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부터 이미 삐딱선을 탔다. 원래 마루야마 겐지는 이런 이미지의 작가다. 아직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한 권 못 읽어봤지만 지금까지의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가다. 마루야마 겐지는 분명 일본 사람이고 이 책의 내용은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 대한 일침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도리어 머리를 끄덕이며 맞어 맞어를 연발하며 읽게 된다. 왜 작가는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고 말하는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왜 지옥이라고 표현하는가. 일본도 한국도 청년 실업과 성장 정체, 국가에 대한 불신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한국은 최근의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국가 시스템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작가는 국가가 힘 없는 국민을 위하기 보다는 있는자들의 손아귀에 놀아난다고 말한다. 이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책임은 국가나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도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만 가고 모험을 싫어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한다. 소중한 자신의 인생을 남의 결정에 다 맡겨버린 꼴을 하고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독설이 이다지도 뜨끔할 줄이야.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변해야 하고 생각없이 살지 말자.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사실 극도의 반어법인지도 모른다. 더 멋지고 신나게 인생을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사냐는 질책이다. 인생은 아름답고 우리도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멋진 삶에의 욕망이 생긴다. '끝내주는 인생 대박이다' 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마루야마 겐지는 정말 멋지다.

 

<인상적인 대목>

P.009 이 육체도 이 성격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것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에 따라 정해진 외적 조건에 불과하지 않은가.

P.014 살아 있는 것의 역사는 곧 재해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P.014 결론부터 말하자면, 항간에 떠도는 지옥이란 바로 이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P.014 오늘날까지 인간은 온갖 지혜를 쥐어짜 문명을 일으켜 왔지만, 그럼에도 웅덩이에 우글거리는 장구벌레와 다를 바 없는 허망한 존재라는 사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P.018 애완동물 같은 귀여움이나 우등생이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면 자식을 완전히 포기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P.020 부모의 희생물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자식이 얼마나 많은가

P.022 자식은 아무튼 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집을 나가야 한다.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그럴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

P.045 고용주가, 단순히 사회적인 값어치를 매기는 데 목적이 있는 학력을 그렇게나 중시하는 까닭은 오로지 순종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P.045 이 넓은 세상에는 다양한 직종이 있고,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이 있다. 그렇게 폭넓은 세상에 살면서 왜 처음부터, 어린 시절부터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왔는가.

P.046 직장인의 처지란 노예 그 자체라는 것을 모르는가. 누가 강제로 끌어가는 것도 아니고, 법률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스스로 노예의 길을 선택하는가. 제정신인가.

P.047 남에게 고용되는 처지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 9할을 스스로 방기하는 일이다. 인생 전부를 남의 손에 빼앗기는 것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과 상여금과 퇴직금을 빌미로 지시에 따르기만 해야 하는 인형 취급을 당하고, 퇴직 후 제2의 인생이라는 거짓으로 점철된 무지갯빛 꿈을 꾸는 동안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P.071 나라를 통치하는 자들은 국민이 국가의 정체를 단박에 꿰뜷어 볼 만큼 현명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이 본심이다.

P.073 인터넷 게임에 정부가 나서서 제재를 가하지 않는 이유는 자유 경제를 활성화해 세수를 늘리고, 호경기의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P.074 텔레비전은 국가의 끄나풀이다 - 텔레비전도 한몫하고 있다.

P.078 자신은 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에만 종사하고 나머지는 전부 아내에게 맡기면 된다는 안이한 정신 상태로, 요령을 부려 가며 너절하게 살아간다.

P.079 탐욕스러운 줄다리기와 서로를 헐뜯고 끌어내리는 일에 열을 올리고, 털끝만큼의 가치도 없는 출세와 명예와 돈 몇 푼을 위해,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자신의 혼을 미련 없이 팔아넘긴다.

P.079 이 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남편과 자식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여자를 현모양처라며 극구 칭찬해 왔다. 그러나 이런 비뚤어진 미학이야말로 남자와 자식을 못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여자 자신을 또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 사람 전체를 못나게 만든 원흉이다.

P.080 인간다움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지성 쪽에 몸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지성이란 합리적인 사고를 가리키니, 즉 이성으로 사는 것이다.

P.082 다른 생물에 비하면 너무도 약하다. 생기도 부족하다. 생명력도 희박하다. 발랄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 수렵 채집 시대에 원시적인 삶을 살았던 당시의 인간은 다른 생물 못지않게 억척스럽고 강인하게 살았을 것이다.

P.082 인간은 분에 넘치는 두뇌를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저항감과 고통을 느낀다.

P.096 자금 없이도 할 수 있는 자영업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그 외의 길은 없는 것처러, 마치 상식 중의 상식이라는 듯이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똑바로 직장인의 세계로 들어간다.

P.097 이 넓은 세상에 다양한 직종이 있는데,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라는 위치를 왜 그렇게 간단히 손쉽게 선택하는 것인가.

P.098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닌 인간 집단에 섞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는가. 일의 내용은 둘째 치고, 음습한 인간관계의 성가심에 시달리다 못해 거기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는가.

P.099 개인의 잠재 능력을 간파하는 안목을 지닌 상사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능력 있는 부하에게 두려움을 느껴, 즉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까 봐 겁을 먹고 질투해 부하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확률이 훨씬 크다. 그런 세계다.

P.099 재미있었던 일도 2, 3년 계속해 절차와 요령을 완전히 익히고 나면 염증이 난다. 그러다 보면 일하는 태도가 느슨해지고, 일 자체에도 질려 정열의 돌파구를 취미에서나 찾는 수밖에 없다.

P.100 생활의 기반인 일 자체가 재미있고 거기에서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지, 안 그러면 살고 있으면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P.105 직장인을 선택한 그 순간 유일하고도 최거의 보물인 자유를 직장에 고스란히 헌납한 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가.

P.107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 안에서만 빛나도록 생겨 먹었다는 철칙을, 그 우선권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떻게 살든 본인 멋대로라는, 자유와 함께하는 삶만이 존재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P.108 출퇴근 전철 안에서 죽은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인생의 절정기는 학교 축제 때뿐이었음을 절감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자유를 스스로 내던졌기 때문이다.

P.115 일본 민족만큼 종교를 좋아하는 예도 없다. 통계에 따르면, 한 사람당 두 가지 이상의 종교에 어떤 형태로든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강한 자라면 누가 되었든 상관없이 따르는, 전통적이고 거의 군생동물적인 사대주의에 여전히 젖어 있기 때문이다.

P.127 마음과 정신과 혼을 갈고닦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분투뿐이다, 그 밖의 길은 없다.

P.135 독재국가는 물론,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 역시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 소수의 것이다. ... 알기 쉬운 예를 들어 보자.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지진해일로 인한 원전사고의 주범인 전력회사의 보스 등이. 그야말로 대표적인 특정 소수이다. ... 그들은 대기업의 꼭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허울뿐인 사장을 뒤에서 조정한다. 사회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드러나지 않는다. 그 탓에 보통은 지명도도 낮고 얼굴고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호화로운 생활상도 연예인이나 졸부들만큼은 눈에 띄지 않는다.

P.137 나라를 실제로 주무르는 자들은 넘치는 자금을 악용해서 목전의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정치가와 관려들을 최대한 이용한다. 관료와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학자와 매스컴, 문화인, 연예인, 평론가 등 많든 적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인종에게 온갖 명목으로 돈을 뿌려 여론을 안정시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국가를 유지한다. 마음대로 나라를 주무르고, 당당하게 세금을 빼돌려 이권을 장악한다. 그렇게 어디까지나 사적인 나라를 구축하고 지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다져서는 그 영예와 영광을 후손에게 물려준다.

P.145 언젠가는 반드시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도발하리라는 망상에 시달리고, 급기야는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이 좀 더 늘어난다면 이쪽에서 전쟁을 일으켜도 좋다는 밑도 끝도 없는 욕망에 이끌려 군사력을 강화하기에 혈안이 된다.그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국민의 불안으로 확산하고, 자신들을 방위하기 위한 군대를 국가를 방위하기 위한 군대라는 대의로 바꿔치기하면서 경제대국이 되지 못한 부담과 굴욕감과 실패를 군사대국으로 만회하려 한다.

P.165 솔직히 말해서, 연애가 연애답게 느껴지는 것은 고작해야 서른살까지다.

P.167 인생의 반려를 제 손으로 선택할 수 없다거나 그럴 마음이 전혀 일지 않는다면 생물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지녔다 하지 않을 수 없다.

P.171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인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조건이다. 발견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또는 그것을 찾아 낼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을 위한 삶인지 죽음을 위한 삶인지가 뚜렷하게 갈린다.

P.172 실제로는 산처럼 많은, 사실상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내던지는 젊은이가 너무 많다. 자신의 인생을 남의 것인 양 하는 것이 편해서 그렇다면, 그만큼 어리석고 아까운 일은 없다.

P.173 우리 뭇 생명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기묘묘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이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다.

P.175 온갖 일에 도전해 보면서 자기 안에 소리 없이 숨겨져 있는, 곤히 잔들어 있는 재능을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

P.176 심히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슨 삶의 공식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젊은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할 시간도 거의 주지 않는다. ... 많은 젊은이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강박관련 비슷한 불안을 느끼고, 무의식중에 안정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인생의 초기 단계에 이미 다른 길은 봉쇄되고 만 것이다.

P.178 우연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사고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아주 당연한, 아니 산 자의 사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근원적인 권리다. 그것을 방기하는 것은 피가 있고 살이 있는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P.180 두개골 안에 꽉 들어차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곰팡이가 피어 버릴 수밖에 없는 된장인가. 더 멋지게,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혜의 샘이 바로 뇌라는 것을 잊었는가. 아무리 애써도 다 쓸 수 없는 양의 뇌를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은 생각하기 위해 태어나고, 생각함으로써 생명을 불태우고, 생각하기에 존재 의의가 있다. 이 확고하고 엄연한 진리를 묵살할 작정인가.

P.185 진정한 목적을 지닌 자는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성가셔 한다. 투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가 생긴 순간 시간이 귀중해서 인간관계를 꼭 필요한 범위로 좁힌다.

P.189 한창 청춘기인 원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하루를 10년처럼 1년을 영원처럼 길게 느낀다. 그들은 생명의 빛나는 옷을 벗는 일 따위는 절대 없으리라는 확신에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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