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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ㅣ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식도락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회자된 것이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일본 식도락 여행만해도 그렇다. 12~3 년만 해도 '일본 식도락 여행'에 관련된 책 같은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해외 여행도 많아지고 특히 일본 여행 같은 경우는 가까운 거리 만큼이나 쉬워진 느낌이다. 연휴나 방학 즈음에는 한달 전 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비행기표를 구하기 힘들 지경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은 일본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는다. 그녀의 독특한 이력만큼 다양한 음식편력을 자랑한다. 최고의 러시아어 통역사로 100번 이상 러시아를 드나든 이력에서만도 많은 이야기가 기대된다. 러시아, 그 동토의 땅, 영하 53도에서 낚자마자 자동 냉동된 물고기를 대패로 밀어 대팻밥처럼 만든 다음 얇게 썬 양파를 버무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먹느 스트로가니나의 이야기는 러시아 미식 체험의 정점을 찍는다. 공산당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간 프라하에서 10세부터 5년간 학창시절을 보낸 특이한 이력은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듯 하다. 이 시절 음식에 대한 추억의 정점은 바로 '진짜 할바를 찾아서'라는 이야기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이 '할바'의 정체에 대해 궁금한 것을 떠나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라고 느끼지 않을 사람이 없다. 우리의 호박엿하고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오묘한 맛이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요네하라가 음식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다양한 백과사전을 참조했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세계 음식 백과> <신 라루스 요리 대사전> <요리예술대사전> 등등. 통역사라는 직업때문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부류의 인간이라고 말할 만큼 음식에 관심이 있어서 인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뛰어난 지적 능력에 '백과 사전 탐독'이라는 비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러시아에서 일 때문에 장기 체류를 하는 경우 어지간히 고국 음식이 그리웠나보다. 하긴 이건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일이다. 어린시절 프라하에 살 때 낫토가 먹고 싶어 삼촌을 통해 낫토균을 공수한 이야기나 한 달 동안 러시아에서 지내며 방송사 사람들과 초밥이 먹고 싶어 초밥 놀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음식도 마치 공기처럼 항상 즐길 수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모르다가 접할 수 없을 때 한없이, 눈물너개 그리워지는 존재인가보다.
음식에 대한 관심과 욕심은 타고난 식성과 집안 내력이라고 소개한다. '고베 식도락 여행'에게 친지들의 추천을 받아 간 식당에서 화려한 식도락을 즐기는데, 이 부분만 읽어도 당장 고베에 식도락을 즐기러 가고 싶어질 정도다. 결국 이 책을 읽고 점심 때 초밥을 먹으러 갔다. 한국의 뛰어난 작가들이 한국 음식 식도락 기행에 대한 책을 내서 외국인에게도 많이 읽힌다면 분명 '음식 한류'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그랬듯이 말이다. 식도락을 즐기던 삼촌이 병석에서도 조카의 식사를 챙기며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주는 대목은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 책에 소개된 일본 책 <베어 먹기 시리즈>가 무척 궁금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에 대해 소개한 책인 듯 한데 이 책을 해외 장기 체류하는 지인에게 주고 왔다가 엄청난 고초를 치른다. 절대 주고 와서는 안되는 책이 음식 책인 것이다.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그 괴로움이란!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영혼에 닿아 있다. 아니 위에 닿아 있다"
자신을 조국에 묶어두는 가장 튼튼한 동아줄은 어려서부터 즐겨먹는 음식이라고 말하며 편의점 음식으로 크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세태를 걱정하기도 한다. 우리도 점점 절기 음식이나 우리의 전통음식,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요리의 횟수는 줄고 외식이나 배달음식, 인스턴스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고 끼니를 위한 수단만은 아닐것이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음식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다양하게 통찰력 있게 풀어나갈 수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도 안겨주었다. 음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자. 그리고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 인상적인 내용 >
P.15 러시아어뿐 아니라 유럽문명권의 언어와 일본어 사이를 통역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발언자 입에서 언제 그리스어나라틴어 관용구면 유명한 시 한 구절이 원어로 튀어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P.94 근처에 하는 한국인 김씨 아주머니께 배운 양배추 김치도 많이 만들어 발코니에 내놓으면 이름 보마지 먹을 수 있었다.
P.97 낫토가 먹고 싶어 미생물학자인 삼촌께서 학회 차 프라하에 오신다는 연락을 부탁드렸더니 낫토 균을 비커에 넣어 가져오셨다. 콩을 어찌어찌 구입하여 시행착오를 거듭하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P.101 20세기 초 정도까지 러시아의 시고에서는 하루 다섯 끼가 표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도 시대 일본 백성들의 하루 두 끼 식사와 비교하면 그 얼마나 사치란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P.120 "아니, 너도 잘 먹으면서 뭘 그래. 살라미 소시지는 거의 핏덩어리잖니"
P.168 남과 같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인지,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식들을 억지로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가 이리도 많은 나라는 아마 일본뿐이리라. 옆집과 똑같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현대 일본의 회사나 개인을 깊이 지배하는 행동원리가 아닐까.
P.178 맛있는 집은 소문내지 않아도 한 번 온 손님은 꼭 다시 올 것이요, 절로 입소문이 나는 법이다.
P.188 나는 어느 똑이냐 하면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루매도 타고난 성향이 아닐까 싶다. 노력으로 어찌 될 문제가 아니기에
P.208 음식에 까다롭지 않아야 한다는 덕목은 오랫동안 일보의 남성상,곧 사무라이의 미의식의 완고한 축을 이뤄왔다. "먹은걸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놈은 남자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P.213 주먹밥 단 한 개로 나는 몇번이나 절망을 추스러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
P.216 글로벌 스탬더드를 외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가 사라질 듯한 요즘이지만, 자신을 조국에 묶어두는 가장 튼튼한 동아줄은 어려서부터 즐겨 먹은 음식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좀 걱정스럽다. 요즘 와서 편의점 음식으로 크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P.227 아버지의 튼튼한 위는 나도 그대로 물려받은 모양이다. 시베리아 취재 중에 말라 비틀어진 샌드위치를 2인분이나 음료수도없이 먹어치운 이래 '쓰바키 히메'(냠냠공주)라는 명예로운 별명으 얻게 되었다.
P.240 바나나 한 송이를 100엔에 살 수있는 지금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1950년대 당시엔 바나나가 얼마나 귀하고 비싼 사치품이었는지 모른다.... 바나나 값은 한 나라 경제가 글로벌 경제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지 같은 것이다.
P.243 "역 도시락은 팔각도시락으로 해라......" 내게는 이 말이 그 일주일 뒤 세상을 뜨신 삼촌이 남긴 마지막 말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