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 속에 사는 사람‘, 김정태 지음 (체인지업 출판사)

내 눈 속에 사는 사람
김정태 지음 / 체인지업 / 2024년 7월

평소 시집을 자주 접하는 편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 교과서에서 만난 윤동주나 서정주, 김소월, 노천명 등의 시인들이 있었고,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라는 시집으로 유명한 원태연이나 ‘민들레’라는 시를 접하고 너무 좋아서 검색해보니 류시화 시인의 시였다. 국내 시집이 아닌 시집으로는, 일본의 100세 할머니 시바타 도요의 시집 '약해지지마'가 있다. 소수 시인들의 시는 접했지만 평소에 시와 가까워질 계기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시집은 ‘내 눈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배우 김정태님이 쓴 시집이었다.
시를 읽고 나니 모처럼 마음을 울리는 시를 만난 느낌이었는데, 이런 시집이라면 앞으로 시를 가까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는 은유적인 표현이나 상징을 통해 표현이 많이 된다. 읽고 금방 해석되는 글이 아니라 조금은 사유해봐야 그 의미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들이 연속으로 발생하다 보면 “시는 역시나 어려워!”를 연발하며 안그래도 멀어져 있던 시와 더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 시집의 만남은 왠지 반갑기도 했다.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 적당한 은유와 상징적인 표현으로 시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 읽기 좋은 시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경험담 중에서도 가난과 아픔, 이별과 같은 정서를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일까? 시적 화자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던 시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특히나 먼저 세상을 떠나간 소중한 이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담았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글들을 먼저 읽어 보고 본문을 읽어 보는 편이다. 이 시집도 기존 습관처럼 앞의 글을 읽고 제일 마지막장으로 넘어갔다. 그곳에는 ‘해설본- 이렇게 삶은 시가 되고’가 실려 있었다. 문학평론가 박다솜님이 해당 시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담았다. 해당 부분의 내용을 먼저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 시를 읽으면 의미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평소에 시가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마지막에 있는 해설 부분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 보길 추천 드린다.

본문에 있는 ‘중학교 1학년’이란 시는 자신이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5년을 회고하는 시다. 시의 초반부는 화자의 하굣길과 동네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을 담고 있는 그의 시는 다음 연에서 일순간 분위기가 전환된다. 다음 연에는 학교에 신고 갈 마땅한 신발이 없어 신발을 훔쳐 신고 갔다가 엄청 맞았다는 그는, 너무 가난해서 사춘기가 안 왔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가난 때문에 사춘기 조차 느낄 수 없었다는 어린 김정태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가난한 정서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가난했다. 2부에 수록된 ’신혼‘ 시 연작은 신혼에 대한 통념을 아프게 깨뜨리는 작품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신혼을 ‘달콤함’이라는 단어로 상상하지만, 이들 부부의 신혼은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고단한 삶을 견뎌낸 시기로 기억된다. 그 뒤의 작품은 52세 나이에 병으로 운명을 달리한 큰 형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았다. ’형에게’, ‘다시 형에게‘ 시가 형 연작이다. 여동생도 결혼을 하면서 먼 곳으로 떠나게 되는데, ‘진아’라는 시가 여동생을 생각하며 쓴 시다. 해당 시들은 도저한(학식이나 생각, 기술 따위가 아주 깊다) 가족애를 구체화한 시편인 동시에 시적 화자를 떠나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3부는 ‘동대신동 와병인’ 연작은 화자의 투병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화자가 병을 진단 받고 수술을 거쳐 투병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시집 제목이기도 한 ‘내 눈 속에 사는 사람’은 화자의 어머니를 뜻하고 있다.
시 일부분에는 (어머니의) 회귀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해당 부분을 직접 찾아 보시길 바란다.
해당 시집은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특히 사랑과 가족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 시집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어릴적엔 가난으로 인해 어려운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어머니와 큰 형을 세상에서 떠나 보내고, 본인이 암 투병까지 겪게 되면서 힘든 삶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도 배우 김정태이자 시인은 끝까지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이 시집은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도서협찬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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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다시 형에게


봄이

죽을 만큼 살아왔다

그래

너를 빼고

봄만 살아온 거지

​

엎드리고 싶다

저 세상 저 세상

가득찬 이별에게

엎드려 안녕을 고하라는

봄이 새파랗다

​

아프게 등 두드리고

누워있던 그 자리는

지나올 때마다

벌건 불쏘시개 되어 가슴 태운다

미워 말고

그리워 말고

하늘 위 커다란 봄처럼

활짝 웃으며 날아가요

​

장손이자

큰형이자

밑으로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

만 52세 짧은 생

봄처럼 간다

봄처럼 갔다 - 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