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쓰카 에이지 -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오쓰카 에이지.선정우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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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에이지에 대해서는 '스토리 메이커', '캐릭터 메이커' 등의 이야기 작법론을 출간한 작가로 알고 있었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 작법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조금 언급은 있지만 아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도리어 그래서 더 좋았다. 한 번 책을 잡고 놓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 내가 일본 서브컬처에 대해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담 형식은 양동이에 물을 담아서 양동이째 부어주 듯 알짜 정보를 한꺼번에 줘서 좋아하는데 한국에는 대담집 형식의 책이 아직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래 저래 반가운 책이다.

 

오스카 에이지에 대해 나도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 잘 몰랐는데 책 마지막에 오스카 에이지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나오니 이 부분을 먼저 읽고 책을 읽어도 좋겠다. 책 제목에도 나오지만 '오타쿠'와 오스카 에이지는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다방면에 걸친 평론 활동'으로 유명하다. 지은이인 선정우도 오스카 에이지를 비롯한 일본 비평 문화의 성과물들을 국내에 많이 소개하고 싶다고 서문에서 말하는데 나도 대환영이다. 

 

오타쿠에 대해 맨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데 과거에는 오타쿠가 '크리에이터'였는데 지금은 '유저'가 된 것이 치명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오타쿠적인 문화 자체가 일단 종언을 맞이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 다음 주제는 '문화는 국경을 넘는다'인데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출판된 일본 문학이 왜 인기가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오스카 에이지는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같이 한국에서 인기있는 여성 작가들이 10대 문학소녀로서 소녀만화를 경험했던 세대이며 일본의 주부들이 빠져들었던 <겨울 연가> 같은 한국 드라마의 캐릭터 이미지나 스토리 구성은 1970년대 일본 소녀만화와 상당히 비슷한 감각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뭔가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순정만화의 영향이란 여자 아이들에게 대단한 것이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알게모르게 사람들이 꽤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

 

순문학에 대해서 "이미 끝난 장르"라고 표현하고 "굳이 열심히 읽어야 할 까 싶다"라고 말해 많이 놀랐다. 하지만 이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한국만해도 문학은 죽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일본도 이미 만화 잡지의 높은 매출로 문예 잡지나 순문학의 적자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가 국경을 넘는 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운데 국경을 넘으면서 '전체' 나 '역사'로부터 절단되어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참 재미있는 지적이다.

 

일본의 스토리 작가, 만화가, 편집자에 대한 대담 내용도 흥미롭다. 일본 만화는 '편집자의 프로듀서화'가 되어 있다고 한다. 모두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히트작을 내놓는 편집자 대부분은 프로듀서 타입이라고 한다. 프로듀서가 어떤 작가에게 어떤 작품을 그리게 할지, 어떤 소재를 이용해 그리면 좋을지를 미리 선정하는 방식이다. 일본 만화계는 시스템이 거의 완성되어 있는 상태지만 방법론이 문서화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비언어화된 상태로도 방법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충분하고 언어화하려는 의지도 적다. 오스카 에이지는 원래는 만화가를 지망했지만 스스로 창작자로서의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편집자가 되었다고 한다. 오스카 에이지는 작법서를 통해 글을 쓰는 방법은 누구나 학습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캐릭터 소설 쓰는 법>, <스토리 메이커>등의 작법서 내용은 기초 훈련에 해당하는 것이고 여기서 더 나아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100명 이상이 잡지사에 신인 작가로 뽑히거나 잡지에 작품을 게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중에 대작가가 나오는 것은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읽으니 오스카 에이지의 작법서를 읽어보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 (결국 <스토리 메이커>를 샀다!!)

 

한 장을 할애해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오스카 에이지가 진지하게 비평할 만한 가치를 느끼는 몇 안 되는 일본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에반게리온>, 그리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지브리는 비평을 통해 맞서지 않으면 안 될 진지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브리는 <천공의 성 라퓨타> 이후 철저하게 정치적이거나, 혹은 정치적이지는 않더라도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현실에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에서 일본의 입장을 미화했다해서 상당히 논란이되었던 <반딧불의 묘>의 경우도 <토토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내용이 많은데 지브리는 일부러 이 두 작품을 동시에 만들었다고 한다.

 

지브리미술관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2013년에 한국에서도 개최된 <지브리 레이아웃 전>이나 지브리 관련 전람회의 수준은 단지 보고 즐겁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창작자들이 보면 배울 내용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에서 1년 배우는 것보다 지브리미술관에 하루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 만드는 법을 더 제대로 배울 수 있을 정도"라고까지 말한다. (애니메이션 만들기를 지망하는 분들은 당장 지브리미술관에 달려가고픈 충동을 느낄 것 같다) <지브리 에이아웃 전>은 나도 갔는데 보고 느낀 점은 '아마추어가 올 전시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업계 관련 학생이나 종사자가 많이 온 듯 했고 열기도 굉장히 뜨거웠다.

지브리가 대단한 이유는 지브리가 자신들의 상상력에 일체 터부나 선입관을 두지 않기때문이라고 한다. 지브리가 무시무시하다고까지 표현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두 감독이 서로에게 비판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프로듀서였던 다카하타 이사오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키>가 개봉된 직후에 작품을 비파했고 또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비판에 응답했다고 한다. 그 후 이 두 사람의 작품이 동시에 개봉예정이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 <가구야 공주 이야기> 제작이 늦어져서 따로 개봉했다고 한다.

<바람이 분다>는 국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제로센 설계자가 주인공이니 논란이 안 될 수가 없다. 또한 <반딧불의 묘>논쟁과 연결시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밀리터리 취미를 각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는 사람이 많은데 이 점에 대해 오쓰카 에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밀리터리 취미는 분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약점입니다. 그가 가진 '모순'인 것이죠.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밀리터리에 대한 정열을 모순인 채 그대로 그려냅니다....중요한 건 그런 문제로부터 미야자키 하야오가 도망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이 부분은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 개봉 전에 대담 한 내용인데 책을 읽어보고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각자 판단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배경지식이 없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더 자세한 내용이 책에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다.

'창작과 프로파간다'에 대한 대담 내용에서는 한국의 <26년>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프로파간다를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었고 이 부분이 픽션으로서의 의미를 떨어뜨렸다고 분석했다. 프로파간다가 될수록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주전함 야마토>도 그러한 경우인데 점점 우익적으로 되어가며 완전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질도 물론 떨어졌다. '피해자 의식과 정치적 보수화'에 대해서는 일본에 만연한 '피해자 의식'에 대해 비판한다. 일본 국내의 문제를 다른 쪽으로 전환시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일본의 행태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일본의 유명 창작자이자 편집자인 오쓰카 에이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정말 유익한 경험이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이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책이 그리 두껍지 않지만 군더더기가 없어서 많은 지적 자극과 공부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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