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수술받지 않는다 - 현직 정형외과 의사가 들려주는 유쾌 상쾌 통쾌한 촌철살인 의료사용가이드 닥터트릴로지 시리즈
김현정 글 그림 / 느리게읽기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나와 동갑인 회사동료가 갑상선암에 걸렸다. 정기검진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역시 건강 검진은 중요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얼마전 TV프로에서 본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 유난히 갑상선암이 많은 이유가 조기검진 때문이며 대부분의 경우 수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동료는 수술을 받았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과연 무엇이 우리의 건강을 위해 중요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판단기준인 것일까.
병원 한 번 안가본 사람은 없으니 의사들과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에피소드를 모으면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정도다.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의사는 부천의 소아과 의사다. 원래 다니던 소아과에서 항생제를 많이 주는 듯 해서 옮겼다. 항상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많은데다 한 사람당 진료 시간이 무척 길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의사랑 15분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엄마들은 아이의 병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다. 환자가 많은 소아과의 경우 이런 장시간 대화라는 호사는 꿈도 못꾼다. 빨리 빨리다. 이 의사는 내가 물어보는 약에 대해서도 여유있게 인터넷 검색을 하고 프린트 해주는 정성을 보인다. 온 동네 엄마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다. 저자도 의료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환자-의사 관계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도 중요하고 정직한 의료는 당연한 것이다. 몇 일 전에 보도된 김해 모 병원의 행태는 경악할 수준이다. 의료기 관련 판매업체 대표에게 무릎을 절개해 인공 십자인대를 삽입하는 수술을 230여 차례나 하도록 한 종합병원 원장에게는 두손두발 다 들 지경이다. 이건 극단적인 예라고 정말 믿고싶다. 아이가 아파 동네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면 인턴이 진료를 한다. 열이 났는데 대뜸 하는 말이 "입원하세요" 아이를 둘이나 키웠다. 절대 입원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약이나 지어주세요." 아이는 약만 먹고 금방 나았다. 우리 동네 소아과 의사가 말한다. "아이가 정말 위급한 경우 아니면 응급실 가서 돈쓰지 말고 다음날 소아과로 오세요. 거긴 인턴이고 저희는 전문의잖아요." 백번 맞는 말씀이다.
의사가 의료계의 치부와 관행에 대해 글을 썼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의사는 아직도 힘있는 위치에 있는 존재다. 더군다나 사람의 생명을 다루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권위의식이나 서비스 정신 부재가 의사들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지 모른다. 진심은 느껴진다. 내가 본 많은 의사들에게서 좋은 면을 많이 봤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간 엄마는 불안하다. 그런 마음을 헤아려 주는 좋은 의사들을 만난 것은 두고두고 큰 기쁨이며 의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주었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지루할 틈이 없이 적절한 예시와 삽화까지 심지어 만화까지 인용하고 있다.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흔적도 보인다. 좋은 책이나 영화를 인용한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블레이드 러너>, <소호강호>를 인용한 것을 보고 반가움에 미소지었다. 우리는 너무 빨리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첨단, 빠름, 신기술 다 좋지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도 느림을 강조한다. 병이 걸리면 고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빠르게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잘라내고 도려내는 수술만이 능사가 아니며 갈아끼운다 한들 원래 내 몸만 못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의료에의 맹신에 찬물을 부으며 정신차리라고 말해준다. 의사가 이런 말을 해주는 10배는 더 고맙다.
"시장에서 불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삶의 자유를 볼모 삼아 일터에서 죽도록 일한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 초를 미친 듯이 연소시키는 행동이다. 덜 벌더라도 덜 소비하는 구조로, 작게 생산하고 적게 쓰는 생활방식으로 가면 해결된다."
의료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철학적인 내용이 많아서 책 전체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우리는 도대체 살기위해 일하는 것일까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일까.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 의료와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건강염려증과 병원이나 약에 대한 맹신을 버리자. 의료와도 균형을 유지해야 우리가 산다.
▷ 마음에 드는 구절
P.13 의료란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다. 나를 치유하게도 하지만 나를 다치게 하기도 한다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P.27 다수의 한국 의사들이 서양 의사들에 비해 감기 치료에 약을 과도하게 많이, 그것도 항생제를 포함해서 자주 처방한다는 것이었다.
P.33 예전 같으면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평생 모르고 지나가 천수를 누리다 죽었을 것을, 첨단 검사법이 온갖 시시한 병들까지 샅샅이 밝혀내는 바람에 졸지에 수술 받는 중환자가 되어 버린다. 굳이 아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P.36 우리 자신의 좋은 건강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발로 걷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살아간다. 자연의 소중한 선물과 생명의 기초를 잃어버렸다. 남은것이라곤 사치품뿐이다.
P.43 자질구레한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살아가려며 '체력'은 물론 '심력'이 중요
P.48 사람은 동물처럼 움직여야 하는 생물이다. 식물처럼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컴퓨터만 한다든지, 가만히 TV만 본다든지, 도어투도어 자동차만 타고 다닌다든지 이래서는 건강이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다.
P.49 평소 영양상태가 좋고 체력을 잘 관리해온 사람은 병에 걸리거나 수술을 받은 후에도 회복이 잘 된다. 결국 낫는 일은 나 하기에 달렸다.
P.52 구두장이는 구두로 사람을 판단하고 양복장이는 양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의사는 엑스레이로 사람을 본다
P.56 인공관절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본래 자연산 관절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전문가라면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P.62 일전에 군병원의 쇄신을 이야기 하며 나왔던 육군참모총장의 인터뷰 기사가 시사적이다. "꾀병도 병이라는 생각으로 성의 있고 친절한 진료로 환자의 질병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P.64 의사는 치유자가 아니라 치료자다. 치유란 환자 몸 안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자연의 섭리이고, 치료는 그걸 도와주는 의료 행위이다.
P.66 근대인으로 살기는 어렵지 않다. 르네상스인으로 살기도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동시대인으로 사는 일이다.
P.70 "내가 먹고 싶어서 먹나? 병원에서 의사들이 주니까 먹지."
P.73 근거주의 또는 근거중심의학이란 간단히 애기하면, 의학적 판단을 할 때 의사의 경험에 의한 직관을 배제하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검토하고 결정하자는 주장이다.
P.79 원래 우리 몸 속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크기가 작은 암들이 생기고 또 저절로 없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우리 몸에서 면역력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덕분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P.81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쉽게 매혹된다.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이는 것. 이것 앞에서 신념이 무너진다.
P.89 어느 보험회사에서 요실금을 실손 해주는 보험을 만들어 많이 판 것이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요실금 수술을 받았다. 그 수술기구를 만들어 팔던 회사는 신이 났다.
P.92 인생은 빨리 가서 어디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는 여정 자체가 목적임을 잊곤 한다.
P.93 사회가 내버려 두질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각자 자신들이 선호하여 선택한 삶이고 생활방식이다.
P.102 의사들의 활달한 태도는 환자들에게도 전염이 된다. 그리고 거꾸로 환자들이 즐겁게 말하면, 의사들도 힘이 난다. '쾌활함'이란 치유력이 엄청난, 보이지 않는 처방이고 약이다.
P.109 "그 사진을 보니, 암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정상 조직과 한 몸이 되어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치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랄까요?"
P.112 "저거 봐라. 사람은 걸어야 한다. 눕혀만 놓으면 멀쩡한 사람도 죽어간다. 사람은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거든."
P.115 큰 차이점은 수술 전후에, 혹은 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환자들의 재활치료에 엄청난 투자와 체계적인 노력을 쏟아 붓는다는 것이었다.
P.118 가장 주축이 되는 두 가지를 들자면, '심폐지구력'과 '근력'이다. 한가지를 더 든다면 '유연성'이다.
P.118 운동 계획을 짤 때에는 개개인의 체력 상황에 맞춰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P.123 인공 삽입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수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다.
P.125 더 좋은 소식은 노력에 따라 시간을 거슬러 되짚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살아있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P.135 매양 절약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 역시 복을 아끼는 것이며 생명을 연장하는 길이다. 내가 서울에 가면 마땅히 이 계책을 쓰리라. - 소동파
P.145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저렴하고 신속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라도 흔치 않다.
P.153 서울이 아프리카의 시골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시계를 되돌려 원시 수렵사회나 삼국시대 농경사회로 되돌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느리게 살 수는 있다.
P.154 역설적이게도, 두 배 느리게 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실은 두 배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건강해지는 삶이다.
P.156 시장에서 불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삶의 자유를 볼모 삼아 일터에서 죽도록 일한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 초를 미친 듯이 연소시키는 행동이다. 덜 벌더라도 덜 소비하는 구조로, 작게 생산하고 적게 쓰는 생활방식으로 가면 해결된다.
P.170 환자-의사 관계는 의료의 진정성을 수호할 우리의 마지막 보루다. 의사들은 스스로 자정하고, 잃어가는 신뢰와 공감을 회복해야 한다. 환자들에게 건전하고 올바른 지침을 알려주고 독려하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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