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3.11 지진이 났을 당시의 일이 큰 화제가 되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놀이공원 현장에 있던 직원들이다. 공포에 떠는 입장객들에게 먹을 것과 머리에 덮을 수 있도록 큰 인형을 아낌없이 다 내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만약 디즈니랜드가 위계질서에 의해, 누구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구조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결정을 현장에 있던 직원들이 알아서 한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은 분명 다른 면모가 있고 이런 점을 우리는 눈여겨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기운을 읽어내야 한다. 단지 직원 교육이 잘 되었다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왜 선진국인가? 한국은 왜 아직도 선진국이 되지 못하고 자살율이 1위이며 국민들은 썩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즐거운 회사는 한국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가? 직장인으로써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우리 세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다음 세대에까지 이런 말도 안되는 세상을 물려줄 생각인가?


이 책은 인문학서적이다. 내가 하는 일은 소위 말하는 이공계 관련일인데 일에 대한 여러 의문들이 책에 나오는 노자의 말씀으로 해답을 찾았다. 정말 이런 경험은 신난다고 해야 하나 경이롭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대단한 경험이다. 일을 하는데 있어 정답이란 것은 없어보인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들의 변화무쌍함을 규격된 틀에 넣어서 생각하려하고 고민도 많이 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은 이러한 일에 대한 대응 방식에 있어서 극명하게 다르게 행동한다.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은 창의적이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존과 동일한 방식을 고수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지식만을 차용해서 비슷하게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일을 처리한다. 이렇게 일을 하면 일이 재미있을리도 없고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수는 더더욱 없다. 이런 점이 선진국과 우리의 일하는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


또 한국에서는 '우리'를 너무 강조한다. 같은 팀이니까 일을 잘해서 빨리 끝내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늦게 퇴근해야 한다고 하는 논리가 아직도 먹힌다. 아니다. 그건 잘못된 방식이다. 개인주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는 말이 이 책의 핵심이며 우린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우리 하면서 개인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을 살 것인가. 아직 사회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보인다. 그러면 제발 나부터 내 주변부터 잘 해나가도록 하자. 한국 사회가 바뀌기를 원한다면 내가 바뀌고 내 주변을 바꾸면 된다.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자.


우리는 너무 종속적인 삶을 살고 세상을 보는 눈도 너무나 단순하다.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으며 의문도 질문도 가지지 않는다. 과연 이런 사회에 발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저자는 스스로를 대면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글쓰기를 말한다. 영혼의 세속화가 글이며 글은 솔직하게 써야 제대로 나온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운동을 하라고 한다. 모든 것은 실제적인 움직임과 실천속에서만 이루어진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와 세계를 꿰뚷는 힘을 가지고 싶다. 이 세상을 읽지 못하면 진정한 변화나 창조는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조금은 그런 힘을 얻은 듯 하다.


< 인상깊은 대목 >

P.010 '좋아하는 '을 통하면 확실히 보편적인 기준이나 합리적 계산 혹은 객관적 표준 등을 벗어납니다

P.013 자기 생각을 논증하기보다는 이야기로 풀어 낼 수 있는 자, 남이 정해 놓은 모든 것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자, 편안한 어느 한편을 선택하기보다 경계에 서서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자, 바로 이런 자들이 '사람'입니다.

P.023 이전에는 여러 사람의 힘과 재능을 합쳐야 그것이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지요?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이 세계와 직접 관계할 수 있습니다.

P.024 잡스는 지금의 인간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어떤 방식을 통해서 일을 해야 또 어떤 방식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더 행복해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한 사람입니다.

P.026 인간이 움직이는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죠

P.035 어째서 기업인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기울일까요? 제가 보기에 기업인들은 직감적인 감각이 매우 발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P.038 세상사 거의 모든 일은 딱 보고 알아야 합니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대개는 꼬여 버리죠. 저는 우리의 많은 배움들이 결국은 이 '딱!'하고 알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P.041 정작 자신은 제대로 된 똥 한 번 못 싸보고 평생 남이 싸 놓은 똥만 치우는 꼴이 되기 십상이에요. 그럼, 인문학의 목적은 뭐냐? 단적으로 말해 인문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P.064 도대체 인문적 통찰을 하는 관건은 뭐냐?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에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분입니다.

P.065 상상력이나 창의성은 이념이나 가치관의 굴레를 벗고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우뚝 섰을 때 움트는 것입니다.

P.068 사람으로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욕과 식욕이 발동되거나 실현될 때입니다.

P.075 "그것을 왜 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관절 한국 사회는 왜 들먹이나요? 한국 사회는 걱정하지 마세요. 오! 간곡히 말하건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자기는 자기 일만 잘 해결하면 돼요. 자기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는 저절로 잘되게 되어 있어요.

P.078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의 욕망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은 더 헌신적이고 더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윤리적 힘도 바로 거기서 나옵니다.

P.079 자기가 하는 일과 자기 내적인 활동성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사는 일이 불안하고 피곤하며 뭔가 고갈되어 가는 느낌이 들고 총체적으로 재미가 없습니다.

P.097 어떤 아이가 버릇이 없다는 것은 그 아이가 아직 '우리'가 아니라는 말이죠. '우리'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아직 '나'라는 거예요.

P.103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실 버릇없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수 있을 거예요. 익숙한 것, 당연한 것, 정해진 것들에 한번 고개를 쳐들어 보는 일이에요.

P.133 노자는 가치론적 기준을 보편적인 틀로 사용하지 말고, 개별자들의 자발적 생명력이 마음껏 발휘되게 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P.138 노자가 보기에 조직이나 사회의 건강성은 개별적인 각자가 얼마만큼의 자율성을 부여받고 얼마만큼의 자발적 생명력이 허용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P.145 전문가들은 세계를 전진시키는 데 사실 별 역할을 못해요. 오히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론의 틀을 진리로 확신하며 가지고 있으면서 발목을 잡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P.147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식을 무엇에 관한 일정한 형태의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관해서 이해만 하고 적절한 예측을 하지 못하면 그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새로운 사건을 만나서 거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입니다.

P.175 인간이 간직하고 있는 순수한 마음의 상태, 그것을 노자는 덕이라고 했어요

P.187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을 안 할 수 있다면, 이건 대단한 내공이에요. 그래서 공자도 "여기저기서 들은 말을 이리저리 옮기는 행위"를 "덕을 버리는 꼴"이라고 한 것이지요

P.190 인격적 기품과 지적인 성숙 그리고 인문적 통찰, 이것들은 모두 다 하나의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P.192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쉽지 않을 겁니다. 주변 조건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잘 감당을 못할 거예요.

P.194 저는 아직까지는 미국이나 유럽의 몇몇 국가들을 한국보다는 더 선진적인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P.204 누구도 나의 멘토일 수는 없어요. 옛사람들이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고 했듯이, 멘토는 죽이세요. 결국 진짜 멘토는 내 안에 있는 나일 수밖에 없어요.

P.210 훌륭하다고 숭앙받던 사람들이 어디서 무너집니까? 바로 일상에서 무너집니다. 그래서 가장 훌륭한 인간은 구체적 일상을 같이 영위하는 가족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일 것입니다.

P.211 개인들이 행복하면서 그것이 나라를 이루는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입니다.

P.240 낯섦이 발생하는 예민한 상태의 관찰력을 갖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 익숙함과 결별하여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철학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P.241 인문적 사고를 시작한다고 하거나 철학을 시작한다고 하는 것은 낯설게 할 줄 안다는 말이에요. 낯설게 한 다음에 그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지요

P.243 세계는 항상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대답을 요구합니다. 무엇인가 반응하라는 것이죠. 그래서 세계와 나 사이에는 항상 일정한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 궁극적으로는 세계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이 긴장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자기 삶의 실질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P.248 푸코는 근대인을 종속적 주체라고 부릅니다. 좋은 의미로 한 평가가 아니겠지요? 푸코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이와 다르게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주체여야 한다고 봅니다.

P.253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엄에 대한 통철한 인식과 갈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지요. 자신의 욕망을 진실하게 대명합니다. 그래서 천하는 감당할 정도의 함량을 가진 위대한 '초인'으로 등장할 수 있어요. 자기를 위해 사는 존재라야 비로소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지요

P.255 여러분, 거대하고 보편적이고 추상적이고 진리로 치장하는 것들에 속지 마세요. 대개는 사기예요.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에 있느냐? 자기의 덕에 있어요.

P.261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문제의식이 없을까요?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이나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호기심이 없을까요? 욕망이 발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욕망이 발동되지 않을까요? '자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P.263 저는 자기를 대면할 수 있는 기재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글쓰기를 듭니다

P.276 자기를 몸으로 느낄 때가 자신에게는 가장 혀실적입니다.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대면하는 가장 극적인 장치입니다.

P.274 사회나 세계의 흐름을 꿰뚫지 않고서 진정한 변화나 창조는 불가능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사회나 세계의 흐름이란 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입니다. 흐름을 모르면서 하는 변화의 시도는 그냥 수선피우는 것에 불과합니다.

P.283 '봄'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봄'은 없어요. 그냥 개념일 뿐이죠. 얼음이 풀리고, 땅이 부드러워지고, 새싹이 돋고, 푸른 잎이 펼쳐지고, 처녀들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그쯤 어딘가에 그냥 두루뭉술하게 '봄'이라는 이름표를 달아 준 것에 불과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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