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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평점 :
월터 브루그만 [마침내 시인이 온다.] "시인이 되십시오!" 글쓴이 최병유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최근에는 '풀꽃도 꽃이다.'라는 소설을 쓴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책 '황홀한 글감옥'에서 시를 쓰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편쓰기도 힘든 시를 서너편씩 쓰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는 "큰 뜻, 깊은 의미, 긴 사연, 많은 아픔을 '응축'시켜 내는 것"인데 시가 자꾸 길어지는 것이다. 그는 시의 길을 포기한다. "스스로에게 내린 사형선고"라고 표현했다. 대신 시인 아내를 얻고, 평생을 여왕처럼 떠받들고 산다고 우스겟 소리를 한다.
시란 그런 것이다. 천하의 소설가도 감히 넘보기 힘든 것이다. 언어의 정수를 담아내는 과정은 서늘하게 날이선 칼날을 휘둘러 베어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베어낸 결과물은 하늘 하늘 곱고 얇은 한지처럼 따뜻해야 한다. 월터 브루그만은 과연 어떤 시인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말하는 시인은 어떤 시를 읊어주는 사람일까?
그는 이 책에서 말하는 시를 "내가 말하는 시는 운율과 박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밥 깁슨의 빠른 공처럼 움직이며 적시에 도약하는 언어, 기습과 마찰과 속도로 낡은 세계를 깨뜨려 여는 언어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그의 책을 신학생시절 읽은 기억이 있다. "예언자적 상상력"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무디고 짧은 지력과 너무 오래지나간 물리적 시간의 양 때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글은 생생하다. 그의 글은 심장이 있었다. 그의 머리의 생각을 심장으로 말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그는 웅변가였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이야기 하는 대상을 세워두고 그 대상에 미쳐버린 미술가처럼 사방으로, 위아래로, 움직이며 그 특징을 잡아내고, 그려내고, 최선을 다해서 설명한다. 때론 그의 심장의 언어가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그는 뜨겁게 글을 쓴다. 그래서 산문처럼 액자에 갇힌 언어를 시인의 심장에 넣었다 빼낼 수 있는 적임자이다. 그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무채색과 같은 의미를 잃어가는 신앙을 네 가지로 주제로 표현한다.
"1. 마비와 통증", "2 소외와 분노", "3. 쉼없는 상태와 탐욕", "4. 저항과 포기"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독자가 책을 통해 만나기를 원한다. 다만 그는 이 네가지의 주제를 다루며 우리가 감히 꺼내지 못했던 조심스럽고 불경스러울 것같은 감춰진 단어들을 토해낸다. "논쟁", "담화", "항의", "절박", "죄책", "부재", "낮선대화", "불균형", "반발심"... 그저 그럭저럭 따라가던 축처진 무기력한 신앙들에게 이 단어들을 돌팔매처럼 집어던진다. "빠른 공처럼 움직이며, 적시에 도약하는 언어, 기습과 마찰과 속도로 낡은 세계를 깨뜨려 여는 언어"를 선지자들과 복음의 목소리를 통해 겁없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쏟아내라고 말한다.
그것은 불경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묶여있던 족쇄를 끊어내고 시인이신 하나님 앞으로 뛰쳐나가 호소하는 것이다. 그분의 경청을 힘입어 너희도 들으라고 힘차게 외치는 것이다. 그렇게 설교자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청중과 대화한다. "대화는 양쪽 당사자를 변화시켜 친교를 가능"(p118)하게 하기 때문이다. 산문처럼 액자에 갇힌 언어로는 불가능하다. 시인을 소환해야한다. 그래서 그는 계혹해서 "시인이 온다."라고 외치며 우리를 부른다.
설교자는 심장을 박동하며 달리는 붉은 피처럼 달려야 한다. 그 두근거림 속에 이전과는 다른 상상력과 생명을 담아내고, 예레미야처럼, 시편기자처럼, 원망가득한 모세처럼, 절박한 이스라엘처럼, 꿈을 보던 다니엘처럼, 십자가의 예수처럼 마지막 침묵을 찢어내는 외침으로 발화하라고 외치고 또 외친다.
월터 브루그만은 시종일관 예언자처럼 무엇인가를 전복시키고 싶어한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뜨거움으로 주장한다. 한 단어에 만가지 표정을 담아내려는 그의 욕심은 이 책에 그대로 담겨있다. 그는 과거 뜨거운 부흥사들처럼 설교자들을 향해 calling한다. "지금 이 자리에 시인이 와 있습니다. 빠른 공처럼 움직이며, 적시에 도약하는 언어, 기습과 마찰과 속도로 낡은 세계를 깨뜨려 여는 시인이 와 있습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앞으로 나오십시오! 시인이 되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앞으로 나오십시오! 여러분! 시인이 옵니다! 시인이 오고 있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