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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부도둑이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무척 흥미롭다. ‘도둑’이라는 말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따위의 나쁜 짓. 또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공부를 도둑질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예외로 논문 표절과 같은 것들은 도둑질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여기서 말하는 공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봐야겠다.
학창 시절, 극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부모님께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은 아이는 없을 것이다. 공부하라는 말은 아이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인데도, 부모님은 계속 이 말씀을 하신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자식을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아이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반발심리가 생겨 공부를 더 멀리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듯하다. 사실 난 부모님께 공부하라는 말을 들었던 적은 너무 놀기 좋아했던 대학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리 큰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았지만, 초중고 시절에 자주 들었더라면 나에게도 부모님에 대한 반발의 행동들이 더 많이 나타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도둑]은 70년을 공부꾼으로 살아온 한 물리학 교수의 자기 이야기이다. 일종의 자선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집안 이야기와 자신의 성장 과정을 비롯한 삶의 과정들을 어렵지 않게 써 내려가고 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초등학교를 중퇴했어야 했던 일, (이 할아버지는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던 분이었다.) 어렵게 중학교에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된 일, 고등학교, 대학교, 공군사관학교, 미국 유학 등의 시기동안 공부와 함께한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온생명’과 자신의 선조인 여헌 장현광 선생과 그의 기록들을 통한 우주론 이야기가 책의 후반부에 자리 잡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공부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부분을 여기에 적어본다.
서로 연관이 분명치 않은 단편적 이론이나 현상에 대한 지식은 결국 내 이해의 공간에서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고 이러 저리 떠돌다가 기억이 소실되면서 모두 날아가고 만다. 그러나 일단 통합적 이해의 토대가 마련되면 새로운 지식은 늘 이것과 연관되면서 토대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통합적 시각의 토대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수준 높은’ 책을 읽어서는 되지 않는다. 많은 곁가지를 걷어내어 굵은 줄거리만 명료하게 연결된, 그러면서도 되도록 평이하게 서술된 책을 구해야 한다. (중략) 전에도 더러 그렇게 느꼈지만 이번에 특히 책을 잘 선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당연히 책에는 좋은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책이 현재 나에게 맞는 책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자기가 현재 알고 있는 수준에 맞추어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서술한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중략) 아는 것을 다시 음미하여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모르는 것을 보고 알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194쪽~195쪽)
공부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무척 중요한 내용들이라 생각했다. 이런 것들을 스스로 깨치려면 아마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인데, 난 이 책으로 쉽게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실천함이 더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말이다.
책의 후반부의 ‘온생명’에 대한 부분은 약간 지루한 면이 없긴 하지만, 물리학자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나 보다 먼저 인생을 사신 분으로부터 배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삶의 활력소도 되고, 다시금 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추스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책을 통해 그 활력소를 얻게 되어 기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