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지음, 고은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에서 이 책을 봤을 때 "헛, 무라카미 하루키가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담을?" 하며 얼른 집어 들었다. 알고보니 가와이 하야오라는 일본의 저명한 심리분석가였다. 일본 최고 인기 작가와 심리분석가의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두 지성의 만남이라는 것보다 베일에 싸인 하루키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열망에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많을 듯 하다. 이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물론 하루키의 열성 팬이라면 벌써 알고 있을 내용들이겠지만.

 

잘 알려진바대로 하루키의 영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얼마전 모 일간지에서도 하루키 소설의 인기 비결 중 하나로 영어 번역 공부를 들었다. 하루키가 영어번역 공부를 통해 단어 사용, 문장의 리듬을 타는 법 등 자신의 작품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고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도 영어로 소설을 쓰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그리고 처음 소설을 쓴 계기는 결국 자기 치유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운동을 해서 체력을 단련한다, 문단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주문을 받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 이런 세세한 것들을 마음속에서 정하고 그대로 실천해 왔습니다."라는 말도 인상적이다. 실제로 하루키는 일본 문단에서 이단아로 평가되는 듯 하다. 하지만 가와니시 마사아키의 <하루키, 소설의 마침표를 찍다>에서 저자가 표현 한 것 처럼 "이단이, 정통 없는 시대의 정통이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하루키가 한 말 중에

"제 느낌으로는, 대단히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태엽감는 새>라는 소설을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하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라는 대목이 있다. 지식이 일천하고 소설을 많이 안 읽어본 사람으로써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역시 소설가들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 뿐. 하야오도 "작품은 작가를 뛰어넘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라는 말로 더욱 혼돈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대담집의 좋은 점은 내가 주변 사람들과 절대 나눌 일 없는 수준 높은 대화를 단 돈 몇 천원, 또는 몇 만원에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작가들의 대담집은 많이 보이는데 한국은 이런 대담집류는 많지 않다. 두 지성의 대화를 읽은 것만으로도 전혀 후회 없는 책이다.

 

< 인상 깊은 대목 >

P.12 대학을 나온 뒤에도 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글을 쓰면서 살아왔습니다. 문단 같은 데 관련되는 것도 골치가 아파서 그냥 저 혼자 소설을 썼어요.

P.21 일본인들은 충격을 개인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전체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족 간에 투덜투덜 말다툼을 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P.28 매우 깊은 곳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언어적으로 분석하려고 하면 오히려 상처만 더 깊어질 뿐 치유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P.33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운동을 해서 체력을 단련한다, 문단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주문을 받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 이런 세세한 것들을 마음속에서 정하고 그대로 실천해 왔습니다.

P.35 전혀 다른 풍토 속에서 2,3 년을 지내다 보니까 사고방식과 사물을 보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더군요

P.35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영어로 소설을, 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겁니다

P.43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대명사압니다. 저는 대명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좋은 번역과 좋지 않은 번역이 가려진다고 생각합니다. 대명사란 '개체에 대한 정의'입니다.

P.45 영어로 번역된 제 소설을 읽은 미국인 학생과 얘기를 했는데, 어딘가 공감이 잘 안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나 아시아인 독자는 대체로 일본인 독자와 비슷하게 느끼더군요.

P.56 제가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자기 치료 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P.64 제 느낌으로는, 대단히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태엽감는 새>라는 소설을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하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P.67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P.93 작품은 작가를 뛰어넘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P.96 지금 일본에서 씩씩하고 자유롭게 창조성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요? 현재 일본의 사무라이는 여성들이고, 남성 사무라이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P.102 소설 이외의 미디어가 소설을 뛰어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의 총량이 소설을 압도적으로 능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소설의 참다운 의미와 가치는 오히려 그 느린 대응성과 적은 정보량, 수공업적인 고생(혹은 어리석은 개인적 영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P.125 저도 딱 한 가지 꿈만은 꿉니다. 언제나 공중에 떠다니는 꿈을 꾸는데, 지면에서 아주 조금만 떠 있는 상태입니다. 공중에 떠 있ㅇ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어떻게 해야 뜰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지금 떠보라고 해도 잘 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128 현대라고 할까, 근대에는 가능하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려고 했습니다. 매우 드문 시대죠. 그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인간이 '오래 살' 가능성이 갑자기 커졌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