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우리 봄날에 다시 만나면 - 나는 죽음을 돌보는 수행자입니다
능행 지음 / 김영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능행스님이 호스피스 병원을 운영하면서 지켜보았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죽음의 문턱 앞에 다다른 이들이 삶을 찬찬히 돌아보는 모습과, 삶을 정리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성찰, 다양한 모양을 한 감정들을 잔잔한 문장 속에 녹여냈다. 소중한 사람과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들의 모습이나, 미움이나 증오로 응어리져 채 풀지 못한 마음들을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 동안 함께하면서 조금씩 녹여내는 과정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단순히 삶과 죽음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위로가 됐다.

죽음에 대한 책을 읽는 순간 동안이라도 생과 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능행스님의 책은 앞서 읽었던 책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생과 멸을 연속형으로 바라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삶이 있고, 그 끝을 마무리하는 것은 죽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불교에서는 죽음을 또 다른 삶으로 가는 여정으로 보는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죽음 이후 다음 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사람들의 죽음의 여정을 돕는 스님의 모습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좋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이야기는 가지각색이었는데, 물론 그 마지막 모습들이 모두 아름답거나 평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평생 이고 살아온 삶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지, 죽음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그 방법들을 조금이나마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상실의 아픔보다는 다음 생에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 따뜻한 봄날 같은 희망이 담긴 책이라 좋았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
윤정은 지음, 송지혜 북디자이너 / 북로망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인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읽어보지 않아서 상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세탁소의 주인이 떠나면서 마음 세탁소는 운영을 하지 않고, 대신 '해인'이 마음 사진관을 꾸려가는 이야기인 듯했다. 이끌리듯 사진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담긴 사진을 찍어 건네는 마음 사진관. 미처 깨닫지 못한 행복한 순간들을 담아내어 보여주는 사진관에서 다시 삶을 살아낼 희망을,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스스로를 위하는 마음을 찾아가는 듯해서 마음이 따뜻해졌던 작품이다.

총 네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환상처럼 마냥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좋았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쩌면 고통스럽고 우울할지도 모를 이야기들이라 좋았다. 앞에 놓인 암울함만 보느라 수많은 행복을 놓치고 살아올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작은 순간들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무기력하고 신날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 책에서 위로를 받아버렸다.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삶에도 순간순간의 기쁨은 있고, 마음을 데워주는 행복은 늘 가까이 있음을. 그러니 깊은 어둠 대신 어두운 하늘 속 예쁘게 피어나는 불꽃놀이의 아름다움을 볼 것을.

요즘 비슷한 류의 힐링 소설들이 쏟아지고 있고, 그중에서 딱히 좋다고 느낀 작품들이 많지 않았는데 이 책은 개인적으로 무척 재밌게 읽었다. 무엇보다 현실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라 공감이 된 부분도 많았고, 읽는 내내 정말 힐링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인데 운명처럼 메리골드를 찾은 사람들이 마음 사진관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감정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어 가는 모습에서 뭉클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정말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을 맞을 수 있기를 응원하는 마음도 생기고.

이 책을 읽으면서 큰 울림을 받았던 건, 우리의 일상에는 충분히 빛나는 행복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커다란 행복만을 바라고 나아가느라 힘들고 지칠 때가 많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자주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앞으로는 내 감정을 조금 더 세심하고 들여다보고, 소소한 희망과 기쁨으로 미래를 살아가야지. 아, 마음 사진관의 이야기를 보다 보니 마음 세탁소의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세탁소 주인인 '지은'과 '해인' 사이엔 어떤 추억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읽어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SF 연작 소설집이다. 뒷장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다가 알았다. 이 소설은 포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걸. 그리고 소설의 대부분이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라는걸. 그도 그럴게 소설 속의 참 많은 부분이 실제 작가의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가 가장 많이 담긴 소설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말을 다 읽고 보니 어쩐지 책장을 다시 뒤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따로 표시해뒀던 문장을 여러 번 되돌아 읽어보고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해양 생물들을 주제로 한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말하는 문어를 시작으로 '나'와 '위원장님'은 자꾸만 말하는 해양 생물들을 마주치게 되고, 그때마다 정체 모를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연행되고, 취조 받고, 풀려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난데없이 대학 본관에 나타난 문어와 러시아어를 하는 대게, 루비빛 상어 등 엉뚱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처럼 다가오지만, 조심히 들여다보면 바다와 인류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시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적당히 진지하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전달해 쉽게 읽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장애인의 이동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현재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사회의 현안들을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이야기들, 또는 전혀 모르고 넘어갔을 문제들을 해양 생물들과의 기묘한 만남을 통해 조망한다. 어쩌면 황당하고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를 이야기 속에는 치열한 투쟁의 움직임과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저항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작품 속 문어가 집요하게 외쳤던 문장이 있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이 말이 내겐 꼭 경고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으니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렇게 안일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고. 아마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종을 뛰어넘은 연대가 필요한 세상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미 그런 세상으로 발은 디뎌놓았다면, 부디 모두의 목소리가 모여 터전을 지켜내는 물결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고나라 선녀님
허태연 지음 / 놀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힐링 소설이다. 부잣집 사모님은 선여휘 여사가 '선녀'라는 닉네임으로 중고 마켓에 물건을 사고팔면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사연을 듣고 아픔을 희석하는 이야기다. 선여휘 여사의 중고 거래를 따라 함께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녀의 삶과 아픔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사람들의 따뜻함 마음에 위로받는 모습을 보면서 몽글해지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중고 거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 물론 선여휘 여사의 중고 거래엔 마냥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선하고 순박한 사람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포근한 분위기가 돋보였던 사연들이 있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중고 거래를 하기 위해 나온 중년 남성이나 은퇴를 앞둔 장대높이뛰기 선수, 화가의 꿈을 포기하기로 한 청년 등 여사의 중고거래는 그저 물건만 거래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다.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고 좋은 기운을 되돌려주는 것. 누군가에겐 새로운 희망이, 또 누군가에겐 간절하게 바라던 꿈이. 중고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새로운 행복이 찾아드는 것 같아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값비싼 명품들을 턱 없이 저렴한 가격에 내어놓는 선여휘 여사를 보면서 누군가는 중고마켓이 부자의 놀이터 정도로 전락한 기분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작중의 양 과장이 느꼈던 감정처럼 말이다. 하지만 선여휘 여사에게 중고마켓은 단순한 놀잇거리가 아니라 숨통을 트이게 하는 유일한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아들 용재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10여 년의 세월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까. 바쁜 딸과 자택이 아닌 빌라에서 기거하는 남편. 누구 하나 속내를 제대로 털어놓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마음의 짐을 털어 내는 것은 여사의 소소하고도 기쁜 유일한 취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 비슷한 류의 힐링 소설들이 많이 보이는데, 여러 소설들 중 중고거래를 소재로 이용한 신선함이 있는 작품이다. 슬프고 화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흡입력이 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겐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소설이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
이하진 지음 / 열림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짜임새 있는 소설이다. 어지러운 물리학 이론들에 복잡함을 느끼면서도 결말이 궁금하여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결말이란 게 과연 존재할는지. 한 사람을 위한 발걸음이 모두에게 향할 수 있을 것인지 그 끝이 궁금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와 평범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 RIMOS에서는 이능력을 가진 사람을 발현자로, 아직 능력이 발현되지 않은 사람을 잠재자로 명명했다. 높은 발현도의 이능력자인 미르는 교란 판정을 받은 건을 위해 RIMOS에 왔다.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가는 건을 살리겠다는 목적 하나로.

좌절하고 또 좌절하며 나아가는 미르의 발걸음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무효 이론의 발견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록들이 미르의 삶 전체를 대변하는 것 같아서 왠지 서글프기도 했다. 건의 교란의 시작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러가는 순간까지 미르에게는 단 한순간도 맘 편히 숨을 내쉴 수 없었던 것 같아서, 그 절망적인 좌절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미르가 품은 감정이 건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건을 향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저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모든 나날들의 기저에는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놓여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 속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다. 좌절을 반복하며 나아가는 사람과, 비관하여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사람과 이제는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작품 안에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비극을 잊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분향소를 찾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보면서 어딘지 낯익은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외면할 수 없는 사회의 한 모습이 떠올라 마음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는데, 뒤편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면서 역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잊혀가고 있는 비극들이 있다. 이 소설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꼈던 건,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움직임 덕택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접한 완성도 있는 소설이었다. 모든 것이 꼼꼼하게 집필되어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쾌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장황하게 펼쳐진 물리학 이론을 이해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도 이 소설을 재밌었다.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작가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사일러스였다. 단단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릴 정도로 망가져 버렸을 땐, 그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을지. 그 감정이 이해가 돼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천천히 읽느라 완독하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후회가 없는 작품이다. 읽어보고자 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