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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킨 이야기 / 스페이드 여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최선 옮김 / 민음사 / 2002년 4월
평점 :
결투(발사)
이것은 실비오라는 독특한 한 퇴역군인의 인생이야기이다. 그는 1인자를 원했던,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치욕을 준 사람에게 두 번이나 결투를 신청했다. 첫 번째 대결에선 대결이라는 중요한 순간에 총구 앞에서 태연하게 버찌를 먹는 모습에 격분하여 총을 쏘지 않았다. 몇 년 후 미뤘던 그 총알 한발을 쏘기 위해 다시 그를 찾아가지만 또다시 벌어진 대결에선 적수의 겁먹은 모습에 최후의 일격을 날리지 않는다. 두 번이나 펼쳐진 대결을 마무리 짓지 않은 실비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저자는 생명의 소중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얘기하고 있진 않을까.
한편으로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딴 자존심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 그 당시에는 이런 명예나 자존심,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결투가 흥했다고 한다. 저자인 푸쉬킨도 사랑을 위한 대결을 하다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죽고 말았다. 한순간의 잘못된 승부욕으로 인해 그는 자신을 잃었다. 우리 역사에선 자존심이라고 하면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을 빼놓을 수가 없다. 당에 간 발해사신이 신라사신보다 웃자리에 앉을 것을 요청하다가 거절당한 사건이다. 판이한 시대의 이야기같아도 이것은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이런 양상은 이어지고 있다. 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사람들이 사소한 일로 싸우다가 어이없는 결과를 맺는 사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행위는 참 위험하고도 아이러니하다. 얼마나 허무한가. 이들은 한순간 명예나 자존심이 자기 자신이라는 잘못된 오류를 양산한다. 물론 자존심, 명예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 그 자체가 아니다.
나도 예전엔 쓸데없는 데에 자존심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의 결과는 허무했다. 그것들은 별다른 결과를 불러오지 않았다. 열심히 애쓰고도 남는 게 없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것은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론 별 것 아니라는 증좌이다. 수차례 그런 경험을 하고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자존심은 쓸데없는 것이다. 높여야 할 것은 자존심이 아닌 자긍심이다. 자존심은 상대의 행동과 말에 따라 변하기 일수 이지만 자긍심은 변하지 않는다. 실비오는 그와의 대결을 통해 명예회복을 꾀했고 자신이 낫다는 것을 인정받으려 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보면 인생에서 내가 사라진다. 나의 인생에 남은 중요하지 않다. 인생은 혼자이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자. 내가 인정하는 내가 되자. 속이 알찬 사람이 되자. 껍데기가 화려하더라도 속이 비어있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얼마 전 어느 글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남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세상의 사람들, 아니 남자들이여.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말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자. 그러다 사람도 잃고 재산도 잃고 ‘나’라는 제일 큰 것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