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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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잘 안 읽고 시도 잘 안 읽고 감성 별로 탁월하지 못하고 매사에 딱 부러지고. 그게 나인 것 같다. 이병률은 '끌림'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작가라고만 알고 있었다. 이책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나왔을 때 화제가 된 정도로 알고 있었다. 왜 그럴까하며 궁금하던 차에 읽게 된 이 책의 느낌은 한마디로 '바람 같은 이야기'다. 

 

뭔가 말해 줄 듯 말듯 하고 알 듯 말 듯 한 이야기들이다. 작가의 이야기인지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인지조차 헷갈린다. 6하 원칙은 이 책에서 전혀 존재하지도 존재할 필요도 없다. 그냥 상황이 있고 독자는 상상의 날개를 편다. 음, 이 대목은 일본 인 것 같은데? 왜냐하면 정종이 나오잖아. 이러면서 말이다. 참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 읽고 나서 작가의 약력을 보니 역시나, 시인이구나. 시인의 감성은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당신이다. 부럽기만 한 그들의 감성. 나는 여행기에 이렇게 쓰는데 "고로케를 사 먹었다. 150엔 이었다. 기가막히게 맛있었다" 시인은 이렇게 쓴다. "가을 낙엽을 밟는 소리가 고로케를 씹었을 때 났다. 바스락.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뭐 이렇게? 이것도 부족하구나. 뭔가 더 생각하고 더 매만지고 또 생각한 글이다. 이 책의 글들은.

 

사진과 글이 매치가 안 된 것도 좋았다. 처음에는 사진이랑 글이 따로네 하고 지나갔는데 그게 꼭 일치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글은 글대로 향기를 뿜어내고 사진은 스스로 자체 발광하고 있나니.

여행을 가고 싶어 진다. 몇 달 다른 나라로 훌쩍 가서 살다온다는 작가의 그 자유와 용기에 깊은 감탄을 한다. 어떤 사람은 분명히 자유로워보이지만 떠나지 못한다. 마음이 닫혀 있어서겠지? 여행은 인생이다. 그리고 바람과 같은 것이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처럼.

   

▷ 마음에 드는 구절

*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것이다.

* 아무것도 셈하기 않고, 무엇도 바라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일. 살다보면 사랑도 그렇게 완성될 겁니다.

* 나는 냄새라는 말이 좋다. 샴푸 냄새가 좋아요, 라고 했는데 그건 냄새가 아니라 향이라고 하는 거예요, 라고 나를 가르치듯 따지는 그런 유의 사람을 나는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 예감보다 늦는 이별도 없다. 이별은 예감만큼 잔인하게 온다

* 가능한 한 최대한 느리게 식사를 한다. 평범한 한 끼를 기대하고 들어선 이들에게 살짝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 이 식당의 설정이 아닌가 싶다.

* 나는 이야기에 약하다. 이야기에 무너진다. 그래서 엿보고 엿듣고, 내 여행은 어쩌면 당신의 그런 일들을 받아 적는, 기록인 것이다.

*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백 년 된 기억이 조금씩 끊임없이 섞이면서 빵맛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거란 이야기가 된다.

* 형편없는 상태의 네 빈집과 잔뜩 헝클어진 채로 돌아온 네가 서로 껴안는 것, 그게 여행이니까.

* 이제 몸짓 언어의 벽은 넘은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다른 나라 말을 잘하고 싶다. 사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려면 통역 따위로 번거로움은 없어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 눈발이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몰려왔고 머리 위 철길로 불 밝힌 전철이 지나고 있었어요. 비현실적이며 잔인할 정도의 아름다움이 닥친 겁니다.

* 사실 눈이 내려 쌓이는 세계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다음 생의 높이를 닮아 있기도 하다.

* 최소한의 감정의 재료를 함께 가져간다면 그 어는 곳에도 새로운 인생의 조각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당신은 우리와 이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전화가 고장난 것이다. 잠시 연락이 어려운 것이다

* 고요한 마을에 하루 한 번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은 그 마을 사람들에게 시장 골목이고 작은 극장이며 나무 그늘입니다. 그 시간은 맛있는 풍경을 나눠 먹는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 내가 누군가를 맘에 들어한다는 것은 푸른 바다 밑, 심연 속으로 당신을 끌어내기로 싶어한다는 것

* 인간은 사랑이라는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만 행복으로 건너갈 자격을 얻는다.

* 사랑도 삶도 전부도 아니다. 사랑은 여행이다. 사랑은 여행일 때만 삶에서 유효하다.

* 좋은 것을 바라지 말고 원하는 것을 바라라

* 세상 끝 어딘가에 사랑이 있어 전속력으로 갔다가 사랑을 거두고 다시 세상의 끝으로 돌아오느라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는 상태 : 우리는 그것을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나에 모든 힘을 다 소진했을 때 그것을 또한 사랑이라 부른다.

* 사실 나이 든다는 게 괜찮을 때도 있더라구요. 묵직해져서 덜 흔들리고 덜 뒤돌아보고

*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하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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