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신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은 문화사학자이자 작가인 신정일님이 10대강 복원과 국토 재발견을 위해 30여년 동안 국토순례를 하다보니 머물러 살고 싶은 곳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만들어진 책이라 한다.

 

우리가 좋은 지리를 말할 때 언제나 따라오는 것이 바로 풍수지리일 것이다.

물론 이 책에도 풍수지리와 관련된 표현이 많이 나오지만, 정확히 풍수지리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그런 류의 책은 아니다.  풍수지리와 더불어 역사적인 유래와 관련된 인물, 사건등을 마치 옛날 이야기하듯이 들려주는 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책이 있다. 이중원의  [택리지]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이 땅에 과연 사대부들이 살 만한 곳이 어디인가?'라는 화두를 안고 20여년 동안 나라 곳곳을 떠돌며 만든 지리서인데, 불행히도 그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이상향을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고, 다만 이상향에 대한 희망을 [택리지]에 남겨 놓았다.  작가는 이중환과는 다른 의도로 우리나라 곳곳을 다녔던 분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의도의 책을 쓴 셈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작가는 4가지 주제를 가지고 좋은 땅을 소개하고 있다.

-시선이 멈추는 곳, 마음이 머무는 자리

-천하의 기운을 품은 길지

-마음과 몸이 살아나는 땅

-완벽한 휴식을 주는 마을



 

이곳에서 소개하는 곳을 살펴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이지만 인파가 몰리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고 자주 찾는 곳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겠지만..

정확히 왜 여기가 좋은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여기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짐을 느끼는 곳.. 그곳이 바로 사람이 살고 싶은 곳이 아닌가 싶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직후 못해본 여행을 원없이 해보리라.. 마음먹고 주말마다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던 시절~ 어린 나이에도 그곳에 가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서, 동행이 있을때나, 혹은 동행이 없더라도 머리가 복잡할때면 꼭 찾아가고 싶던 곳을 이 책에서 발견했을때... 어찌나 반갑던지, 역시 사람의 마음이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가보다.

 

소개되는 모든 장소가 나름대로의 흥미로운 과거를 간직하고 있어서, 책을 읽다보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푹 빠져들게 되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예상못했던 재미이다.  역사시간에나 배웠던 인물이나 사건들의 자취를 느낄수 있는 책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소개하는 곳은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이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백제의 미소라 불리우는 서산마애삼존불상과 용현계곡이 있는 곳.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곳이지만, 무엇보다 바다가 가깝고 산이 드문 지리적 특성상 계곡을 찾는 이 지역민들에게 무척 귀한 계곡이기도 하고,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좋다는 용현계곡을 처음 찾아갔던 여름날...

기대에 못미치는 작은 계곡과 사람들로 북적북적대는 광경에 엄청난 실망만 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그로부터 2년쯤 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정확히 딱 그 곳에 혼자 가야할 일이 생겼다.

초여름 소나기가 내린 뒤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고요하고 한적했던 그 곳에 갔을때,

예전에 왔던 그 곳이 아닌.. 그야말로 별천지.. 임을 깨달았다.

내려앉은 옅은 안개뒤로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둘러싸여있고, 상수리나무사이로 차가운 계곡물이 흐르는 이 곳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없이 포근해지는 그 느낌을... 책의 저자도 똑같이 느낀건 아닐까?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이란..어쩌면 살고 있지 않은 곳이기에 더 간절해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기좋은 곳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면 과연 그 때도 그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 여겨질까?

또는 좋은 땅에서 살기위해 현재 누리고 있는 도회적 삶을 과감히 버릴수 있을 것인가?

이중환의 글을 보면 이 고민은 조선시대를 살던 사대부들도 똑같이 했던것 같다.

 

"십리 밖이나 반나절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하룻밤쯤 자고 올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둔다면 이것은 자손 대대로 이어가도 괜찮은 방법이다." 라고 이사를 가라는 말대신 별장을 마련하라는 글을 남기신 걸 보면 말이다.

 

지금 당장 좋은 산수에 둘러싸인 집을 지을 수 없다면(대부분 이 경우에 해당될테니...) 여기서 소개하는 가까운 곳으로 자주 찾아가거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곳을 새로 개척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보면 소개하는 장소탓인지, 작가의 글솜씨때문인지, 들려주는 역사속 이야기때문인지 알수 없으나, 책을 읽는것 만으로도 마치 명당자리에 앉아있는듯 마음이 평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비록 유배지였지만, 알고보면 좋은 지리였던 강진 다산초당에서 18년동안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정약용선생님의 업적도 어쩌면 좋은 자리에서 한층 학문과 저서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좋은 자리를 소개하는 내용은 모두 제쳐두고라도 책 속에서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읽어도 좋은만한 내용이라..가까이 두고 자주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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