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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평점 :
사주팔자, 궁합, 관상, 손금, 풍수지리, 수맥 등 일련의 미신들은 결혼, 출산과 같은 큰 일부터 이삿날, 침대 위치 등의 소소한 일상까지 우리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친다. 최근 유행하는 MBTI는 또 어떠한가? 그 결과에 따라 학습법, 나아가 진로까지 결정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어사전에서 '미신'의 뜻을 찾아보면 '과학적,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라 기술하고 있는데, (인간의 이성이 추앙받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위에서 언급한 미신들은 사라지긴 커녕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몇몇은 오락과 문화콘텐츠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왜 우리는 그것들이 비합리적라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지 못할까?
오후의 신간 「믿습니까? 믿습니다」에서 수많은 미신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변해왔는지 살펴보며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유발 하라리가 그의 책 「사피엔스」 에서 "현 인류가 지구의 정복자가 될 수 있었던 것 까닭은 상상의 실재(신화적 상상력)을 믿는 것"(이 책에서 미신이라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리라)이라 설명했는데 오후 작가 역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분화한 그 즈음에 미신이 생겨났을거라 예상했다. 동굴벽화, 원시종교, 매장 문화 등은 '무언가를 향한 믿음' 없이는 탄생할 수 없기 때문. 특히, "농경이 더 풍요로운 삶을 선사해줄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농업혁명이 가능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명을 만들 수 있었다"는 다소 도발적인 해석을 선보이며 이 책을 시작했다.
고대사회에선 곰, 호랑이, 불, 땅 등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대상, 혹은 (농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번개나 비 같은 특정 기상 현상을 숭배했는데, 문명이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문화권에선 '하늘' 숭배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하늘은 천문현상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세상을 이루는 이치나 신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것이 '점성술'의 형태로 발전, 지도자·권력과 결합하면서 르네상스 초기까지도(천문학과 분리되기 전까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는 동양도 마찬가지. 동양의 많은 미신과 사상은 「역경」에 기초하는데, 그 책에선 "세계는 음과 양으로 구분하되,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언제든 서로 바뀔 수 있다"고, 국가·사람의 운명 역시 그러하다고 여기며 당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떨까?
저자는 (고대종교, 일신교, 다신교던간에) 종교는 일종의 미신의 프랜차이즈를 고심한 결과라 말한다. 종교는 고대신화, 점성술을 야만으로 밀어버리고 신자들에게 엄격한 교리와 원리주의를 강요함으로써 자신을 특별한 지위에 올려두고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무신론자로서 종교가 바꾸어버린 몇몇 역사의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종교의 힘, 아니 종교를 맹목적인 믿음이 무섭기도 하다.
이렇게 미신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면 '사상'도 미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코넬대학교 국제학과 베네딕트 앤더슨 교수는 「상상된 공동체」에서 "사상은 근대적 형태의 종교"라고, "(중세 이후) 종교가 힘을 잃으면서 영원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고, 무언가는 그 공허함을 채우고 영속성을 부여해야 하는데 그 대체품이 사상"이라 말한다. 오후 작가 역시 "사상도 미신이라 할 수 있다"며 집단의 성격과 시대 상황에 따라 특정 형태로 나타날 뿐이라는 견지를 취했다.
근대 국가 성립을 가능케한 '민족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키게 한 '공산주의', 현대사회의 바탕이 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등, 근대 이후 여러 사상체계가 보여준 현실은 (이론적으론 완전할지 몰라도) 문제점 투성이지만 사람들은 일부 사상을 종교보다 더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고대 미신이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이 현상에 대해 오후 작가는 "사상이 필요한 이유는, 한 집단 내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피해를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현실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불합리·부조리를 설명할 수 있는 사상체계를 필요로 한다는 것.
결국 미신은 인류가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상, 그 형태와 양상만 다를 뿐 영원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미신, 종교, 사상이 사라지긴 커녕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현대엔 이색적인 상품과 서비스로 판매되기까지 하고 있으니...
위와 같이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 역사적 인물을 둘러싼 에피소드 등을 통해 시대별로 지배적인 미신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당대 사회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작가의 말처럼 "미신 자체는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것이 편견으로 가득찬 인간 사회를 적나라게 보여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더라. 인류사를 관통하는 주제가 미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사실 오후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의 색다른 시각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론 그만의 다소 시니컬하면서도 경쾌한 어투가 너무 매력적이더라. 이야기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면서도 핵심을 콕 짚어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달까? 북콘서트같은 자리가 있으면 꼭 실제로 뵙고 싶을 정도.
Anyway, (작가의 말처럼) 책의 내용이 궁금하시면 장바구니에 얼른 담아두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