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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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중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이 '해변의 카프카'였다.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작가의 상상력에 놀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생활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그동안 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책은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인생에 대한 회고록이다. 그리고 그 인생의 한 축에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이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면 나중에는 달리기가 하루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달리는 것일까. 그것도 아주 힘든 경기를 수십번 참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설도 쓰고 싶어서 쓴 것처럼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이유 중 한가지는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육체노동에 가깝다는 많은 저명한 작가들의 말을 하루키도 온 몸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나이들고, 체력이 달려서 쓰고 싶은 글을 못 쓰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그건 너무 비극적인 일이니까. 하루키가 참가한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의 자세한 경기 내용 묘사가 많이 등장한다.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극한의 스포츠들. 마라톤 하는 작가는 그리 흔하지 않으니 이런 이야기를 읽을 기회도 드물다. 생생한 글을 읽으면서 나도 달리고 싶어진다. 운동을 해야 겠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아는 가장 감동적인 철인 3 종 경기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를 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와 대단하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트라이애슬론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니 더욱 큰 감동이 밀려온다. 혼자 경기를 하는 것도 힘든데 (힘들다는 표현이 보족할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경기를 하다니. 이 아버지는 왜 이런 힘든 일을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아버지는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극한의 스포츠로 표현하는 것이다.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단련시킨다. 어쩌면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 힘든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키도 육체의 한계를 넘어 정신적인 단련을 추구하고 있는것이다. 우리도 하루키가 달리기로 건강을 유지하며 오래도록 건강하게 좋은 소설을 집필해주기를 기대한다.

 

▷ 마음에 드는 구절

P.19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P.28 고맙게도 예술가의 정점은 사람마다 전혀 다르다. 가령 도스토예프시키는 60년 인생의 마지막 수년간 <악령>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두 권의 장편소설을 썼다.

 

P.37 믹 재거는 젊었을 때 "마흔다섯 살이 되어 <새티스팩션>을 부르고 있을 정도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가 60세를 넘긴 현재도 <새티스팩션>을 계속 부르고 있다.

 

P.41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P.45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54 나로서는 작품이 햇빛을 보게 될지 못 보게 될지 하는 것보다, 그걸 다 써낸 일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P.59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쓰고 싶은 만큼 책상에 앉아 매일 집중해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그리고 힘든 일인가)를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P.63 내가 공부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소정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든 마친 다음, 소위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ㅛ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때달았다.

 

P.65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주의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보다는 소설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의 확립을 앞세우고 싶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사이라기보다 불특정 다수인 독자와의 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었다.

 

P.73 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P.75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라는 진리이다.

 

P.103 사정을 들은 주유소의 아저씨가 화분의 꽃을 꺽어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나에게 건네준다. "수고했어요. 축하합니다!" 이국 사람들의 그런 작은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뭉클하다.

 

P.119 그만큼 혹독한 연습을 견뎌온 그들의 생각은, 그들이 품고 있던 희망과 꿈과 계획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하고. 사람의 생각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그다지도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하고.

 

P.122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면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P.128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면,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P.145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P.152 나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것은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길고 격렬한 격투 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자신에게 이기든지, 아니면 지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P.152 육체가 시들면 (우선 아마도)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그와 같은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기를 바란다.

 

P.175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는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P.180 그것은 '위험스러운 일을 자진해서 맡아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만한 힘이 내 안에도 아직 있었구나' 하는 개인적인 기쁨이며 안도감이었다.

 

P.187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 확실하게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다. 육체의 감퇴라고 하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P.203 즐겁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몇만 명의 사람들이 42킬로미터를 달린단 말인가

 

P.247 물론 시간도 뺏기고 에너지도 소모된다.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본다면 여간해서 정상적인 생활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P.254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고 예상 밖의 일이 발생했어요, 일단 골인해버리면 모든 것은 깨끗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

 

P.255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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