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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역사 -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평점 :
김승섭 교수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었다면 그가 그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몸·건강에 투영된 사회제도적 차별과 혐오 감정에 대해 파헤치고 그것들에 저항해왔는지 알테다. 김승섭 교수의 연구와 그것이 함의하는 정치사회적 문제에 공감하기에 ,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을 읽은 후엔 그의 글을 일부러라도 찾아 읽는다. 얼마 전 출간된 「장애의 역사」역시 그가 번역했다고 해서 눈길이 갔고 지난 연휴간 열심히 통독했다.
저자인 킴 닐슨은 역사학과 장애학을 전공한 교수로 이 책에서 장애인의 삶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사실 (장애인의 권리 이전에) '인권'이란 개념은 대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Les Droits de I'Homme(the rights of man)'이 처음 쓰였고 그 후로부터 종교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고문 폐지, 재산권 보호 등이 주장되고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미국 독립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주요 사상은 그대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치체제와 사회제도에 반영되어 민주주의의 확산을 이끌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킴 닐슨은 "미국의 민주주의는 국가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유능하다(유능한 몸을 가졌다)"는 가정위에 건립되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이상적인 가치인 '독립'이나 '자율'을 실현하기에 장애인의 몸은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간주되었고 (인종, 젠더, 계급을 넘어선) 그들을 향한 사회적 차별이 지속되었다. 이에 저자는 1492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라 장애인의 삶, 장애(인)를 향한 사회적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차례차례 추적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기 전 그곳에 거주하던 토착민의 문화에선 '장애'에 해당되는 단어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장애를 신체적 상태가 아닌 사회적 관계에서 판단했고,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 결함이 있어도 공동체에서 격리되거나 배제되지 않았다. 농인이 있으면 공동체에서 수어를 널리 사용하는 문화가 조성될 정도로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조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호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를 점령하고 토착민에게 질병을 전파하게 되면서 토착민 공동체는 점차 사라지고 문화적으로도 약해졌다. 유럽계 정착민은 대부분 능력있는 몸과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선천적인 이유, 질병, 사고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신체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들은 초기 개척자로서 각각의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며 많은 노동을 수행해야했기 때문에, 정신·인지 장애, 신체적 비정상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노동할 수 있다면(혹은 가족이 돌본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동체는 이들을 돌봄과 감금이 필요한 대상이라 여겼고 초창기 수용시설의 건립과 발달을 주도했다.
식민지 시기, 장애인보다 더 배척당했던 집단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예들이다. 1619년부터 노예무역이 시작되었는데 노예(아프리카인)라는 건 그 자체로 손상된 상품, 열등한 몸을 의미했다. 노예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학살을 당하거나, 혹은 비정상을 상징하는 전시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런데 장애인에 대한 이런 사회적 양상은 1776년 미국의 독립과 함께 크게 바뀌게 된다. 국가의 설립에는 '온전한 시민'에 대한 법적·이념적 설계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지적능력, 신체적 역량, 인종, 계급, 젠더, 민족, 환경 등에 따른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정상·장애'라는 개념이 사용되었고, 온전한 시민이 되기에 부적합한 몸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하고 격리하기 위한 사적·공적 시설이 급증하게 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고 (전쟁으로 인한) 장애인이 증가하면서 장애를 관리하는 일은 국가적 임무가 되었다. 교육과 치료 목적의 시설이 설립되어 장애인들의 공간이 다양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사회문제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다시 한번 급변한다. 우생학의 유행으로 "퇴행적인 사람들 - 정신이상자, 백치, 알콜 의존자, 범죄자, 고아원의 어린이 등 -의 출생률을 억제해야 한다"는 단종법이 주목받았고 이는 실제로 이민 제한, (장애인과 퇴행계층에 대한) 강제 불임시술법 시행, 의료 시설 구금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최선의 국가 설립을 꿈꾸던 진보의 시기였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더욱 강해진 모순된 양상을 보였다.
1927년, 경제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붕괴되고 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국가는 장애인을 포함한 시민들의 교육, 주거, 고용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이 때 폴 스트래챈이 등장하여 장애를 사회복지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장애를 가진 개인이 감정적·신체적으로 사회에 적응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구조와 행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 스트래챈의 이러한 캠페인은 장애운동과 노동운동이 교차하던 방식을 보여주는데, 어찌보면 장애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혁신적으로 바뀐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장애 인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초창기 자립생활운동부터 재활법 폐지 운동, 건축장벽제거법 등 장애인권의 법적 보장을 위한 조직적인 연대 투쟁을 통해 점진적으로 장애인들의 교육과 노동 기회를 확대해나갔다.
사실 킴 닐슨은 장애라는 렌즈로 미국의 역사를 (인권과 민주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결국 이는 '사람간의 경계(구분짓기)'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어떤 권력이 인종, 젠더, 연령, 신체 다양성 등 서로 다른 몸을 두고 극명한 경계를 만들어낼 때 그 경계 안팎의 사람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은 자연스레 정당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계로 인해 정상인의 신체 역시 억압받지 않았던가. (*공교롭게도 닐 킴슨이 이 책을 출간하기 얼마 전, 당시 열여섯이던 딸이 심각한 병에 걸려 장애 여성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몸에 대한 경계적 시선' 안팎을 넘나들며 더욱 비판적 사유를 확장해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장애인을 의존하는 존재, 결핍이 있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본디 상호의존성에 의.존.하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단 '장애인'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사이를 구분짓고 경계짓는 어떠한 시도에도 함께 연대하며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승섭 교수가 이전의 저서들에서 전한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번역 부분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김승섭 교수는 책을 번역하는 내내 적절한 번역어를 찾기 위해 동료들과 상의하며 오랜 기간 씨름했다고 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그런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청각장애', '시각장애' 대신 '농'과 '맹'으로, 'Ableism'은 '비장애중심주의'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는 비장애중심주의적 표현들 -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perspective, 관점, 시각' -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번역 과정 자체가 차별에 저항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 책을 읽으며 그런 언어적 표현을 찾아보는 것도 유의미했다.
혐오문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인 듯 하여 많은 분들이 일독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