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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가수 ‘왁스’의 노래 중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라는 가사가 있다.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현 세태를 잘 표현하고 있어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돈은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지만, 어느 덧 피조물이 창조자를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들은 돈에 목말라하고, 돈은 꽃이라고 하면서 사랑한다. 또 한편의 사람들은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심지어 필요하지 않다고까지 외치기도 한다. 과연 돈이란 뭘까?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도박꾼],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것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인데, 이 중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 제목을 들어볼 정도로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돈을 위해 작품을 썼다는 얘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배경 지식을 갖고 책을 읽으면 훨씬 몰입하기 쉬운 일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작품들, 그리고 돈을 잘 버무려서 쓴 이 이야기는 초보자인 내가 읽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도스토예스키는 생전에 이름 있는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선불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워낙 돈을 잘 썼기 때문이라고 하니 그의 삶이 참으로 고달팠을 것이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가 돈 때문에 처한 상황들과 돈에 대한 생각들을 재미난 시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가난은 ‘볼거리’가 될 수 있고 적선은 볼거리에 대한 입장료가 될 수 있다. 때로 자선은 잔인하고 모멸적인 도락이 될 수도 있다.(42쪽)], [부자에게 베풂이 과시이자 욕망의 실현이라면 빈자에게 그것은 존재 의의다.(45쪽)]라는 저자의 말이 그렇다. 가끔 지하철역 입구나 지하철 내에서 구걸하시는 분들에게 적선을 한 적이 있었는데, 혹 나도 입장료를 내는 마음으로 약간의 돈을 드린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돈에 대해서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에서 몇 가지 특징들을 열거한다. 첫째, 돈은 자유다. 둘째, 돈은 시간이다. 셋째, 돈은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고리다. 넷째, 돈은 힘이다. 이 네 가지 특징 중 두 번째인 ‘돈은 시간이다’라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을 뒤집어서 보고 있다. 그래서 돈과 시간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가 버는 돈이 항상 시간 개념과 더불어 표현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시급이니 일당이니 월급이니 연봉이나 하는 것은, 시간은 돈으로 환산되고 또 돈은 시간으로 환산되는 단순한 산수를 보여준다.
카드 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사회문제로 부상한 지도 꽤 되었다. 카드 빚 자살은 돈은 시간이라는 명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살자는 돈을 당겨쓰고 생명의 시간을 스스로 마감한다. 당겨쓴 돈은 당겨쓴 시간인 셈이다. (174~175쪽)
돈을 당겨쓰는 것이 생명의 시간을 당겨쓰는 일임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는 듯하다. 대부업체들의 광고가 각종 매체들을 통해 언제든지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돈을 빌려준다며 유혹하지만, 그 덫에 빠져 헤어나지 못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사례들을 접할 때는 돈과 시간이 동일함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사실 돈은 물건가치의 교환, 저장 등,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 돈에 각종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는 돈을 우상해야 하지 않겠지만, 또한 돌처럼 볼 필요도, 볼 수도 없다. 러시아 속담에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라고 한다. 돈은 그냥 돈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돈에 대한 지혜가 아닐까?
책을 덮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의 아무 소설이나 집어들고 아무 쪽이나 펼쳐보면 반드시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하는 저자의 말을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