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
이하진 지음 / 열림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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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임새 있는 소설이다. 어지러운 물리학 이론들에 복잡함을 느끼면서도 결말이 궁금하여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결말이란 게 과연 존재할는지. 한 사람을 위한 발걸음이 모두에게 향할 수 있을 것인지 그 끝이 궁금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와 평범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 RIMOS에서는 이능력을 가진 사람을 발현자로, 아직 능력이 발현되지 않은 사람을 잠재자로 명명했다. 높은 발현도의 이능력자인 미르는 교란 판정을 받은 건을 위해 RIMOS에 왔다.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가는 건을 살리겠다는 목적 하나로.

좌절하고 또 좌절하며 나아가는 미르의 발걸음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무효 이론의 발견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록들이 미르의 삶 전체를 대변하는 것 같아서 왠지 서글프기도 했다. 건의 교란의 시작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러가는 순간까지 미르에게는 단 한순간도 맘 편히 숨을 내쉴 수 없었던 것 같아서, 그 절망적인 좌절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미르가 품은 감정이 건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건을 향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저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모든 나날들의 기저에는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놓여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 속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다. 좌절을 반복하며 나아가는 사람과, 비관하여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사람과 이제는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작품 안에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비극을 잊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분향소를 찾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보면서 어딘지 낯익은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외면할 수 없는 사회의 한 모습이 떠올라 마음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는데, 뒤편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면서 역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잊혀가고 있는 비극들이 있다. 이 소설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꼈던 건,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움직임 덕택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접한 완성도 있는 소설이었다. 모든 것이 꼼꼼하게 집필되어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쾌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장황하게 펼쳐진 물리학 이론을 이해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도 이 소설을 재밌었다.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작가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사일러스였다. 단단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릴 정도로 망가져 버렸을 땐, 그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을지. 그 감정이 이해가 돼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천천히 읽느라 완독하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후회가 없는 작품이다. 읽어보고자 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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