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유산 - 역사와 과학을 꿰는 교차 상상력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획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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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9년 10월부터 12월까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린 시리즈 강연 '우리 유산에 새겨진 첨단 미래를 읽다'를 글로 옮긴 것이다. (서울대학교 박물관·미술관만 유명한줄 알았는데 와우, 고려대학교 박물관 역시 혼천시계, 동궐도,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하아리 국보 세 점, 보물 네 점을 포함 10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단다) 역사학자와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공과대학팀들이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보유한 유물 중 10가지를 선정, 그것들의 의의와 현대적 가치를 따로, 또 같이 탐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10가지의 유물을 각기 다른 주제 -시선, 색깔, 무늬, 철기, 정보, 지도, 공간, 시간, 인식, 생명-로 다루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9세기 초 효명세자의 명으로 도화서에서 제작한 <동궐도>는 조선 왕궁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기 위해 평행사선부감법을 이용하였는데 고려대 사학과 조명철 교수는 <동궐도>를 가지고 △ 15세기 서양미술의 투시원근법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 고려시대~조선시대까지의 당대 미술의 시점 변화를 추적하기도 한다. 이어 고려대학교 건축사회환경공학부 주영규 교수는 <동궐도>에서 다룬 시선의 문제를 첨단 기술인 '드론'으로 연결짓는다. 촬영 허가 문제로 실제 동궐을 직접 촬영하진 못했지만 다른 연구 사례를 통해 문화재 보존과 복원에 사용되는 드론 촬영 데이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 목적과 적용기술은 다를지언정 왕궁과 같은 주요 건축물의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업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10가지 유물 중 '대동여지전도'에 대한 강연이 가장 인상깊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는 목판본이자 편집도라는 특징을 지니는데, △ 목판본이라는 사실은 일부 관공서나 권력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급으로 만들었음을 의미하고 △ 편집도라는 것은 (실측도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여러 자료와 문헌으로부터 지리 정보를 얻고 그것들을 분석, 방대한 정보량을 세련된 범례로 정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전국 지역간의 연결망과 거리를 직선으로 표현함으로써 지도의 정량화를 시도했는데 이는 현대의 내비게이션 장비가 하는 역할과 일맥상통하다. 미래 첨단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 개발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외에도 공간정보를 담은 수선전도와 시공간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스마트시티, 오마패와 5G를 통해 바라본 소통의 욕망과 속도 문제 등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물건과 기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연이어 만나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 과거에도, 현재에도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 개발을 해나간다는 것 △ 그 과정에서 발상의 전환, 새로운 시각, 엉뚱한 상상력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우리 문화유산을 하나하나 깊이있게, 과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유익했다.



정말이지,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가장 먼저 책 속에 언급된 유물들을 보러 아이와 함께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방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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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공의 힘 - 스스로 해내는 공부의 폭발력
송인섭 지음 / 다산에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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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전례없는 등교 불가 상황에 준비없이 맞이한 온라인 수업까지~


'혼공'이란 단어가 부상할만큼 학부모들의 최대 고민은 자녀의 자기주도학습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학부모들의 혼란, 교육 환경의 변화, 학력 격차 등의 이슈 때문인지 작년 한 해 '자기주도', '혼공', '완전학습 mastery of learning'을 키워드로 한 자녀교육서가 많이 출간되었는데, 나 역시 몇 권 구입해서 참고하기도 했다. 올 초에 출간된 「혼공의 힘」도 그 중 하나.


저자인 송인섭 교수는 교육심리학자이자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 명예교수(2012년 퇴임)로 자기주도학습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한다. 2000년대 초 '자기주도학습'이란 개념을 제시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의 원동력, 지적 성장을 돕는 방법 등을 담은 저서도 여러 권 출간하셨는데, 10년만에 신간으로 돌아오신 것.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1부는 혼공을 만드는 9가지 핵심원칙, 2부는 유형별 혼공의 12가지 전략, 3부는 부모가 알아야할 5가지 혼공지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책의 서문과 1부의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아이의 혼공역량을 말하기 전에 '공부의 의미'를 일깨우고 '혼공 의지를 가능케하는 원동력'에 대해 이론적으로 짚어주셨기 때문이다.


"공부는 비단 교과 내용을 떠나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투입하는 행위다. 읽고 싶은 책을 집어들고 온전히 내용에 빠져들어 읽는 것이 공부다.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결과물을 상상하며 진실한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공부다. 즉 공부는 대상이 무엇이든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자기를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과 상통한다."



그렇다. 성적, 입시, 개별 과목 등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모든 활동이 공부라 할 수 있다. 모든 아이들은 어린이·청소년 시절 그런 진실된 공부 경험을 통해 역량을 개발할 권리가 있다.



송인섭 교수는 "혼공은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혼공은 훈련을 통해 길러지고 개발되는 것"이라 강조한다. 어떤 아이라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공부방법이 맞는지 알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대개는 부모나 선생님이) 도와주고 그것을 통해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다보면 집중력, 자신감, 독립심 등이 자라나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다는 것. 이어 요즘 아이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학원·과외에 의존하는 공부를 하고 있고 시쳇말로 "머리 쓰는" 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이야말로 혼공 최대의 적일테다.


2부에서는 현재 혼공이 되지 않는 아이들 유형별로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12가지 전략을 담고 있다. 인터넷 중독, 무기력, 슬럼프, 불안감, 학습부진, 시간 관리 부족 등 자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ckeck list를 유형별로 제공하고 있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tip 도 별도로 삽입해두었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이 부분을 읽으며 공부습관을 점검해봐도 좋겠다.



3부에서는 부모를 위한 지침이 다섯 가지 제시되어 있다. 혼공은 아이가 주체가 되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파악하기 위해 "관찰" 해야하고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지치지 않도록 "적절한 칭찬"을 해주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기다려" 주어야 한다. 부모 역시 아이와의 친밀한 상호작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어찌보면 많은 부모들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행동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그래도 인식하는 것이 변화의 첫 걸음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부분은 부록으로 수록된 혼공학습프로그램 탬플릿들이다. 송인섭 교수 연구팀은 10년간 8,000여명의 학생, 부모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4단계 혼공학습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이 책에는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길러주는 1단계 - 학습 동기, 학습 인지, 학습 행동 -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탬플릿을 수록해두었다. 예를 들어 학습 동기를 고취하기 위한 자기 이해, 미래 설계 워크시트가 포함되어 있어 아이가 스스로 작성해볼 수 있도록 했고, 학습 역량을 높이기 위한 학습장이나 오답노트 등의 탬플릿도 제공한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적절하게 이용하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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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역사 -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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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교수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었다면 그가 그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몸·건강에 투영된 사회제도적 차별과 혐오 감정에 대해 파헤치고 그것들에 저항해왔는지 알테다. 김승섭 교수의 연구와 그것이 함의하는 정치사회적 문제에 공감하기에 ,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을 읽은 후엔 그의 글을 일부러라도 찾아 읽는다. 얼마 전 출간된 「장애의 역사」역시 그가 번역했다고 해서 눈길이 갔고 지난 연휴간 열심히 통독했다.


저자인 킴 닐슨은 역사학과 장애학을 전공한 교수로 이 책에서 장애인의 삶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사실 (장애인의 권리 이전에) '인권'이란 개념은 대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Les Droits de I'Homme(the rights of man)'이 처음 쓰였고 그 후로부터 종교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고문 폐지, 재산권 보호 등이 주장되고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미국 독립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주요 사상은 그대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치체제와 사회제도에 반영되어 민주주의의 확산을 이끌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킴 닐슨은 "미국의 민주주의는 국가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유능하다(유능한 몸을 가졌다)"는 가정위에 건립되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이상적인 가치인 '독립'이나 '자율'을 실현하기에 장애인의 몸은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간주되었고 (인종, 젠더, 계급을 넘어선) 그들을 향한 사회적 차별이 지속되었다. 이에 저자는 1492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라 장애인의 삶, 장애(인)를 향한 사회적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차례차례 추적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기 전 그곳에 거주하던 토착민의 문화에선 '장애'에 해당되는 단어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장애를 신체적 상태가 아닌 사회적 관계에서 판단했고,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 결함이 있어도 공동체에서 격리되거나 배제되지 않았다. 농인이 있으면 공동체에서 수어를 널리 사용하는 문화가 조성될 정도로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조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호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를 점령하고 토착민에게 질병을 전파하게 되면서 토착민 공동체는 점차 사라지고 문화적으로도 약해졌다. 유럽계 정착민은 대부분 능력있는 몸과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선천적인 이유, 질병, 사고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신체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들은 초기 개척자로서 각각의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며 많은 노동을 수행해야했기 때문에, 정신·인지 장애, 신체적 비정상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노동할 수 있다면(혹은 가족이 돌본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동체는 이들을 돌봄과 감금이 필요한 대상이라 여겼고 초창기 수용시설의 건립과 발달을 주도했다.



식민지 시기, 장애인보다 더 배척당했던 집단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예들이다. 1619년부터 노예무역이 시작되었는데 노예(아프리카인)라는 건 그 자체로 손상된 상품, 열등한 몸을 의미했다. 노예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학살을 당하거나, 혹은 비정상을 상징하는 전시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런데 장애인에 대한 이런 사회적 양상은 1776년 미국의 독립과 함께 크게 바뀌게 된다. 국가의 설립에는 '온전한 시민'에 대한 법적·이념적 설계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지적능력, 신체적 역량, 인종, 계급, 젠더, 민족, 환경 등에 따른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정상·장애'라는 개념이 사용되었고, 온전한 시민이 되기에 부적합한 몸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하고 격리하기 위한 사적·공적 시설이 급증하게 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고 (전쟁으로 인한) 장애인이 증가하면서 장애를 관리하는 일은 국가적 임무가 되었다. 교육과 치료 목적의 시설이 설립되어 장애인들의 공간이 다양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사회문제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다시 한번 급변한다. 우생학의 유행으로 "퇴행적인 사람들 - 정신이상자, 백치, 알콜 의존자, 범죄자, 고아원의 어린이 등 -의 출생률을 억제해야 한다"는 단종법이 주목받았고 이는 실제로 이민 제한, (장애인과 퇴행계층에 대한) 강제 불임시술법 시행, 의료 시설 구금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최선의 국가 설립을 꿈꾸던 진보의 시기였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더욱 강해진 모순된 양상을 보였다.



1927년, 경제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붕괴되고 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국가는 장애인을 포함한 시민들의 교육, 주거, 고용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이 때 폴 스트래챈이 등장하여 장애를 사회복지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장애를 가진 개인이 감정적·신체적으로 사회에 적응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구조와 행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 스트래챈의 이러한 캠페인은 장애운동과 노동운동이 교차하던 방식을 보여주는데, 어찌보면 장애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혁신적으로 바뀐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장애 인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초창기 자립생활운동부터 재활법 폐지 운동, 건축장벽제거법 등 장애인권의 법적 보장을 위한 조직적인 연대 투쟁을 통해 점진적으로 장애인들의 교육과 노동 기회를 확대해나갔다.



사실 킴 닐슨은 장애라는 렌즈로 미국의 역사를 (인권과 민주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결국 이는 '사람간의 경계(구분짓기)'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어떤 권력이 인종, 젠더, 연령, 신체 다양성 등 서로 다른 몸을 두고 극명한 경계를 만들어낼 때 그 경계 안팎의 사람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은 자연스레 정당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계로 인해 정상인의 신체 역시 억압받지 않았던가. (*공교롭게도 닐 킴슨이 이 책을 출간하기 얼마 전, 당시 열여섯이던 딸이 심각한 병에 걸려 장애 여성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몸에 대한 경계적 시선' 안팎을 넘나들며 더욱 비판적 사유를 확장해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장애인을 의존하는 존재, 결핍이 있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본디 상호의존성에 의.존.하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단 '장애인'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사이를 구분짓고 경계짓는 어떠한 시도에도 함께 연대하며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승섭 교수가 이전의 저서들에서 전한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번역 부분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김승섭 교수는 책을 번역하는 내내 적절한 번역어를 찾기 위해 동료들과 상의하며 오랜 기간 씨름했다고 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그런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청각장애', '시각장애' 대신 '농'과 '맹'으로, 'Ableism'은 '비장애중심주의'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는 비장애중심주의적 표현들 -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perspective, 관점, 시각' -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번역 과정 자체가 차별에 저항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 책을 읽으며 그런 언어적 표현을 찾아보는 것도 유의미했다.



혐오문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인 듯 하여 많은 분들이 일독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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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드럭스 -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토머스 헤이거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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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과학커뮤니케이터 토머스 헤이거의 책. COVID-19로 인해 제약산업과 백신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요즘, 더욱 관심가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제목에서처럼 10가지 약물과 그것을 둘러싼 담론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먼저 '양귀비(아편)'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아편이야말로 1만전 전부터 19세기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유럽부터 아시아까지(심지어 아메리카 대륙까지) 널리 사용된 약용식물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인류는 관찰과 시행착오, 영감 등을 통해 약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을 골라 재배해왔는데, 아편은 혼합물 형성에 용이하고 어떤 방식으로 섭취해도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최고의 성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약으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대항해 시대의 주요한 무역품이었기 때문에 전지구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강한 중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했고 19C까지도 '약물중독' 문제는 개인적 문제/약점으로 취급당하곤 했다. 반면 특정한 효과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용량을 알아내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기술이 아닌)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약물이 아닌 접종의 탄생은 어떠할까?

저자는 천연두를 예방한 오스만인의 전통의료법 "접붙임"을 유럽에 소개한 레이디 메리의 이야기를 통해 '인두법', '종두법' 개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유럽보다 미개하다고 여겨졌던) 콘스탄티노플 현지인의 치료법을 관찰, 그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당대의 지배적인 통념(120년 영국에서 천연두를 치료하는 방법은 네 가지 체액- 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종교적, 성차별적 의식을 깨고 △ (비록 죄수와 고아를 대상으로 하였지만) 임상시험을 거쳐 '예방 접종'의 초기모델을 증명해낸 것이다. 이는 19C 후반 배종설 germ theory의 메커니즘을 밝히는데 초석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C 이후 등장한 현대적 의미의 과학적 방법론- 관찰, 실험, 이론 정립(출판)- 은 약물 개발에도 영향을 끼쳤다. 분자 수준의 화학이 발전하면서 아편, 헤로인, 코카인, 알코올 등을 기반으로한 합성화합물이 등장했는데 여전히 이런 약물의 중독성은 해결하지 못한 상태. 이제까지 약물중독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왔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심해지자 1914년 미국에선 '해리슨법'이 제정되어 약물중독이 질병이 아닌 범죄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반면 영국에선 비슷한 시기, 약물중독자를 의학적 환자로 분류하면서 국가별로 '마약성 약물'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해리슨법'의 제정, 약물중독의 심각성으로 인해 모르핀이나 코데인에 기반하지 않는, 100% 합성화합물로 구성된 의약품 연구가 주목을 받게 된다. 그 중 20C 초 합성염료의 의학적 효능을 발견되는데 이는 '설파제'의 개발로 이어진다. (설파제는 최초의 항생제로 감염병의 치료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설파제 개발 및 확산 과정에서 안전성 확보를 위한 사전 검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약의 유효성분을 기재하는 라벨링 제도가 정착되는데, 이는 신약 개발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20C 초부터 산업혁명, 도시화가 가속화되며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증가, 가족의 해체 등으로 정신질환자가 급증한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두고 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점 관점과 생물학적 관점(정신의학)이 충돌하게 된다. 수술 쇼크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체내의 스트레스 화합물의 존재가 밝혀지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항히스타민제가 개발되는데, 바야흐로 정신약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의약품은 심각한 (신체적) 건강문제와 싸울 때만 복용하는 것이 아니고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는데, 정신상태가 인간적 됨됨이가 아닌 생물학적 치료 대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이런 인식의 변화는 의약품 개발 방향에도 영향을 끼친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록펠러재단과 같이 시대를 움직이는 기업이 (사업하는데 유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약품 연구에 큰 투자를 하게 되고, 이는 피임약 개발과 '비아그라'와 같은 노년층 성생활을 위한 약 개발을 이끌어냈다. 이는 약물과 몸이 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였으며 제약사 입장에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약물, 즉 질병 자체가 아닌 증상을 치료하는 약물 시장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 (이는 추후 제약사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이렇게 20C 후반 제약산업의 판도가 바뀌는 데엔 "많은 질병이 하나의 원인이 아닌 여러가지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의 영향도 컸다. 이제까지의 약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 root cause를 표적해왔다면 이젠 질병을 일으키는 일상의 습관이나 상황을 관리해주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했다. 보건 의료의 과제가 병원체 박멸에서 질병에 대한 선도적 대응으로 바뀐 것. 대표적으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스타틴 계열의 약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저자는 이 책에서 1만년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질병을 다스려온 약물 개발에 대해 그 배경과 과학적 원리, 우연과 반전의 에피소드 등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과거의 제약업체들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찾아내기 위해 무작위로 대규모 화합물을 생산·시험하는 방식으로 약을 개발해온데 반해, 최근엔 질병의 발병 과정과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의약품을 직접 설.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왔음"을, 그리고 "이러한 신약 개발 패러다임의 전환은 근대 이후 거대해진 제약산업과 이익극대화를 위한 제약사들의 공격적인 투자 때문임"을 새로이 알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피날레' 장에선 제약산업의 가장 최신 트렌드 - 화학적 제재에서 생물학적 제재로, 디지털 의약품, 개인화된 의료-를 소개하며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개인화된 의료의 한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팬데믹의 위험, 제약사의 필요에 의해 관리되는 질병, 정치계와 의료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로비스트들의 활약 등 신약 개발을 향한 노력이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의 치료에 기여한다면 좋겠지만, 제약 회사의 이익을 위해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자는 (의도했던 안했던) 약물과 그것들을 둘러싼 담론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의 제약산업과 신약개발 모델에 대한 독자들의 감시를 촉구하는 캠페인의 불씨를 던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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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스 주니어 02 : 태양광 전기자동차 메이커스 주니어 2
메이커스 주니어 편집팀 지음 / 동아시아사이언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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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이커스 주니어의 두 번째 만들기 키트 주제는 '태양광전기자동차'.

사실 태양광전기자동차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태양광패널의 작동원리인 '광전효과'라 할 수 있다. (*광전효과는 어떤 물질이 빛을 받으면 전자가 튀어오르는 성질을 말하는데, 아인슈타인이 이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태양광패널이 광전효과를 활용하여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시키고, 그 전기에너지로 모터를 돌려 자동차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메이커스 주니어에 포함된 키트를 만들다보면 광전효과뿐만 아니라 힘과 에너지에 대한 물리적 개념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데,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어주는 장치인 모터(전동기), (* 전류가 흐르는 도체가 자기장 속에서 받는 힘 활용), △ 회전력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 바퀴(와 연결된 축)에 전달하는 기어 등을 직접 조작하며 에너지의 전환, 힘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기계적 장치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호에서는 단순히 '태양광전기자동차'의 원리를 소개하는게 아니라 '태양에너지'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유익했다.


☞ 지구의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

☞ 태양에너지가 지구 생태계 속에서 어떻게 전환되는지

☞ 태양에너지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대기 순환, 물의 순환)

☞ 항성으로서 태양의 특징

☞ 태양에서 오지 않은 유일한 에너지원, 열수 분출공과 황세균

☞ 태양을 바라보는 인간의 역사

☞ 인공태양, 태양탐사선 등 태양을 주제로한 최신 과학 동향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이 한 권으로 태양을 주제로 한 융합적인 접근 + 사고의 확장이 가능하다. 교과연계맵을 보면 초등 3학년부터 중등까지 연계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다^^;



처음엔 태양광전기자동차의 원리를 깨우치기 위해 키트를 만들었지만 잡지를 읽고 또 관련 자료를 검색해서 찾아보며 '태양'을 주제로한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어 유익했던 시간. 앞으로도 과학공부를 할 때 메이커스 주니어만큼은 꼭 챙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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