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일본 속의 한국문화'라는 테마는 무척 매력적이다. 항상 이부분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이 있었지만 관련된 책은 너무 쉽거나 어려웠다. 이런 대중의 욕구를 이 책이 풀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읽기전부터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0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일본편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책이 나오기를 이렇게 기다려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일 것이다. 책을 펼쳐서 다케오, 다자이후 부분부터 읽고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아무래도 가 본 곳에 관심이 먼저 갔다. 내용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행은 풍광을 보는 것이 기본이고 목적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는 과정인데 차 안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로가 서로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을 때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페이지마다 공감이 가는 말들이 가득하다. 최근에 5월에 규슈 지역 여행을 했다. 나가사키에서 다케오, 아리타를 거쳐 후쿠오카를 가는 길에 열심히 풍광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특이한 산이 있어서 사진에 담아두었다. 알고보니 다케오의 유명한 산인 미후네산이었다. 처음에 몰랐다가 책을 보고 알아서 무척 즐거운 경험을 했다.

 

 "이 덴만궁의 야키모치를 먹다보면, 명소엔 전설이 담긴 맛있는 과자나 음식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정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나라 관광지도 이것저것 다 차려놓지 말고 비록 전설이 없더라도 그곳 특산에 맞는 진미의 간식거리로 사람을 불러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분명 우리는 좋은 자원과 천혜의 관광지를 가지고 있지만 관광지란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유홍준 교수의 말대로 "관광객의 주머니를 터는 것도 문화 능력" 이다. 우리는 이 부분이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일본에도 그대로 번역되어 출판될 예정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크다. 일본인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후기를 남길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일본에서 이어령 선생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 이후 가장 화제가 되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규슈를 여행한다면 꼭 이 책을 보고 여행을 가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인식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 인상깊은 대목 >   

P.009 일본의 고대문명이 한반도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P.009 다행히도 일본에는 양심적인 핮가가 많다. 한일 문명 교류사를 객관적 시각에서 보면서 도래인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저서도 많다. 그렇게 사실을 사실로 말할 줄 아는 학자가 있다는 것이 일본문화의 힘이기도 하다.

 

P.027 요시노가리 유적지에 가면 우리 청동기시대가 다시 보일 것이고, 다자이후의 수성에 가면 백제 부흥의 몸부림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새삼 알게 될 것이며, 가라쓰 아리타 가고시마로 가면 조선 도자기가 얼마나 위대했던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P.027 거기에다 일본 여행은 여느 외국 여행과 달리 매사를 우리와 비교하게 만든다. 차창 밖을 보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우적지 가겟방에 들어가서도, 차려놓은 음식상을 보아도, 건물을 보아도, 불상을 보아도, 유적지 정비해놓은 것을 보아도 '우리 같으면'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P.064 방향감각을 갖고 가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 지금 지나가는 도시와 마을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사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여행의 밀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P.072 혼마루에는 천수각이라는 높은 건물이 세워진다. 천수각을 성 중의 성이라 할 수 있다. 외성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면 마지막으로 항거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P.091 무령왕과 왕비 관의 목재가 우리나라에는 없고 일본에는 많이 나는 금송이라는 것은 식물학자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밝혀낸 것이다.

 

P.099 가라쓰는 참으로 아름답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매력적이고 볼거라도 많은 소도시이다.

 

P.102 유물을 직접 확인한 지방의 역사자료관에서든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 마을'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으나 중앙에선 좀처럼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이건 언필칭 중앙에 있다는 일본 학자들이 정말로 잘못하는 것으로, 사실이 아니라 관념으로 세상을 보는 태도에 다름아니다.

 

P.104 일본의 성은 천수각으로 위세를 보여주는 외관에만 치중해서 그 안은 크게 볼 것이 없다. 너절한 유물이나 사진 패널을 늘어놓았을 뿐 성안은 전망대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사카성 외에는 시간이 아까워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풍광과 경관만 즐기곤 한다.

 

P.106 본래 명작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세 가지 필요조건이 있다. 하나는 최고의 기술, 둘째는 최고의 정성, 셋째는 최고의 재력이다. 그런점에서 이 다카토리 저택은 명작이고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남겨졌다.

 

P.114 우리 도자사 연구도 조선 도공과 관련해서는 아리타의 이삼평이 만든 백자에 집중되어 있어 가라쓰야키를 언급하는 일이 별로 없다.

 

P.122 일본은 우리 도자기 기술을 가져다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도자기 왕국으로 발전했는데 우리는 그 원조 격이면서 왜 그러지 못했는가에 대한 한탄이다.

 

P.132 나는 여행 중 버스에서 잠자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여행은 풍광을 보는 것이 기본이고 목적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는 과정인데 차 안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P.137 바쇼라고 아느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한다. 아이쿠라는 것을 아느냐고 물으니 들어보긴 했지만 정확히는 모른다고 했다.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러나 가마닣 생각해보니 교토대 미술사학과 학생에게 김삿갓을 아느냐, 시조를 아느냐고 물으면 아마도 똑같이 모른다고 대답했을 성싶다. 서로가 서로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을 때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P.163 안목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상대평가이다. 그 상대평가는 예술적 안목으로 할 수도 있으나 값으로 할 수도 있다. 본래 미술품을 보는 눈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학(學)으로 보는 눈, 멋으로 보는 눈, 그리고 값으로 보는 눈이다.

 

P.173 우리처럼 개념없이 플라스틱 그릇에 아무렇게나 내놓은 문화,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는 그릇이 어떤 그릇인지도 모르면서 밥을 먹는 문화에서는 생활도자가 발전할 수 없다.

 

P.175 조선에 살 때 이들은 지방가마의 도공으로 천민이었다. 이들은 도자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사도 지어야 했고, 각종 역에 나가 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에 와서 이들은 도자기 기술자, 즉 장인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이 상대한 것은 번주라는 지방 최고통치자들이었다.

 

P.181 우리 같은 사람이 이 한적하고 외진 곳까지 답사와 여행을 가게 하는 것은 역시 일본의 저력이고 문화 능력이다.

 

P.191 규슈 북부를 답사할 때 내가 거점 도시로 삼는 곳은 다케오시이다. 다케오에서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모든 도시들을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다. 동쪽으로는 후쿠오카, 서쪽으로는 아리타와 이마리, 북쪽으로는 가라쓰, 남쪽으로는 나가사키와 연결된다.

 

P.193 역사로 보나 평판으로 보자 다케오와 우레시노 온천의 명성은 허명이 아닌 듯싶고 무엇보다도 벳부나 이부스키 온천처럼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는 대형옥장이 아니라서 더 좋은 인상을 각고 있다.

 

P.200 일본인들이 과거사에 대해 섬세하게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희생을 말하려면 자신들이 피해를 준 것에 대한 반성을 같이해야 더 호소력이 있을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P.212 우메마에모치는 이처럼 따뜻한 전설을 갖고 있어 덴만궁에 가서 이 찹쌀떡을 하나 먹지 않으면 갔다 오지 않은 것처럼 되어서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자리잡았다.

 

P.213 이 덴만궁의 야키모치를 먹다보면, 명소엔 전설이 담긴 맛있는 과자나 음식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정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나라 관광지도 이것저것 다 차려놓지 말고 비록 전설이 없더라도 그곳 특산에 맞는 진미의 간식거리로 사람을 불러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P.221 백제는 왜에 문명을 전해주었고, 그 대신 수시로 군사적 지원을 받은 맹방이었다. 우방도 그런 우방이 없을 정도로 친했다.

 

P.232 사쿠라지마는 언제 또 크게 터질지 모르는 자연재앙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이런 독특한 지질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귤과 세상에서 가장 큰 무가 재배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살고 있으면 관광객들도 쉼없이 드나들고 있다.

 

P.248 선암원의 정원적 가치는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전 안에서 바라보는 사쿠라지마의 환상적인 풍광에 있다. 이 정원의 기본 개념은 인공적인 조원이 아니라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정원 안으로 끌어들인 차경 정원이다.

 

P.251 문화유산을 폐쇄적이로 냉랭한 볼거리로 두지 않고 현재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그 옛날에는 시마즈 가문의 본가였지만 지금은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P.251 선물 가게에 압도적으로 많은 사쓰마야키와 사쓰마 기리코는 관광상품이지만 조잡하기는커녕 하도 예뻐서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값이 만만한 작은 사쓰마야키 병을 두 개 사고 말았다. 그렇게 관광객 주머니를 터는 것도 문화 능력이다.

 

P.263 가고시마에선 이렇게 정치 군사 산업 학문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근대 일본을 일으킨 인물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지금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고시마를 찾는다.

 

P.266 심당길의 후손 심수관은 지금도 당당하게 조선 도공의 후예임을 자랑하면 사쓰마야키 가마를 대대로 이어가고 있고, 박평의의 후손들은 일본인으로 완전히 귀화하여 일본 외교가의 명문으로 변신했다.

 

P.277 조선백자에 기반을 두면서 일본 각자의 유행과 기법을 모두 수용하는 다채로운 사쓰마야키로 나아간 것이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성공에는 번주의 이런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P.279 사쓰마의 도자기산업은 번의 재정 위기를 타개하고 뒷날 막부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P.286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미산마을 입구엔 "미야마의 아이들아 지지 말아라. 힘없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라. 도고 선배를 본받아라"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고 학생들이 행진할 때는 운에 맞추어 이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도고 시게노리는 조선 도공 후예의 또다른 변신이었다. 누구도 그에게 박무덕으로 살았어야 한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P.295 기리시마 국립공원 내 숙박단지에는 14개의 호텔과 여관이 있다. .. 기리시마 이와사키 오텔에는 '녹계탕원'이라는 천연 온천탕이 있었다. 산속 깊은 계곡에 온천물이 콸콸 솟아오르는 둠벙이 여럿 있어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유카타를 입고 달빛 별빛 아래 온천을 즐기기도 한다.

규슈에 오면 이 특색있는 온천이 별미인지라 답사를 와서 온천을 즐기는 것인지, 온천을 즐기자고 답사를 온 것인지 모를 정도다.

 

P.304 버스 속 강의는 참으로 재미있고 유익하다. 졸 수는 있어도 도망가지는 못하기 때문에 수강자의 집중력도 높다.

 

P.306 일본의 식당들은 크든 작든 자기들만의 특생있는 그릇을 내놓는다. 일류 식당조차 플라스틱 반찬 그릇에 스테인리스 밥 그릇을 사용하는 우리네와는 다르다. 그런 도자기문화가 있기 때문에 일본이 지금도 세계 도자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P.321 백제와 왜가 얼마나 가까웠길래 백제 부흥 전쟁에 무려 2만 7천 병력이나 지원했던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스카, 나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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