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
김기현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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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묵상법]을 읽고


그는 언제나 자신을 소개할 때 이사야 50:4절을 이야기합니다. "학사 에스라" 그가 그의 정체성입니다. 또 하나는 책입니다. 그는 실학자 정약용을 흠모하다 못해 똑 닮아있습니다. 스승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가르침 "삼근계"를 외치며 분명히 지금 이 시간에도 책을 쥐고 있을 것입니다. 학자이며, 책 읽는 사람인 그가 이번에 딱 한 권의 책을 골라 그 책 읽는 법을 써버렸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입니다. 어쩜 이렇게 실용적이고, 편하고 쉽고, 유용할 수 있을까? 그를 똑 닮은 책입니다.

...

이 책의 첫 번째 키워드는 "묵상"입니다. 어떻게 성경을 묵상할 것인가? 를 질문했고, 답을 합니다. 먼저 그는 묵상을 정확하게 정의합니다. 그 정의가 얼마나 정확한지 듣는 순간 마음이 편하고 쉽고, 자유로워집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수많은 성경 묵상과 큐티책들은 성경을 잘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자신만의 비법을 적은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 만의 비법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생소한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런 비법을 몰랐을까?"라고 무릎을 치게 되고, 그 생소하고 새로운 방법이 너무 익숙해서 손뼉을 치게 됩니다.

그가 소개하는 묵상은 성경이 누누이 말했던 것이고, 수 천년 동양의 현자들이 써왔던 것이며, 처음 시작하는 초급자도 할 수 있지만, 말씀에 득도한 도사라 해도 그 방식을 건너 뛸 수 없습니다. 이 정도라면 그가 말하는 묵상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 키워드는 "실천"입니다. 그는 정말 묵상을 통해 한 걸음 더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 걸음이 “실천”입니다. 실천 없는 성경묵상은 공허해지고, 지적유희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가 제시하는 실천은 적용과 기도로 시작해서 나눔과 예배로 확장됩니다.

말씀을 읽고 가까이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난적, 적용은 매번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없는, 항상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손바닥 위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이 뜨거운 감자를 기도로, 나눔으로, 예배로 요리해버립니다. 감자탕에도 넣고, 조림으로도 해먹고, 쩌 서도 먹듯이 적용을 기도와 나눔, 예배로 볶고, 찌고, 조려냅니다. 실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적용을 새로운 접시에 담아 먹기 좋은 요리로 내어놓습니다. 그가 어떻게 묵상을 실천으로 인도해주는지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세 번째 키워드는 “문제”입니다. 저의 말로 바꾸면 “싫증”입니다. 그렇게 좋은 묵상도 하기 싫어지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여러분은 묵상이 하기 싫어질 때, 아니 묵상이 하기 싫어졌다고 말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뭐라고 말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늘 “그래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지... 힘내자!”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답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묵상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고도 성경묵상법이라는 제목을 써도 될까요?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믿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와 성경의 힘을 믿습니다. 묵상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주님의 손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참다운 묵상은 기이한 것을 찾아내는 나의 탁월함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마음과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억지가 가식이 되어 버리느니 멈추는게 낫다고 말합니다. 묵상이 공동체와 성경의 힘을 믿지 않는다면 너무나 빈약한 그릇이 되어서 삶을 담을 수 없게 됩니다.

묵상도 신앙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가야 합니다. 함께 가는 것이 삶입니다. 함께 갈 줄 아는 것이 좋은 신앙입니다. 성경과 공동체, 그리고 인도하시는 성령님과 여전히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 책의 목적은 묵상을 시작하고, 묵상이 자라도록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 저는 확신합니다. 누구보다 친절하고 열정적인, 그러나 때로는 충분히 기다려 멈춰 설 줄 아는, 따뜻하고 유능한 학사 김기현을 통해 묵상의 길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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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고양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김선주 지음 / 이야기books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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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김선주 목사가 쓴 예쁜 책이 도착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함에 그의 프로필을 살핀다. "경직된 교리와 교단에서 벗어난 사람", "시대와 상황 가운데 복음을 사는 사람", "예수를 따름으로 믿으라고 가르치는 사람", "어린이와 청년과 지성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 "목사이기보다 인간이기를 소망하는 사람" 우와...

 

한 때는 큰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무더기로 사서 들었다. 그들의 설교 기술과 성경을 보는 눈, 그리고 사람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얻어내고 싶었다. 한마디로 설교를 잘하고 싶었다. 그들을 흉내내고, 그들의 설교를 사용하고, 그들과 같아지고 싶었다. 닮고 싶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

 

그렇게 20대와 40대초반을 써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내몸에서 그것들을 하나 하나 뜯어내느라 이 고생을 하고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그 버릇이 다시 튀어나온다. 꼭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술로 복음을 이용해 성공해보고 싶었던 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고민에 빠졌다. 어떤 목사가 되어야 할까? 이전에는 분명했다. 설교 잘하는 목사! 리더십이 있는 목사! 그런데 그것은 껍데기였다. 촥촥촥 휘두르며 칼춤을 추는 무희들의 벨수 없는 무딘 칼이란 것을 이제사 깨달았다. 목사가 되기 위해 인간다움을 천시했다. 천사처럼 때로는 하나님이 된 듯 가면을 쓰고 살았다. 넌덜머리가 났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한 인간이란 뻔한 사실이 드러날 까 두려워하는 성가대복을 입은 삐에로가 된 것이다.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 우리는 못하지만 당신은 잘 하고 있다고 추켜세워주는 부추김에 우쫄해 그 좋은 시절을 삐에로로 살았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내가 드러날 까 얼굴을 외면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과 이심전심의 존재인 것처럼 살았다. 열심이 특심이되고, 특심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불처럼 나를 소각시키며 살라버렸다. 재가 되어 망연 자실한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인간으로 사는 법도 모르면서 다른 어떤 것으로 살려고 했다는 것을. 나로 사는 법도 모르면서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런 고민으로 살기 시작한 몇년. 새장처럼 좁아진 생각과 타인의 만족을 내 삶의 기준으로 여기며 살던 불안한 삶을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 것보다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생각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성경이 나를 가둬 버린 삶을 참 좋은 신앙으로 알던 것에서, 크고 넓은 바다를 향해 열린 문처럼,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길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책은 그런 삶을 한참 전에 시작한 한 인간 목사가 처음의 감격과 환희를 지나 이제는 그 넓은 해변가를 맨발로 거닐며 소소하게 던지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가 던져주는 이야기는 허리를 굽혀 주운 반짝 반짝 눈에 뜨이는 조개껍질과 불가사리와 반들반들하게 씻긴 작은 돌과 같다. 스쳐간 사람들과 달리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탄하던 생각들을 옮겨놓았다.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당신은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 이 책제목도 그가 주운 작은 조개껍질과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손에 얹어서 보여주어야만 고개가 끄덕여지며 "그렇구나"를 연발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목사이기보다 인간이기를 소망하는 한 사람의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대들도, 분명 나처럼, "우와~"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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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앤서니 르 돈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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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르 돈 [역사적 예수 :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제목 "다윗에게는 칼이 없었다."  최병유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에 대한 소개는 이 책의 성격과 방향성을 담고 있다. 앤서니 르 돈은 역사철학, 역사적예수, 사회기억이론, 유대인-그리스도인의 관계에 관심이 있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이 책은 정확하게 그의 관심사를 따라 전개된다. 역사철학의 배를 타고 과거로 향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여정이 의외의 곳이다. 성경도 아니고, 역사적 예수도 아니다. 예수를 기록한 이들의 '기억'. 그 기억으로 향한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예수를 기억하는 그들에게로 걸어간다. 그는 이들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예수를 풀어내는 모험을 이 책에서 시작한다.

 

1. 우리는 내가 가진 기억과 다른, 타인의 기억을 만날 때 당황한다.

수양관에 담당목사로 부임하고 2달만에 재정집사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장례를 직접치뤄주었고 남겨진 미망인과 어린아들을 성심껏 대했다.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그 가정이 평안하기를 축복했었다. 그러나 그 즈음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고 원치않는 편가르기가 시작되었다. 그 바람은 수양관에도 불었고, 직원들도 서로 나뉘어져 반목했다. 결국 한 쪽은 짤려나갔고, 다른 한 쪽은 눈치를 보며 살아남았다. 새로운 직원들이 충원 되면서 미망인 여집사님은 팀장으로 승진되었다. 성실했고, 홀로 남겨졌지만 아름다운 신앙인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여집사님과 마추치고 "집사님 이번에 팀장이 되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정말 잘됐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날 그분의 소식이 전해졌다. 폐암에 걸려 투병중이고 나와 연락이 닿기를 원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 나에게 큰 상처를 받았고, 많이 괴로워하셨다는 것이다. 그럴리가 없는데... 그것은 진심어린 나의 축하의 말 때문이었다. 그때 나의 축하의 말이 그 분에게는 "그 상황에서 너만 좋은 자리 차지했냐~?"는 비아냥으로 들렸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런 오해를... 10여년이 지나서야 풀린 오해가 조금의 짐을 덜어내고 가는 마지막 가는 길이기를 소망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2.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일까?

우리의 기억은 자기의 자리에서 이해된 과거이다. 똑같은 사건을 보았어도, 나와 타인의 기억이 다르게 저장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부정확한 것, 오류가 숨어있는 정보로 치부한다. 우리는 신앙인이다. 그 신앙의 근거는 "성경"이고, 이 성경은 누군가의 기억을 통해 기록되었다. 그들의 기억은 "예수"에 대한 것이었고, 놀라운 것은 성경 스스로의 기록도 같은 예수를 다르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기억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기억이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면, 성경이 보여주는 예수는 신뢰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예수를 성경을 기록한 그들의 기억에 의지해서 신앙해도 되는 것일까?...

이 책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주의"에 근거해서 보았고 해석했다. 이 절대성은 의심받을 수 없으며, 오류가 있어서도 안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시대"가 도래하고 모든 것이 의심받고 해체되는 세상에서 기독교 신앙, 성경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절대주의의 옷을 벗겨내자 성경의 진리도, 그 기록 속의 예수도 양파껍질 벗겨지듯 벗겨져버렸다. 과연 기독교 신앙은, 역사의 예수는 거짓인 걸까? 오로지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의 부정확한 기억에 기대어 우리는 저돌적인 이 도전을 방어할 수 있을까? 골리앗 앞에 잔뜩 기가 죽은 이스라엘처럼 바닥에 바짝 엎드러져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3. 기억은 지각을 통해 해석된다.

그때 다윗이 등장한다. "창과 칼은 내게 없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 놈을 처단하겠다!" 그리고 돌맹이가 날아간다. 그 돌맹이에 골리앗이 쓰러지지만 성경은 말한다. "다윗에게는 칼이 없었다." 다윗은 쓰러진 골리앗에게 성큼 성큼 걸어간다. 그리고 골리앗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뽑아들고 그 머리를 쳐내린다. 다윗은 칼이 없었지만 골리앗의 칼로 그를 제압한다. 오늘 이 책이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포스트모던적 역사가의 옷을 입고 다윗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의 부정확함 뒤에 숨겨진 사실을 증명해낸다. 기억이 없다면, 그 사건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 사건이 다르게 기억되는 것은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라는 책 서문에서 "역사가 무엇인지 또 하나의 대답을 제시해 보려는 의도는 없다. 위대한 역사가들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생각과 감정을 듣고 느껴봄으로써 역사가 무엇인지 밝히는데 도움될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도 역사의 사실 자체가 아닌, 그 역사를 기억했던 역사가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들에게 도움의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전환이다. 방패만으로 버티던 우리에게 방패를 빼앗아던지고, 적의 칼을 우리의 손에 들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공수의 전환을 이뤄냈다는 것에서 놀라운 것이다. 그는 기억이 아니라, 지각을 통해 해석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또 말한다.

 

결론

예수는 어떻게 기억되었을까? 그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일까?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역사적 에수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조금만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설득당할 것이다. 다윗에게 없는 칼을 골리앗에게서 찾듯이, 우리에게 없었던 새로운 칼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칼을 찾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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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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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브루그만 [마침내 시인이 온다.] "시인이 되십시오!" 글쓴이 최병유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최근에는 '풀꽃도 꽃이다.'라는 소설을 쓴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책 '황홀한 글감옥'에서 시를 쓰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편쓰기도 힘든 시를 서너편씩 쓰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는 "큰 뜻, 깊은 의미, 긴 사연, 많은 아픔을 '응축'시켜 내는 것"인데 시가 자꾸 길어지는 것이다. 그는 시의 길을 포기한다. "스스로에게 내린 사형선고"라고 표현했다. 대신 시인 아내를 얻고, 평생을 여왕처럼 떠받들고 산다고 우스겟 소리를 한다.

 

  시란 그런 것이다. 천하의 소설가도 감히 넘보기 힘든 것이다. 언어의 정수를 담아내는 과정은 서늘하게 날이선 칼날을 휘둘러 베어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베어낸 결과물은 하늘 하늘 곱고 얇은 한지처럼 따뜻해야 한다. 월터 브루그만은 과연 어떤 시인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말하는 시인은 어떤 시를 읊어주는 사람일까?

 

  그는 이 책에서 말하는 시를 "내가 말하는 시는 운율과 박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밥 깁슨의 빠른 공처럼 움직이며 적시에 도약하는 언어, 기습과 마찰과 속도로 낡은 세계를 깨뜨려 여는 언어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그의 책을 신학생시절 읽은 기억이 있다. "예언자적 상상력"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무디고 짧은 지력과 너무 오래지나간 물리적 시간의 양 때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다만 그의 글은 생생하다. 그의 글은 심장이 있었다. 그의 머리의 생각을 심장으로 말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그는 웅변가였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이야기 하는 대상을 세워두고 그 대상에 미쳐버린 미술가처럼 사방으로, 위아래로, 움직이며 그 특징을 잡아내고, 그려내고, 최선을 다해서 설명한다. 때론 그의 심장의 언어가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그는 뜨겁게 글을 쓴다. 그래서 산문처럼 액자에 갇힌 언어를 시인의 심장에 넣었다 빼낼 수 있는 적임자이다. 그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무채색과 같은 의미를 잃어가는 신앙을 네 가지로 주제로 표현한다.


  "1. 마비와 통증", "2 소외와 분노", "3. 쉼없는 상태와 탐욕", "4. 저항과 포기"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독자가 책을 통해 만나기를 원한다. 다만 그는 이 네가지의 주제를 다루며 우리가 감히 꺼내지 못했던 조심스럽고 불경스러울 것같은 감춰진 단어들을 토해낸다. "논쟁", "담화", "항의", "절박", "죄책", "부재", "낮선대화", "불균형", "반발심"... 그저 그럭저럭 따라가던 축처진 무기력한 신앙들에게 이 단어들을 돌팔매처럼 집어던진다. "빠른 공처럼 움직이며, 적시에 도약하는 언어, 기습과 마찰과 속도로 낡은 세계를 깨뜨려 여는 언어"를 선지자들과 복음의 목소리를 통해 겁없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쏟아내라고 말한다.

 

  그것은 불경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묶여있던 족쇄를 끊어내고 시인이신 하나님 앞으로 뛰쳐나가 호소하는 것이다. 그분의 경청을 힘입어 너희도 들으라고 힘차게 외치는 것이다. 그렇게 설교자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청중과 대화한다. "대화는 양쪽 당사자를 변화시켜 친교를 가능"(p118)하게 하기 때문이다산문처럼 액자에 갇힌 언어로는 불가능하다. 시인을 소환해야한다. 그래서 그는 계혹해서 "시인이 온다."라고 외치며 우리를 부른다

 

  설교자는 심장을 박동하며 달리는 붉은 피처럼 달려야 한다. 그 두근거림 속에 이전과는 다른 상상력과 생명을 담아내고, 예레미야처럼, 시편기자처럼, 원망가득한 모세처럼, 절박한 이스라엘처럼, 꿈을 보던 다니엘처럼, 십자가의 예수처럼 마지막 침묵을 찢어내는 외침으로 발화하라고 외치고 또 외친다.

 

  월터 브루그만은 시종일관 예언자처럼 무엇인가를 전복시키고 싶어한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뜨거움으로 주장한다. 한 단어에 만가지 표정을 담아내려는 그의 욕심은 이 책에 그대로 담겨있다그는 과거 뜨거운 부흥사들처럼 설교자들을 향해 calling한다. "지금 이 자리에 시인이 와 있습니다. 빠른 공처럼 움직이며, 적시에 도약하는 언어, 기습과 마찰과 속도로 낡은 세계를 깨뜨려 여는 시인이 와 있습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앞으로 나오십시오! 시인이 되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앞으로 나오십시오! 여러분! 시인이 옵니다! 시인이 오고 있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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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철학을 팝니다
김희림 지음, 길다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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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철학을 팝니다.] 김희림 저. "다이어트한 철학을 만나다." 최병유

 

저자를 처음 만난 것은 한 글 쓰기 학교에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모임에 참석한 자리에서 였다. 아직 고등학생처럼 수수하고 동글 동글한 얼굴을 한 어린 청년이었다. 그의 책도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종교와 신앙에 대해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을 묶어 출판한 책이었다. 더 어린 나이에 주고 받은 편지의 내용은 4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 앎이 참 풍성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것이 페이스북에서였다. 개그철학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있었다. 속으로 "허어... 이 친구 대박치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 친구가 일을 저지른 것 같다. 책이 나왔다. 가독성은 좋다. 철학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어렵거나 복잡하고 무겁지 않다. 하지만 대충넘어가기에는 숨겨진 것들이 많다.

 

1. 한 문장에 웃음과 울음을 담았다.

"철학개그"라는 책 이름처럼 철학이 개그와 만났다. 깊은 생각과 위트가 넘치는 책을 떠올리라면 "탈무드"였다. 쉽게 비교할 대상은 아니겠지만 외향은 꽤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다. 유쾌하지만 그냥 흐르지 않고 생각이 머물게 된다. 그 자신도 한 문장에 "웃음과 울음"을 담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글을 쓰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그 일을 잘 해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흥행에 성공할 것 같다. 특히 철학이라는 고질적인 무거움에 다이어트를 시켜버렸다.

 

2. 다이어트한 철학을 만난다.

이 책에서 만나는 철학은 군더더기가 없다. 철학이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이유는 무엇을 발라내야 하는지 다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학에 대해서 설명이라도 할라치면 이것저것 생각하고 알아야 할 것이 수없이 달라붙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모든 것을 과감하게 다이어트 시켰다. 살이 쏙빠졌다. 그 많은 이야기를 짧게, 재미있게,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낸다. 그리고 그 내용을 더 짧은 제목에 담아버린다. 모르긴 몰라도, 수백권의 책과 총동원된 지식을 짜고 짜낸 치열한 수고로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다이어트한 철학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3.과거의 생각이 지금 우리와 만난다.

그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철학이다. 정확히는 철학적 사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을 사는 ""에게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오늘은 혼란 그 자체이다. 진통하고 있다. 거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온 나라에서 신음소리와 뒤섞인 분노의 외침이 가득하다. 어이가 없는 현실을,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어이없는 현실이 우리를 또 어이없게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어이없는 세상에 살고있다. 그 현실을 김희림이란 청년은 거침없이, 눈치없이 폭로한다. 나는 주변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영향력에 눌려 눈치있게 살때가 많다. 그런데 이 청년은 눈치가 없다. 과거의 생각과 우리를 만나게 하고 웃게 하고, 부끄럽게 한다. 웃기다고 손가락질 하던 대상이 얼굴을 돌렸을 때 내 얼굴이었음 깨닫기 때문이다. 철학이 시대를 항해하는데 이래서 필요하구나라는 필요성을 잘 알게 한다.

 

그의 책에서는 철학과 인간이 만난다. 그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인간은 재밌어!"(156)라는 한 마디에 담았다. 다른 수많은 뜻깊은 내용들이 많지만 그것은 책을 사서 읽기를 바란다. 철학을 하게 되면 말보다 생각이 많아지고, 쓸데 없는 잡설과 잡음이 사라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일단 책을 읽을 때만큼은 잡생각, 잡설, 잡음이 사라진다.  내 머릿 속에서부터 다이어트가 일어난다.   읽을만 하다.  그리고 훌륭하다.  요즘 철학하는 청년에게 누가 눈길이나 주는가? 그런데 그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나는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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