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런 말 하지 마.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

「그럼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 봐」(225쪽)




언젠가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람이 내게 위와 같이 물어온 적이 있었다. 평소 내가 ‘싫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면서 말이다. 난 뭘 좋아하는지 말하려고 했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그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지만, 뭐라고 딱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처음엔 책을 읽는 내내 제목과 내용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는 온갖 불만에 쌓인 사춘기의 인물인데, 그의 우울함이 내게도 전해져 읽는 내내 힘든 기분이었다. 이 책은 1951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엄청난 변혁의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전통적인 강대국이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뛰어넘어 진정한 세계 초강대국의 위치를 갖게 되었고, 사회적 약자였던 흑인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들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소련과의 냉전시대 개막,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사회에는 각종 갈등이 표면으로 나타났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을 안고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은 당시 사회(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의 삶을 잘 풀어내고 있다. 홀든 콜필드는 학교를 비롯하여 주위 환경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지만 쉽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또한 좋아하는 일이 뭔지 물어보는 여동생 피비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다가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노는 가운데 자신은 유일한 어른으로서 꼬마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말에서 그는 상황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회피하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홀든 콜필드는 학교에서도 몇 번 퇴학을 당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실은 붕괴되기 일보직전이라고 한다. ‘학생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된지 오래되었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사랑과 존경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더욱 힘든 세상이 되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한 지는 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은 자라나는 아이들임을 부인할 수 없기에 그들을 학교라는 울타리로 보듬어 안아야 함을 절감하게 된다. 학교의 모습은 아이들을 가두어 놓는 감옥이 아니라 보호의 울타리여야 하는 것 같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홀든 콜필드의 모습에서 이제 그가 학교와 사회에 잘 적응하고, 포기하지 않고 오늘의 힘겨움들을 하나씩 넘어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마지막으로 밤늦게 찾아온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신 엔톨리니 선생님의 메모를 여기 옮겨 적어본다.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쓴 글이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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