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하는 엄마다 - 3050 직장맘 9명의 스펙터클 육아 보고서
권혁란 외 지음 / 르네상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맘 9명이 쓴 일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분명 힘들었다고 써 있겠지,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직업의 다채로움과 화려함에 눈이 갔다. 북마케팅 대표, 신문 기자, 육아교육과 교수, 여행작가, 방송작가... 뭐야, 이거 다 잘 나가는 여자들이 나 이렇게 해서 애 잘 키우고 직장에서 성공했다고 자랑하듯 쓴건가? 삐딱한 시선이 먼저 나온다. 그래도 궁금해서 읽어봤다. 결국 아이 기르며 가정 지키며 일하기는 누구나 어렵구나, 그리고 맨 마지막 글을 읽고는 눈물이 났다. 일하는 엄마도 좋지만 가정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중국동포 도우미에 대해 쓴 '가지 마요, 이모'도 따뜻한 이야기다. 친정 엄마처럼 나를 대해주고 나도 아이들도 함께사랑을 나눈 이모에 대한 글은 읽으면서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족이 아이를 돌봐주기 힘들거나 그 가족 때문에 너무 힘들면 입주 도우미를 꼭 고려해봤으면 한다. 육아에 사람과의 마찰까지 생기면, 더구나 그 상대가 가족이면 두고두고 받을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이가 반에서 회장이 되었지만 바빠서 학교 행사에 못가는 바쁜 엄마. 그런데 반 대표 엄마는 전화를 해서 회장 엄마가 이러시면 안된다고 언짢은 목소리를 내고.... 생판 모르는 이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처지. 내가 생각해도 아이가 어릴 때보다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일하는 엄마들은 더 심각한 갈등을 느낀다. 왜냐하면 아이와 나, 그리고 양육자 정도에서 끝나던 사회적 연결의 고리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확장되면서 갈등유발하는 인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이 친구, 친구의 엄마, 학교 선생님, 등등. 그리고 아이의 공부도 엄마의 발목을 잡는다. 나도 아이가 방학식 하는 날에 아이는 친구들과 놀러가고 싶은데 내가 회사에 들어가야 해서 아이도 집에 데려다 놔야 하면 그것보다 미칠 노릇이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방학식하는 날에는 휴가를 내고 엄마들과 아이들과 놀러 가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기도 했다. 나처럼 날라리 회사원이나 가능하지 바쁜 엄마들으니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은 그냥 '과거'라는 시간일 뿐일까 아니면 아이의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날길까? 이것이 문제로다.

 

남편과 유학을 가서 아이를 기르며 공부하던 유숙열 씨는 유학생 모임에 갔다가 전업 주부들에게 나쁜 엄마 취급을 받는다. 딸을 봐주는 베이비시터가 중국 사람이라고 말하자 중국 사람들은 '더러워서'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말하고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돌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나쁨 영향을 미친다는 요지의 말을 코앞에서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같이 있던 한 엄마가 다음날 편지를 보낸다. 미안하다고. 그 편기를 받고 울었고, 그 편지로 전날의 괴로움이 전부 해소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심지어 아이를 두고 유학까지 가는 엄마는 정말 다 나쁜 엄마인가? 아이는 엄마를 찾는데 남의 손에 아이를 두는 것은 과연 죄책감을 가질 만한 일인가? 아직도 많은 엄마들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지막 이야기인 한연엽 방송작가의 '마음으로 키운 아이'를 읽고나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결혼을 했지만 남편과의 불화로 불행했던 작가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집을 나온다. 돈을 벌어서 아이를 데려갈 날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지만 돈이 모이지 않는다. 겨우 사정이 나아져서 딸 아이가 4살부터 6살 가을까지 아이를 직접 기를 수 있었다. "내 마지막 육아"라고 표현한다. 이 대목에서 정말 눈물이 났다.

 

"딸의 나이 4살부터 6살 가을까지 내 마지막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안정된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을 오가며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 아이를 끼고 잠을 잔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작가라는 직업이 경제적으로 넉넉할 리 없으니 모든 면에서 남편만큼 안정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불편하거나 모자람 없이 아이를 키울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많은 악재가 겹치고 아이를 위한 최선을 선택한다. 집에 있는 시어머니, 많은 형제들, 안정된 경제력에 남편의 아이에 대한 애정. 결국 아이를 보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3년만에 재회. 그녀의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적는다.

"엄마, 앞으로는 울지 말아요. 내게는 엄마지만, 엄마는 여자고 또 인간이니 한 사람을 생각하면 모두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잘 자랐잖아요." 난 그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감사와 행복을 선물 받았다.

 
이 글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 남편이 나를 안 도와줘도 내 곁에 있고 일을 하지만 시어머니가 도와주시고 아이들은 사랑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자라구, 좀 자라구!" 라며 소리를 꽥 지를망정 아이들과 한 방에서 뒹굴며 같이 잔다. 힘들어도 지쳐도 우리는 엄마다. 엄마라는 말 만큼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