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마법의 수프 웅진 세계그림책 14
클로드 부종 지음 / 웅진주니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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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는 마녀 이야기가 있을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마녀에 대한 생각을 한번에 확 뒤집어 놓은 책이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 하하하 하고 재미있게 웃을 수 있는 책이다. 라타투이 마녀는 예뻐지고 싶어 마법의 수프를 만들기로 하고 책을 찾아보았지만 책에는 '어떻게 된 게 공주를 두꺼비나 오이로 만드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마녀는 직접 그 수프를 만들기로 하고 별의 별 재료들을 총 동원하여 수프를 만든다. 밤새도록 가마솥에서, 가스레인지에서 전자레인지에서 '후루룩 마시면 천사처럼 예뻐지는 마법의 수프'를 만들기 위해 간절히 그리고 신이나서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드디어 마법의 수프가 만들어져 한입 떠먹으려는 순간, 마녀는 자신의 마법의 수프를 시험해 보고자 고양이와 박쥐들, 두꺼비들과 생쥐 그리고 부엉이에게 한그릇씩 나눠주고 그들을 모두 금고에 넣었다. 다음날이면 나타날 수프의 효과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다음날 마녀는 금고를 여는 순간 '에그머니'나! 금고 안에는 고양이나 박쥐들 두꺼비들 생쥐 부엉이는 간데 없고 라타투이와 똑같이 생긴 꼬마 마녀들만 일곱이 라타투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그녀는 미녀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배가 고파 소리치는 꼬마 마녀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하하하마녀가 미녀가 되는 꿈을 갖고 행복해하는 장면이나 체념하고 '미녀의 꿈이여' 안녕하는 장면이나 너무나 재미있다. 마녀를 이렇게도 그릴 수 있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친근한 마녀 친구를 하나 얻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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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좋은 형제 한국의 민화 11
이현주 지음 / 국민서관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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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래동화이다. 7살인 우리 딸아이는 이 책을 읽더니 '정말 재미있다'고 한다. 도서관에 꽂혀있을 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책이었는데 내가 빌려오니 그제사 무슨 책인가 하고 보는 것이다. 아이에게 책읽으라 말하는 것보다 아이 앞에 아니 그냥 아이가 있는 공간에 책을 놓아 두는 것이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특히 아이의 기호와 엄마의 기호가 틀릴 경우에.

어찌되었던 우리 아이는 이 의좋은 형제가 볏단을 지고 밤에 딱 마주친 것이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혹 외국 그림책에 익숙해져 있어 별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말이다. 세계화다 뭐다 하지만 아이의 가슴 속에 우리의 정서가 먼저 자리하고 있기를 바란다. 이 땅에서 나고 이 땅에서 자라서 앞으로도 이땅에서 살아갈 아이들이기 때문다. 이땅에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정서를 바탕으로 이땅의 색깔을 제 색깔로 가지고 있을 때만 세계 어디에서도 뒤지지않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

아이가 글을 모를 때는 나도 그림이나 색이나 구성 면에서도 약간 떨어진다고 (외국의 이름있는 그림책보다) 생각해서 전래동화 책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진 것같다. 괜찮은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같다. 이 책은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책인데 내가 우려했던 것처럼 그리 조잡하지도 않다. 일러스트레이션도 깔끔하다. 진작에 관심갖고 찾아볼걸 하는 후회마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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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갚은 까치 한국의 민화 9
김남일 지음 / 국민서관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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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표지의 붉은 색 구렁이가 거부감이 있다. 그림도 칙칙해서 내용의 분위기를 더 음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는 '정말 재미있다'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줄거리를 줄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말할 때 자꾸 '은혜 갚은 생쥐'라고 하는 것이다. 본인은 좀 계면쩍어 했지만 에미인 나는 '이솝우화는 꿰고 있으면서 전래동화는 이리도 모르게 만들었단 말인가'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이솝우화는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지만 이솝은 그리스 시대의 노예였고 이미 이천 여년이나 지나 우리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있는 일방적인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어 자칫하면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하기 쉽기 때문에 너무 어린아이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접근시켜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의 전래동화 또한 그런 경우가 없지않다. 그런데 이 책은 책의 맨 뒤에 여러 각도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남편 구렁이의 원수를 갚으려는 아내 구렁이의 행동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구렁이는 나쁘다고 하는 인식을 뒤집으면서 남편을 잃고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 구렁이의 슬픔까지도 언급하고 있어 아이들이 자칫 놓치고 지나갈 것까지도 친절하게 일러주고 있다. 이런 언급은 부모가 아이의 독서 후 정리를 도와주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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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야, 공차자
김용택 엮음 / 보림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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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심은 솔직하고도 천진스럽다. 빨갛고 둥근 입술을 보고앵두 입술이라 그러더라그럼 윤정이 입술은 앵두 입술이다. 빨갛고 둥그니까.그럼 동수 입술은붕어 입술이다. 이 대목에선 그들을 본적이 없는 나로서도 '큭' 웃음이 나왔는데 늘상 보고 지내던 아이들에겐 얼마나 기찬 표현이었을까?

자연과 함께 살며 또 그 자연을 글감으로 글쓰기 작업을 하니 아이들의 마음이 맑아지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이책을 접하기 전부터도 시골의 작은 학교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도시에서 빡빡한 스케줄을 따라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자연과 유리된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워 우리 아이들도 실컷 자연 속에서 뛰어 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주일에 한번쯤 자연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줘야 겠다는 강한 일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시인의 말마따나 농촌이 사라지고 있고 농촌의 아이들이 사리지고 있는 현실에서 비효율적이란 이유 때문에 교사와 학생이 끈끈한 정으로 묶여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작은 학교가 없어지고 있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아이들이 어쩌면 마지막 농촌의 아이들이며 더이상 이렇게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고 더이상 이런 글쓰기를 하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시인의 위기의식은 이제 폐교 운운하는 마암분교를 보니 현실로 나타니기 시작한 듯하다. 부모-자식 간의 갈등, 사제지간의 불신 그리고 자기를 괴롭힌 친구를 칼로 찔러 죽이는 작금의 세태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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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되고 발이 되고 한국의 민화 10
권정생 / 국민서관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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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좀 다른 이야기였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등에 업힌 앉은뱅이가 욕심을 부리기 시작해 서서히 장님을 속이고 점점 살이쪄가는 앉은 뱅이와 점점 여위어 가는 장님. 결국 장님이 죽고 그제야 낭패를 보게된 앉은뱅이가 후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책은 그 반대이다.

업고가는 장님과 등에 업힌 앉은뱅이는 서로의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샘물에서 금덩이를 발견하고는 서로에게 공을 돌리며 서로 금덩이를 가지라고 양보한다. 그러다가 금덩이를 샘물 속에 던져 버린다. 그러자 금덩이가 물속에서 두개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사람은 금덩이를 가지고 마을로 내려가 초가집에서 소, 돼지를 키우며 농사짓고 정답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부족함을 채워가며 의좋게 사는 것 만으로 부족했을까? 금덩이를 등장시켜 두사람의 우정을 시험(?) 하고 - 결코 금덩이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지만- 급기야 쓸모없다고 생각된 금덩이를 다시 샘물에 던져 버린다. 그러다 금덩이가 두개가 되니 그제사 늙어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구걸하며 살 수 없다는 자각이 생기고 그것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리하여 두사람이 욕심없이 살게되는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전래동화나 우화는 독서 후에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아무런 댓가 없이 그저 하늘의 뜻으로 돌리며 일확천금을 얻는 이야기, 서로에게 양보하다가 다시 던져버리는 것은 어찌 좀 거부감을 갖게 한다. 이제는 욕심없이 산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욕심을 없애라니 차라리 열심히 노력해서 정당하게 최선을 다해서 욕심을 채우라는 편이 설득력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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