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서재 - 한국의 젊은 지성 100명과 함께 읽는 우리 시대의 명저 철학자의 서재 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프레시안 기획 / 알렙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철학이 주는 선입견은 뿌리 깊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거리, 바바리 코트를 입고 몇 일 동안 깍지 못한 수염은 안그래도 푸석해 보이는 얼굴을 더 초췌하게 만들고 있다. 바람이 분다. 코트 자락이 휘날리고 그 남자의 머리칼은 더 헝클어지고 있다.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 이런 정도? 하지만 철학은 애매하거나 낭만적이거나 머리 아픈 학문은 아니다. 어렵게 학문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다. 철학은 우리가 인간의 삶에 대해 잘 알게 해주는 도구다.

서문에서도 이 책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철학에 대한 선입견, 고답적이고 고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감히 자평하고 싶다."고 밝힌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은 철학 책만이 아니다. 어떠한 책이든 철학자의 시선을 빌려서 본다면 충분히 철학적이다.

독립된 글들에 대해 주제별로 엮여 있어서 관심이 가는 글부터 골라 읽었다. 내가 읽어 본 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내용의 다양함에 두번 놀랐다. 책 두께는 숨이 막힐 정도지만 다 읽고 곱씹어 보기만 해도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달라져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솟구친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에서 저자는 "철학 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학문이든, 물질적 생산이든, 소비 사회에서 즐거운 놀이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대답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더 행복해진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챌린저호 참사의 원인이 사소한 고무 패킹 결함이라는 사실을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파인만이 증명을 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최첨단의 물리학이라고 해도 "무식의 전당" 속에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최근 일본의 노벨상 수상과 우리나라의 기초 과학 분야의 부진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서 과학에 관심이 간다.

제 3장의 '자아 찾기, 자신으로 사는 삶'에는 여성을 주제로 한 두 편의 글이 있다. <어머니와 아줌마, 같고도 또 다른 이름 - 동양 여성철학 에세이>에서는 한국 여성들이 "임신, 출산, 수유라는 생물학적 측면과 자녀 양육이라는 사회적 역할, 자애롭고 희생적인 품성 등을 여성의 중요한 자질로 강조해 온 제도화된 모성" 에 갇힐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제도화된 모성은 너무나도 우리의 인식에 깊이 박혀 있다. 일하는 엄마 = 나쁜 엄마 라는 인식을 일하는 여성들 그 자신조차도 가지고 있으면서 심지어는 평생 마음의 짐으로 지니기도 한다.

<알파걸은 결코 모르는 여성의 비밀 - 자기만의 방> 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이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책에서 역설한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여 있다. 여성은 그저 200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다. ...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 이라는 말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여성도 경제 활동을 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일이다. 괜히 아이 학교에서 치마바람이나 날리지 말 일이다.

<낯섦의 체험, 한국과 일본은 왜 운명이 갈렸을까? -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서는 일본의 근대는 번역이 곧 학문이었음을 말한다. 일본은 특유의 기질로 서양의 정보를 미친듯이 흡수했으며 이를 위해서 외서의 번역은 필수 사항이었다.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군사작전 하듯이 서구화를 진행'시켰으며 또한 번역도 맘먹으면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번역을 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와 여건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은 에도 시대의 학문적 성숙이 이를 뒷받침했다고 한다.

<내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투자는? - 행복 경제 디자인>은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을 가진 글이다. 아이들이 어리지만 벌써부터 교육비 걱정이 앞선다. 이런 대한민국 부모들의 고민은 해결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구에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나라가 벌써 존재한다. 바로 독일이다. '원하기만 하고 수학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귀가 솔깃한 말인가. 그럼 벤치마킹 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좋은 '선진 사례'가 있다니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벌써 '독일 할머니'라도 되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랜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고 희망의 끈이 스스르 손아귀에서 달아나는 느낌이다. 결국은 정치가 후져서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이 고생인거다.

철학자의 서재를 들여다 보니 서문에 나온대로 고루하지는 않다. 소개된 책 중에 읽어보고 싶은 책도 많다. 가을 여행을 갈 때 가져 가고 싶은 책. 그런 책들이 철학자의 서재에 꽂혀있었다.

 

▷ 마음에 드는 구절

p.16 배운 자의 고약한 습성 가운데 하나가 자기가 습득한 몇몇 제한적인 개념들로 세장을 재단하고 이렇게 인위적으로 산출한 세계를 진짜로 우기는 것

p.35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알고 죽으려고요." - 소크라테스

p.49 철학자가 철학책만 읽으니까 철학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지게 된다. ... 인문학의 위기는 학문 외부의 무관심 때문에 밖으로부터 초래된 것이 아니라, 학문 내부의 단절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반성적 성찰을 낳았다.

p.58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철학 왜 하느냐"고 질문한다. 아마도 이런 질문은 학문 왜 하느냐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학문이든, 물직적 생산이든, 소비 사회에서 즐거운 놀이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이라도 대답한다.

p.68 자연과학자가 그 사회적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어야 하듯이, 인문학자도 책임 있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는 제반 과학의 탐구 성과에 무지해서는 안 된다

p.185 한국인 각자가 오랜 세월 내면화해 온 유교 전통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을 반성하고 바꾸지 않는 한, 억압 없는 사회체제로의 변화는 물론이고 밝은 미래 사회란 꿈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p.219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은 채 30분도 되지 않는다.

p.280 인간은 무인도에 살아도 당장 필요한것 이상을 소유하는 '사치'를 부리고자 하며, 그러한 사치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p. 281 예술과 문화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의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철저히 계층에 따라 나위어 소비된다는 것이다.

p.285 소비를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가 나아가 인간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

p.312 선하기만 한 사람이 있다믄 그 사람은 신이 아니면 위선자다. - 윌리엄 브레이크

p.434 현모양처란 무능과 불행의 다른 이름이고 내조와 양육은 허송세월의 동의어인 듯하다 - 이문열, <선택>

p.544 짦은 시간 내에 상당한 수준의 번역의 질과 양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메이지 이전 시대인 에도 시대의 학문적 성숙이 번역과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것

p.546 언어에 대한 감각적 이해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추상적인 의미로 도입된 번역어들이 개념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말을 한다.

p. 547 번역은 하겠다고 맘먹으면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번역을 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와 여건이 있어야 한다.

p.637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종류의 불안이 근원적으로 바로 이러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p.647 드라마는 동시대성, 트렌드, 더 나아가 대중의 욕구 혹은 필요가 가장 직접적으로,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는 드라마가 그 시대의 대중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유력한 지표임을 말하며, 또한 우리가 드라마를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p.742 가장 주목할 점은 지은이가 건축가라는 직업이 사람들을 비롯한 주위 환경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투철한 직업 정신과 책임감을 가질 것을 역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756 우리나라가 독일 같은 복지 국가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경제 발전이 충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치가 후진적이라서 그런 거다. 문제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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