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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농사꾼 박씨네 논두렁 옆 봇도랑에 20년동안 자란 키 큰 백양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백양나무의 옹이 곁가지로 태어난 작은 나뭇가지.
나뭇가지는 튼튼한 어미나무의 곁가지로 평생 평온하고, 순조로운 사람을 살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혹여라도 그런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길 옆을 지나던 앙칼진 화물열차의 기적소리에 일을 하던 암소가 달아나 버리자..
암소를 잡으려던 농사꾼 박씨가 갑자기 백양나무 곁가지를 꺾어버리고 만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백양나무 곁가지는 고함을 지르고, 호소를 하지만, 박씨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고.... 두려움에 떨던 곁가지는 이제.. 더이상 곁가지가 아니라.. 부러진 나뭇가지 신세가 되고 만다.
이걸로 '끝'이 아닌가? 어미나무에서 떨어져나온 나뭇가지... 누구하나 돌봐줄 사람없는 나뭇가지는 스스로 움직이지도, 살 곳을 찾아갈 수 없는 그야말로 처량하기 그지없는 신세이다.
이제 나뭇가지는 마르고, 말라... 생명을 잃고 말리라....
그런데...
이 천진한 나뭇가지는 부러진 채로 세상을 구경한다.
나무주변밖에 못보던 과거에는 볼 엄두도 못내던 동네길도 보고...
박씨 집에서 가보고,
박씨의 귀여운 딸 재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또 기뻐한다.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 것인지.. 당장 말라 죽을지도 모를 운명앞에서,
재희가 회초리로 맞는것에 더 마음 아파하는 착하디 착한 나뭇가지.
박씨네 울타리에 걸려있던 나뭇가지는 박씨 손에 의해 뒷간으로 보내지고,
박씨부인 최씨에 의해 뒷간의 똥덩어리속을 휘휘 저어지는 서러운 꼴을 당하게 된다.
상상도 못했던 똥친막대기 신세라니... 게다가 언제까지나 그 뒷간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미나무의 보살핌 속에 걱정도, 고마움도 모르고 살던 곁가지는 나뭇가지에서 회초리, 회초리에서 이제 똥친 막대기 꼴이 되면서 새삼 어미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한편 끝없는 절망에 빠진다.
다시는 나무가 될 수도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한 현실에서...
나뭇가지는 또 세상 밖으로 나오고,
봇도랑 옆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기적이 일어난다.
정말.. 기적처럼 나무가지는 물가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처음 어미나무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결국은 말라 죽을거라고 짐작했던 하찮은 나뭇가지는 기어이..
강한 생명력으로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된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작은 나뭇가지, 절망이 아닌, 희망을 꿈꾸던 나뭇가지가 결국 나무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작은 희망을 움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작은 나뭇가지의 기적은 바로 희망이 불러온 것이리라....
그 희망을 책을 읽는 이들의 가슴속에 살포시 안겨주는, 글과 그림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