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 드럭스 -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토머스 헤이거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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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과학커뮤니케이터 토머스 헤이거의 책. COVID-19로 인해 제약산업과 백신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요즘, 더욱 관심가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제목에서처럼 10가지 약물과 그것을 둘러싼 담론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먼저 '양귀비(아편)'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아편이야말로 1만전 전부터 19세기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유럽부터 아시아까지(심지어 아메리카 대륙까지) 널리 사용된 약용식물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인류는 관찰과 시행착오, 영감 등을 통해 약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을 골라 재배해왔는데, 아편은 혼합물 형성에 용이하고 어떤 방식으로 섭취해도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최고의 성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약으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대항해 시대의 주요한 무역품이었기 때문에 전지구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강한 중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했고 19C까지도 '약물중독' 문제는 개인적 문제/약점으로 취급당하곤 했다. 반면 특정한 효과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용량을 알아내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기술이 아닌)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약물이 아닌 접종의 탄생은 어떠할까?

저자는 천연두를 예방한 오스만인의 전통의료법 "접붙임"을 유럽에 소개한 레이디 메리의 이야기를 통해 '인두법', '종두법' 개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유럽보다 미개하다고 여겨졌던) 콘스탄티노플 현지인의 치료법을 관찰, 그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당대의 지배적인 통념(120년 영국에서 천연두를 치료하는 방법은 네 가지 체액- 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종교적, 성차별적 의식을 깨고 △ (비록 죄수와 고아를 대상으로 하였지만) 임상시험을 거쳐 '예방 접종'의 초기모델을 증명해낸 것이다. 이는 19C 후반 배종설 germ theory의 메커니즘을 밝히는데 초석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C 이후 등장한 현대적 의미의 과학적 방법론- 관찰, 실험, 이론 정립(출판)- 은 약물 개발에도 영향을 끼쳤다. 분자 수준의 화학이 발전하면서 아편, 헤로인, 코카인, 알코올 등을 기반으로한 합성화합물이 등장했는데 여전히 이런 약물의 중독성은 해결하지 못한 상태. 이제까지 약물중독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왔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심해지자 1914년 미국에선 '해리슨법'이 제정되어 약물중독이 질병이 아닌 범죄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반면 영국에선 비슷한 시기, 약물중독자를 의학적 환자로 분류하면서 국가별로 '마약성 약물'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해리슨법'의 제정, 약물중독의 심각성으로 인해 모르핀이나 코데인에 기반하지 않는, 100% 합성화합물로 구성된 의약품 연구가 주목을 받게 된다. 그 중 20C 초 합성염료의 의학적 효능을 발견되는데 이는 '설파제'의 개발로 이어진다. (설파제는 최초의 항생제로 감염병의 치료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설파제 개발 및 확산 과정에서 안전성 확보를 위한 사전 검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약의 유효성분을 기재하는 라벨링 제도가 정착되는데, 이는 신약 개발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20C 초부터 산업혁명, 도시화가 가속화되며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증가, 가족의 해체 등으로 정신질환자가 급증한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두고 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점 관점과 생물학적 관점(정신의학)이 충돌하게 된다. 수술 쇼크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체내의 스트레스 화합물의 존재가 밝혀지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항히스타민제가 개발되는데, 바야흐로 정신약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의약품은 심각한 (신체적) 건강문제와 싸울 때만 복용하는 것이 아니고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는데, 정신상태가 인간적 됨됨이가 아닌 생물학적 치료 대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이런 인식의 변화는 의약품 개발 방향에도 영향을 끼친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록펠러재단과 같이 시대를 움직이는 기업이 (사업하는데 유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약품 연구에 큰 투자를 하게 되고, 이는 피임약 개발과 '비아그라'와 같은 노년층 성생활을 위한 약 개발을 이끌어냈다. 이는 약물과 몸이 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였으며 제약사 입장에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약물, 즉 질병 자체가 아닌 증상을 치료하는 약물 시장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 (이는 추후 제약사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이렇게 20C 후반 제약산업의 판도가 바뀌는 데엔 "많은 질병이 하나의 원인이 아닌 여러가지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의 영향도 컸다. 이제까지의 약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 root cause를 표적해왔다면 이젠 질병을 일으키는 일상의 습관이나 상황을 관리해주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했다. 보건 의료의 과제가 병원체 박멸에서 질병에 대한 선도적 대응으로 바뀐 것. 대표적으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스타틴 계열의 약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저자는 이 책에서 1만년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질병을 다스려온 약물 개발에 대해 그 배경과 과학적 원리, 우연과 반전의 에피소드 등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과거의 제약업체들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찾아내기 위해 무작위로 대규모 화합물을 생산·시험하는 방식으로 약을 개발해온데 반해, 최근엔 질병의 발병 과정과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의약품을 직접 설.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왔음"을, 그리고 "이러한 신약 개발 패러다임의 전환은 근대 이후 거대해진 제약산업과 이익극대화를 위한 제약사들의 공격적인 투자 때문임"을 새로이 알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피날레' 장에선 제약산업의 가장 최신 트렌드 - 화학적 제재에서 생물학적 제재로, 디지털 의약품, 개인화된 의료-를 소개하며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개인화된 의료의 한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팬데믹의 위험, 제약사의 필요에 의해 관리되는 질병, 정치계와 의료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로비스트들의 활약 등 신약 개발을 향한 노력이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의 치료에 기여한다면 좋겠지만, 제약 회사의 이익을 위해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자는 (의도했던 안했던) 약물과 그것들을 둘러싼 담론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의 제약산업과 신약개발 모델에 대한 독자들의 감시를 촉구하는 캠페인의 불씨를 던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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