적 아빠인 애덤이 운영하는 프랑스의 호텔 샤토 드 로시뇰로 여름휴가를 왔다. 사실 제스는 이 5주간의 여름휴가가 탐탁치 않았다. 엄마의 소원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50% 확률로 헌팅턴병 양성이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이 여름휴가는 실현되지 않았을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애덤과 윌리엄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애덤을 만나러 와야했다. 여자친구가 자신의 아이를 낳고 있는 순간에도 바람을 피운 남자를 말이다.
죽어가는 엄마의 모습에서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제스가 안타까웠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녀의 상황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홀로 감내해야 했을 그녀가 짠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애덤이 윌리엄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고, 윌리엄의 생일을 기억하며, 약속된 시간에 윌리엄과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를 하고, 일년에 2~3번 정도 만나기도 한다. 물론 이 정도로 애덤이 아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할수는 없지만, 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부정하고 양육비 지급을 하지 않으며 만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정도의 아빠기는 하다. 하지만 이 관계는 제스와 애덤 두 사람이 서로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당시 제스가 애덤에게 아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한 번 더 그를 이해하려고 했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을까? 아닐수도 있다. 살면서 계속 부딪히고 트러블이 생겨 결국 더 안좋은 상황에서 헤어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인연은 긴 시간 헤어짐이 필연적으로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이러나 저러나 나는 애덤이 그리 괜찮은 남자라 생각되지 않았다. 아이와의 약속을 쉽게 저버리는 모습도, 현 여자친구와 제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며 저울질 하는 모습도.. 참 못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자신들의 마음이 여전히 서로를 향해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제스는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자신의 병 때문에 다시 찾아온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어렵사리 다시 찾아온 기회를.. 이대로 놓치게 될까? <미 비포 유>가 저절로 생각이 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