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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책자 -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3년 4월
평점 :
도쿄는 산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간은 아니다. 산책의 사전적 의미는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 아닌가. 도쿄가 주는 이미지는 산책보다는 거대함과 자본주의, 많은 사람들과 최첨단 같은 것들이다. 번역본인 이 책의 일본어 판 제목은 "도쿄 스트레인저(トーキョー・ストレンジャー )"다. 책에서 저자는 "도쿄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합니다. 상경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이 거리에서는 언제까지고 스트레인저, 그런 기분입니다."라고 말한다. 도쿄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모든 긴장과 경계없이 주변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산책자는 아니다. 날카롭고 새로운 시각을 가진 낯선자, 하지만 그 시선이 결코 부정적이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연민이 깃들여 있다. 우리는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가. 대부분은 너무 익숙한 풍경에 '이 곳은 별 다른 것이 없어' 라며 새로운 세계로의 일탈만을 꿈꾼다.
유명 관광지만 돌아봤겠지 하는 애초의 추측과는 다르게 도쿄를 상징하는 다양한 장소가 등장한다. '샤넬 긴자점' 같은 쇼핑 공간, '진구구장'과 같은 야구장, '고양이 카페' 같은 특이한 공간과 '국회의사당'도 등장한다. 사실 누구도 이 책이 여행서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제목만 보고는 여행지만 나올 것이라고 미리 짐작해버렸다. 선입견이다. 외국 도시 관광에서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시간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소 선택이 대부분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만 들렀다와도 그 도시를 잘 본 축에 속할 것이다. 여건만 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장소에 다 가보면 좋을 것이다. 가슴에 책을 품고.
소개된 장소 중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진보초 고서점가와 하라주쿠, 쓰키지 시장이다. 사실 한번 이상 다 가본 곳이지만 10년전의 시선은 지금은 전혀 달랐다. 앞으로 가게 된다면 (꼭 다시 가 볼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 가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만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예리한 촉이 중요하다. 이 책은 분명 어렵지 않게 잘 읽히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단순히 먹었다, 놀았다라는 여타 가벼운 도쿄 여행서와는 다르게 시대, 역사, 사회, 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본다. 비록 지금 그런 시선을 지니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잠시 이 책과 강상중 교수를 통해 빌리면 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언제나 필요하다.
책의 구성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각 장마다 소개 장소와 강상중 교수의 사진이 있는데 사진에 설명도 달려있다. 알고보니 원래 잡지 [비일라]에 2년 반에 걸쳐 연재한 내용을 단행본으로 낸 것이었다. 덕분에 마치 그 곳에 간 것 같은 생생함과 마치 강상중 교수와 대화 하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강상중 교수가 바라는 도쿄의 미래는 "이방인stranger에게 아무렇지 않게 눈짓하며 살짝 끌어안는 듯한 도쿄" 라고 한다. 도쿄는 분명 그런 매력이 있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