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성팬까지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작품을 논할 수준은 못되고 그가 최근에 보여준 여러가지 놀라운 모습들 때문일 것이다.

 

 

 

첫째로는 2012년 9월 28일 자 아사히 신문에 일본과 중국의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분쟁에 대해 기고를 한 것이다. 그 내용은 잘 알려진 바대로 일본의 센카쿠열도 문제, 독도 문제에 의해 그동안 쌓아온 한국, 중국, 일본 간의 문화적 교류와 공감대 형성이 무너지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둘째로는 최근의 신작 열풍이다. 아직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가 국내외에서 보여준 저력에 부럽다는 생각, 도대체 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매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책이나 매체에서 (정확하게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이 책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추천하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하루키의 수필집을 사 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공감 가는 내용도 많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다른 수필집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작가의 유머에도 한표. 한마디로 재미있다.

 

여러 에피소드 중 '지바 현 택시 기사', '토끼정 주인', 'Can you speak English' 의 내용이 무척 공감갔는데 작가란 역시 여러 사람과 공감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아 그리고 사족 한가지 더. 이 책의 번역이 너무 좋다. 역자는 역시 김난주 씨였다. 하루키의 문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번역가가 아닐까.

 

< 인상 깊은 대목 >

P.035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하는 데 서투른데, 예외로 택시 기사와 얘기하는 것은 싫지 않다. 어차피 내리고 나면 끝나는 관계이니 부담이 없고, 게다가 택시 기사가 하는 얘기 중에는 흥미로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P.043 물론 개인의 취향 문제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전쟁이 터질 때마다 외국으로 뛰쳐나가거나 아프리카의 산에 오르거나 카리브 해에서 청새치를 낚고는 그 일화를 소설의 소재로 삼는 방식을 나는 기꺼워하지 않는다.

 

P.072 야쓰카타케에 가려면 고우미 선을 타야 한다. 고우미 선 전철에는 진짜 여자가 많다. 그런데다 이 지역은 도쿄권과 간사이권이 겹치는 곳이라 도쿄에서 온 여자 군단과 간사이에서 온 여자 군단이 고부치자와 언저리에서 한류와 난류처럼 쿵 부딪친다. 한다탕 난리다. 지옥이다.

 

P.079 초밥집 주인은 되도록 말이 없는 사람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손님이 재료에 관해 물으면 성실하게 대답하는 사람, 이게 가장 우선이다. 그리고 저희끼리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종업원도 영 곤란하다.

 

P.088 이건 사랑과는 무관하지만, '그런 거지 뭐' '그래서 뭐', 이 두가지는 인생의(특히 중연 이후의 인생의) 양대 키워드이다. 경험으로 말하는데, 이 두 가지만 머리에 잘 새기고 있으면 인생의 시련 대부분을 큰 탈 없이 이겨낼 수 있다.

 

P.102 도시의 밤의 어중간한 어둠이 아니라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면 손가락이 까맣게 물들것처럼 완벽한 어둠이다.

 

P.128 소설가 마루야 사이이치 씨가 어느 글에서 초등학생에게 시를 짓게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피력한 적이 있는데, 초등학생에게 표어를 짓게 하는 것도 그에 버금가게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P.139 이 탓에 마주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채나 마련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서글픈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이는 어떻게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P.149 필요에 쫓기면 인간의 몸속에서 특수한 분비액 같은 것이 분출되어 집중력을 높여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내 상상인데, 과학적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치야 어떻든 내 경험상 필요성이 어학 습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p.151 굳이 어린이 영어 교실에 다니지 않더라도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영어 회화쯤이야 반드시 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먼저 나라는 인간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p.185 겨우 400엔에 매일 밤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는 도시에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페라를 즐기는 요령은 첫째든 둘째든 아무튼 많은 오페라를 보고 경험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 대한 이야기 임)

 

p.196 가난은 정말 즐거웠다. 한여름 무더운 오후에 너무 더워 머리가 띵해서 찻짐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마누라와 둘이 '참자'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간신히 집에 돌아가 보리차를 꿀꺽꿀꺽 마시는..... 그런 게 정말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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