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말을 건네다
황진숙 지음 / 부크크(book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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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말을 건네다.] 황진숙 지음 

제목: 아이들이 본 멋진 세상을 그리다.  말하다.


책을 읽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두 권을 더 주문했다. 그림책을 그리고 싶어 꿈꾸는 이와 아이를 그림책처럼 키우고 싶어 할 한 엄마가 생각나서이다.


책을 읽으며 빨리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났다. 어떤 책인지, 어떻게 놀라고 있는지 다른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먼저 이 책을 쓴 이는 황진숙 교사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그림책 수업을 한다. 그들과 함께 했던 그림책 이야기가 책의 내용이다. 예쁘고 귀여울 아이들과 그만큼 예쁘고 신묘한 그림책으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은 좋은 관찰, 좋은 질문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맑고 아름다운 아이들의 목소리와 충만한 상상으로 가득하다. 순식간에 읽어 내려 갈 만큼 쉽지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뛰듯이 읽다가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통해 무한히 상상하고, 그 상상을 기뻐하는 선생님의 존중과 인정 앞에 어마어마하게 멋진 수업을 경험한다.


아이들의 상상에서 놀란다. 그림을 보고 제목을 맞추어 간다. 아이들은 한 없이 쭉쭉 자라올라가는 나뭇가지처럼 뻗는다. 어른인 나는 모르겠다는 말만으로 다음 장으로 넘긴 그림들에 순식간에 댓글 달리듯 제목이 붙는다. 하나같이 감탄이 나온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생각에 얼마나 많은 잔인한 가위질을 해댄 것일까? 자책이 나온다. 저자도 막내딸에게는 그저 잔소리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어른 됨을 속상해한다.


한 아이가 말한다. “콧물이 나서 코가 아팠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아이는 그림책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지금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콧물과 아픈 코를 참아냈다. 결기 가득한 어른의 인내와는 지극히 비교되는, 너무 예쁜 아이의 훌쩍거림에 “정말 힘들었구나~ 그래도 어려운 걸 잘 참고 견뎠네~ 수고했다!”라고 마땅히 먼저 찾아가 격려와 칭찬을 해주고 싶다.


책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장을 덮고 깨어난 듯 정신이 든다. 갑자기 훌쩍 커버린 아들들이 생각난다. 손을 잡아 끌던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멋진 아이의 세상을 함께 바라봐주지 못했던 흘러간 시간이 한 없이 미안하다. 마당으로 나가 들풀의 모습을 봐야겠다. 내가 또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찾아봐야겠다.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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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하나님나라 - 전혀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하나님 나라로 읽는 성경
김형국 지음 / 비아토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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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하나님 나라] 김형국 저. “도시의 하나님 나라, 교회최병유

 

책을 펼쳐들며

저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온라인상에서 모 대기업 회장이 그 교회를 다닌다는 기사를 통해서였다. 자극적인 기사와 인상 깊은 그의 외모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강남의 모 교회를 보며 결국 내 교회 자랑으로 끝났다는 회의를 갖게 되었다. 어차피 그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 그 전철을 따라 자기 목회의 시스템을 자랑하는 것 일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대형교회에서 네트워크사역을 지향하며 교회를 분리했다는 말을 들었다. 대형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참된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가 꿈꾼 공동체는 무엇일까? 그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무엇일까? 그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나들목교회에서 전한 데살로니가전서의 설교이다. 설교이지만 균형과 전문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충분히 들어있다. 간증집이나 설교집 정도의 가벼움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읽는 내내 도전하고, 깨닫게 한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속한 도시의 환경에서 이 시대교회와의 접촉점을 찾는다.

 

1.척박한 환경

데살로니가는 당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때의 도시는 지금과는 다른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도시는 TV에서 보이는 중세의 아름답고 쾌적한 곳이 아니었다. 상하수도 시설의 미비로 오염이 가득했고, 위생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심한악취와 빈부의 격차, 문란한 삶. 집약적인 주거형태로 인해 전염병이라도 돌면 도시전체가 죽음의 공간이 되었다. 데살로니가는 도시였고, 도시는 결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작은 교회였고, 척박한 도시 환경 속에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의 신앙지도를 오래 받지도 못한 어린 교회였다. 그들이 변화되고, 변화된 삶을 살아내고, 그 삶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오늘날 교회 공동체들 속에 차고 넘치는 제자리걸음, 혹은 멈춰버린 신앙의 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는 이 부분을 주목했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관심사이고 그 질문의 끝이 닿은 곳은 복음이었다.

 

2.복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복된 소식이다. 뭐 별로 새로울 것도 없고, 어느 한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비밀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발견한다. 그 부분은 현대교회의 모습에서 복음과 끊어진 고리이기도 하다. 그는 이것을 '데살로니가 현상'이라고 부른다. "죽으면 천국 간다."에서 멈춘 복음이 아니라, 본받고, 행하는 변화의 복음이었다. 도시 속에 사는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배우고 성장해야 할 복음이며, 나들목교회가 나들목교회 네트워크하나님나라 DNA네트워크로 확장되도록 만든 이유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환경은 도시사회가 대부분이다. 도시의 문화는 가인의 문화이고 어둠의 문화이다. 그 속에서 교회는 성장주의와 기복주의를 내세워 고속도로를 달렸고, 이제 기름이 떨어져버렸다. 도시에 꼭 맞는 복음이라 생각하고 너나 없이 달렸던 시기였다. 교회의 강단마다 "긍정의 힘"을 이야기 했고, "잘 됩니다."를 외쳤다. 그리고 지금은 실체가 없는 적을 만들어 공격하다가 한쪽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며 나만의 성을 쌓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그는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보며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해낸다. 한국교회가 멈춰선 지점은 죽으면 천국 간다.”였다. 그곳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지점이었고, 다시 선택해야 할 교차로란 것이다. 그는 복음의 연쇄반응을 데살로니가 현상이라 명명하며 한국교회에 도전한다.

 

3.공동체

그렇다면 그 복음이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바꾸어놓은 것일까? 그것은 공동체였다. 그는 나홀로 신앙에 빠진 이 시대의 교회에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나들목교회가 사라져도 가정이 교회가 된다면, 아니 가정이 교회가 되는 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공동체의 참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 공동체는 교제를 통해 아름다워진다. 서로 교제하고 좋아하는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수직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홀로 예배하며 사라지는 신앙이 아니라,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살리는 복음이 흐르는 곳이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끄는 이와 따르는 이의 교제이다.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 뜻은 거룩이다. 이 한 단어를 통해 그들이 이룬 공동체가 만들어갔던 교회,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헌금, 이웃과의 삶, 구제, 교회의 직책 등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고 흐른다. 그것이 복음의 힘이었고, 그 복음이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지금 이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이 복음을 바라보고 있고, 이 삶을 함께 사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애쓰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 도시에, 그리고 지금 우리 안에 임하셨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 임한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이 책은 그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책은 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를 품고, 살았던 데살로니가 교회와 도시를 살고 있는 이 시대 교회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을 덮으며 나에게 생긴 나는 이 도시 속 교회에서 어떤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는가?”라는 깊은 고민과 희망을 당신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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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
김기현 지음 / 성서유니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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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묵상법]을 읽고


그는 언제나 자신을 소개할 때 이사야 50:4절을 이야기합니다. "학사 에스라" 그가 그의 정체성입니다. 또 하나는 책입니다. 그는 실학자 정약용을 흠모하다 못해 똑 닮아있습니다. 스승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가르침 "삼근계"를 외치며 분명히 지금 이 시간에도 책을 쥐고 있을 것입니다. 학자이며, 책 읽는 사람인 그가 이번에 딱 한 권의 책을 골라 그 책 읽는 법을 써버렸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입니다. 어쩜 이렇게 실용적이고, 편하고 쉽고, 유용할 수 있을까? 그를 똑 닮은 책입니다.

...

이 책의 첫 번째 키워드는 "묵상"입니다. 어떻게 성경을 묵상할 것인가? 를 질문했고, 답을 합니다. 먼저 그는 묵상을 정확하게 정의합니다. 그 정의가 얼마나 정확한지 듣는 순간 마음이 편하고 쉽고, 자유로워집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수많은 성경 묵상과 큐티책들은 성경을 잘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자신만의 비법을 적은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 만의 비법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생소한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런 비법을 몰랐을까?"라고 무릎을 치게 되고, 그 생소하고 새로운 방법이 너무 익숙해서 손뼉을 치게 됩니다.

그가 소개하는 묵상은 성경이 누누이 말했던 것이고, 수 천년 동양의 현자들이 써왔던 것이며, 처음 시작하는 초급자도 할 수 있지만, 말씀에 득도한 도사라 해도 그 방식을 건너 뛸 수 없습니다. 이 정도라면 그가 말하는 묵상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 키워드는 "실천"입니다. 그는 정말 묵상을 통해 한 걸음 더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 걸음이 “실천”입니다. 실천 없는 성경묵상은 공허해지고, 지적유희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가 제시하는 실천은 적용과 기도로 시작해서 나눔과 예배로 확장됩니다.

말씀을 읽고 가까이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난적, 적용은 매번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없는, 항상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손바닥 위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이 뜨거운 감자를 기도로, 나눔으로, 예배로 요리해버립니다. 감자탕에도 넣고, 조림으로도 해먹고, 쩌 서도 먹듯이 적용을 기도와 나눔, 예배로 볶고, 찌고, 조려냅니다. 실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적용을 새로운 접시에 담아 먹기 좋은 요리로 내어놓습니다. 그가 어떻게 묵상을 실천으로 인도해주는지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세 번째 키워드는 “문제”입니다. 저의 말로 바꾸면 “싫증”입니다. 그렇게 좋은 묵상도 하기 싫어지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여러분은 묵상이 하기 싫어질 때, 아니 묵상이 하기 싫어졌다고 말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뭐라고 말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늘 “그래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지... 힘내자!”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답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묵상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고도 성경묵상법이라는 제목을 써도 될까요?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믿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와 성경의 힘을 믿습니다. 묵상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주님의 손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참다운 묵상은 기이한 것을 찾아내는 나의 탁월함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마음과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억지가 가식이 되어 버리느니 멈추는게 낫다고 말합니다. 묵상이 공동체와 성경의 힘을 믿지 않는다면 너무나 빈약한 그릇이 되어서 삶을 담을 수 없게 됩니다.

묵상도 신앙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가야 합니다. 함께 가는 것이 삶입니다. 함께 갈 줄 아는 것이 좋은 신앙입니다. 성경과 공동체, 그리고 인도하시는 성령님과 여전히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 책의 목적은 묵상을 시작하고, 묵상이 자라도록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 저는 확신합니다. 누구보다 친절하고 열정적인, 그러나 때로는 충분히 기다려 멈춰 설 줄 아는, 따뜻하고 유능한 학사 김기현을 통해 묵상의 길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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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고양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김선주 지음 / 이야기books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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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김선주 목사가 쓴 예쁜 책이 도착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함에 그의 프로필을 살핀다. "경직된 교리와 교단에서 벗어난 사람", "시대와 상황 가운데 복음을 사는 사람", "예수를 따름으로 믿으라고 가르치는 사람", "어린이와 청년과 지성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 "목사이기보다 인간이기를 소망하는 사람" 우와...

 

한 때는 큰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무더기로 사서 들었다. 그들의 설교 기술과 성경을 보는 눈, 그리고 사람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얻어내고 싶었다. 한마디로 설교를 잘하고 싶었다. 그들을 흉내내고, 그들의 설교를 사용하고, 그들과 같아지고 싶었다. 닮고 싶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

 

그렇게 20대와 40대초반을 써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내몸에서 그것들을 하나 하나 뜯어내느라 이 고생을 하고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그 버릇이 다시 튀어나온다. 꼭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술로 복음을 이용해 성공해보고 싶었던 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고민에 빠졌다. 어떤 목사가 되어야 할까? 이전에는 분명했다. 설교 잘하는 목사! 리더십이 있는 목사! 그런데 그것은 껍데기였다. 촥촥촥 휘두르며 칼춤을 추는 무희들의 벨수 없는 무딘 칼이란 것을 이제사 깨달았다. 목사가 되기 위해 인간다움을 천시했다. 천사처럼 때로는 하나님이 된 듯 가면을 쓰고 살았다. 넌덜머리가 났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한 인간이란 뻔한 사실이 드러날 까 두려워하는 성가대복을 입은 삐에로가 된 것이다.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 우리는 못하지만 당신은 잘 하고 있다고 추켜세워주는 부추김에 우쫄해 그 좋은 시절을 삐에로로 살았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내가 드러날 까 얼굴을 외면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과 이심전심의 존재인 것처럼 살았다. 열심이 특심이되고, 특심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불처럼 나를 소각시키며 살라버렸다. 재가 되어 망연 자실한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인간으로 사는 법도 모르면서 다른 어떤 것으로 살려고 했다는 것을. 나로 사는 법도 모르면서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런 고민으로 살기 시작한 몇년. 새장처럼 좁아진 생각과 타인의 만족을 내 삶의 기준으로 여기며 살던 불안한 삶을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 것보다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생각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성경이 나를 가둬 버린 삶을 참 좋은 신앙으로 알던 것에서, 크고 넓은 바다를 향해 열린 문처럼,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길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책은 그런 삶을 한참 전에 시작한 한 인간 목사가 처음의 감격과 환희를 지나 이제는 그 넓은 해변가를 맨발로 거닐며 소소하게 던지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가 던져주는 이야기는 허리를 굽혀 주운 반짝 반짝 눈에 뜨이는 조개껍질과 불가사리와 반들반들하게 씻긴 작은 돌과 같다. 스쳐간 사람들과 달리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탄하던 생각들을 옮겨놓았다.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당신은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이 책제목도 그가 주운 작은 조개껍질과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손에 얹어서 보여주어야만 고개가 끄덕여지며 "그렇구나"를 연발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목사이기보다 인간이기를 소망하는 한 사람의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대들도, 분명 나처럼, "우와~"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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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앤서니 르 돈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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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르 돈 [역사적 예수 :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제목 "다윗에게는 칼이 없었다."  최병유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에 대한 소개는 이 책의 성격과 방향성을 담고 있다. 앤서니 르 돈은 역사철학, 역사적예수, 사회기억이론, 유대인-그리스도인의 관계에 관심이 있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이 책은 정확하게 그의 관심사를 따라 전개된다. 역사철학의 배를 타고 과거로 향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여정이 의외의 곳이다. 성경도 아니고, 역사적 예수도 아니다. 예수를 기록한 이들의 '기억'. 그 기억으로 향한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예수를 기억하는 그들에게로 걸어간다. 그는 이들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예수를 풀어내는 모험을 이 책에서 시작한다.

 

1. 우리는 내가 가진 기억과 다른, 타인의 기억을 만날 때 당황한다.

수양관에 담당목사로 부임하고 2달만에 재정집사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장례를 직접치뤄주었고 남겨진 미망인과 어린아들을 성심껏 대했다.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그 가정이 평안하기를 축복했었다. 그러나 그 즈음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고 원치않는 편가르기가 시작되었다. 그 바람은 수양관에도 불었고, 직원들도 서로 나뉘어져 반목했다. 결국 한 쪽은 짤려나갔고, 다른 한 쪽은 눈치를 보며 살아남았다. 새로운 직원들이 충원 되면서 미망인 여집사님은 팀장으로 승진되었다. 성실했고, 홀로 남겨졌지만 아름다운 신앙인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여집사님과 마추치고 "집사님 이번에 팀장이 되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정말 잘됐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날 그분의 소식이 전해졌다. 폐암에 걸려 투병중이고 나와 연락이 닿기를 원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 나에게 큰 상처를 받았고, 많이 괴로워하셨다는 것이다. 그럴리가 없는데... 그것은 진심어린 나의 축하의 말 때문이었다. 그때 나의 축하의 말이 그 분에게는 "그 상황에서 너만 좋은 자리 차지했냐~?"는 비아냥으로 들렸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런 오해를... 10여년이 지나서야 풀린 오해가 조금의 짐을 덜어내고 가는 마지막 가는 길이기를 소망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2.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일까?

우리의 기억은 자기의 자리에서 이해된 과거이다. 똑같은 사건을 보았어도, 나와 타인의 기억이 다르게 저장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부정확한 것, 오류가 숨어있는 정보로 치부한다. 우리는 신앙인이다. 그 신앙의 근거는 "성경"이고, 이 성경은 누군가의 기억을 통해 기록되었다. 그들의 기억은 "예수"에 대한 것이었고, 놀라운 것은 성경 스스로의 기록도 같은 예수를 다르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기억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기억이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면, 성경이 보여주는 예수는 신뢰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예수를 성경을 기록한 그들의 기억에 의지해서 신앙해도 되는 것일까?...

이 책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주의"에 근거해서 보았고 해석했다. 이 절대성은 의심받을 수 없으며, 오류가 있어서도 안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시대"가 도래하고 모든 것이 의심받고 해체되는 세상에서 기독교 신앙, 성경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절대주의의 옷을 벗겨내자 성경의 진리도, 그 기록 속의 예수도 양파껍질 벗겨지듯 벗겨져버렸다. 과연 기독교 신앙은, 역사의 예수는 거짓인 걸까? 오로지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의 부정확한 기억에 기대어 우리는 저돌적인 이 도전을 방어할 수 있을까? 골리앗 앞에 잔뜩 기가 죽은 이스라엘처럼 바닥에 바짝 엎드러져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3. 기억은 지각을 통해 해석된다.

그때 다윗이 등장한다. "창과 칼은 내게 없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 놈을 처단하겠다!" 그리고 돌맹이가 날아간다. 그 돌맹이에 골리앗이 쓰러지지만 성경은 말한다. "다윗에게는 칼이 없었다." 다윗은 쓰러진 골리앗에게 성큼 성큼 걸어간다. 그리고 골리앗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뽑아들고 그 머리를 쳐내린다. 다윗은 칼이 없었지만 골리앗의 칼로 그를 제압한다. 오늘 이 책이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포스트모던적 역사가의 옷을 입고 다윗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의 부정확함 뒤에 숨겨진 사실을 증명해낸다. 기억이 없다면, 그 사건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 사건이 다르게 기억되는 것은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라는 책 서문에서 "역사가 무엇인지 또 하나의 대답을 제시해 보려는 의도는 없다. 위대한 역사가들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생각과 감정을 듣고 느껴봄으로써 역사가 무엇인지 밝히는데 도움될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도 역사의 사실 자체가 아닌, 그 역사를 기억했던 역사가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들에게 도움의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전환이다. 방패만으로 버티던 우리에게 방패를 빼앗아던지고, 적의 칼을 우리의 손에 들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공수의 전환을 이뤄냈다는 것에서 놀라운 것이다. 그는 기억이 아니라, 지각을 통해 해석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또 말한다.

 

결론

예수는 어떻게 기억되었을까? 그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일까?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역사적 에수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조금만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설득당할 것이다. 다윗에게 없는 칼을 골리앗에게서 찾듯이, 우리에게 없었던 새로운 칼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칼을 찾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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