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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 시간의 제국들
피터 갤리슨 지음, 김재영.이희은 옮김 / 동아시아 / 2017년 7월
평점 :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각(시계)과 지도에 대해 배우지만 그것이 어떻게/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정확하게 측정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현재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시간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동기화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읽은 책,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엥카레의 지도」.
사실 시간의 흐름은 추상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태양의 위치라는 물리적 지표로 이해하고 측정해왔다. 지역별로 현지 시간이 따로 있었던 셈. 그렇기 때문에 대항해 시대 탐험가, 측량기술자, 항해사들은 출발 지점의 시각으로 시계나 크로노미터를 맞추어두고 시간을 계산했지만 변덕스러운 온도와 습도, 기계적 결함 등으로 원거리의 시간을 통일시키는 것이 불가능했다.
특히, 철도시대가 열리면서 이 문제는 더욱 커졌다. 지역마다 시간이 불일치함에 따라 제국주의 팽창과 국제간 교류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파리, 빈 등에서는 산업 증기 공장들에 압축공기가 가득 찬 지하 파이프를 설치한 후 그 공기압력을 이용하여 도시 주위의 시계를 맞추려(시간 좌표화) 노력했으나 정교함이 크게 떨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전기적 시간 좌표화 시스템'이었다. 전신을 활용하여 천문대의 시계와 먼 곳의 시계를 통일시킨 것. 이는 1860~70년대 유럽의 도시와 철도 시스템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전신 네트워크를 세계적으로 확장하며 전세계의 시간을 한 데 묶기 시작했다.
시간의 동기화는 공간의 지배에도 영향을 끼친다. 전신의 발달은 지도제작자들이 경도를 정확하게 알기 위한 신호를 동시에 보낼 수 있게 하기 때문. 1884년 프랑스 경도국을 중심으로 '천문대를 기반으로 한 전기 시간'을 사용하여 세계 지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는데, 당시 프랑스 경도국의 핵심인물이 바로 앙리 푸앵카레다. 그는 전자기 신호를 이용한 규약화된 시간의 동기화 개념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1905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며 '시간 동기화'라는 개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의 동기화과정은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동시성'은 전자기 신호의 교환을 통해 시계를 맞추어 읽는 것으로 정의되어야 하고 절대적인 시간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100%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의 5장 '아인슈타인의 시계', 6장 '시간의 장소'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긴 어려웠다. 푸엥카레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논쟁과 그 결과에 대해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아래 부분만큼은 정말 흥미로웠는데
▷지금 보면 당연한 시간과 공간의 동기화 문제가 당대에는 얼마나 커다란 도전이었을런지... 철학, 물리학, 정치, 산업 등의 문제가 한 데 어우러진 사안을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 시대적 배경과 과정을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 과학기술의 규약화, 표준화 과정에서 그에 앞장선 나라들이 상징자본을 획득하고 기술의 산업화, 국제 교류/무역 등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시간과 공간의 동기화가 제국주의의 확장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 천문대의 시계가 철도와 도시 시스템 건설, 나아가 전세계 시간의 동기화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는데, 이는 천문학의 역할이 종교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과학적·상업적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시작점이 아닐까 싶었다.
▷ 시간과 공간의 동기화 문제를 해결한 주인공은 두 천재, 푸앵카레와 아인슈타인이라 할 수 있는데 푸엥카레라는 과학자와 '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이 문제에 깊이 관련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다는...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시공간의 동기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푸엥카레의 논쟁 결과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려워서 이해 못했을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