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자연과 경쟁하겠는가 - P27

터질 것을 걱정하지 않았지 - P22

언제부터 있었는지 의아해 - P21

모텔 주차장에서 나오던 검은 승용차가반 바퀴 돌며 도로를 벗어난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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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기태는 선대리와 육개장을 먹었다. 여느 집보다 대파와 고추기름을 후하게 쓰기로 유명한 식당에서였다. - P156

-달걀이? 뭐 그런 게 있어?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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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계정은 있는데 활동을 거의 안해.
뭔가 변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어물어물 답했는데, ‘그말을 하며 또 나도 모르게 음식물을 되삼킨 건 아닐까?‘ 걱정됐다. - P147

기태는 십여 년 전 새빛저축은행에서 희주를 처음 만났다. - P149

오랜만에 희주의 게시물을 보자 기태는 지난 일들이 제 속에서 커튼처럼 일렁임을 느꼈다. 그것은 평소보다 더 높고 둥근 모양으로 펄럭였다. 그러자 수명이 다한 행성처럼 천천히멀어지던 둘의 관계가 눈앞에 떠올랐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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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나는 그곳에서 눈을 뜬다. 얼음조각처럼 하얗게 굳어버린 내 몸, 삼인칭이 된 내 몸을 내려다본다. 나는 나무 위에 있다.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만큼 크고 단단한 나무다. - P276

이마치는 검게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그곳으로 한 발 내디뎌보았다. 발목에서 잔물결이 흰거품을 내며 부서졌다. 금세 바짓단이 도로 젖었다. 파도는 밀려오고 또 밀려왔다. 한낮의 부드럽고 나른했던 물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얼음 같은 물이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 발을 잡아채는 느낌에 이마치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지는 않았다. 이마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그녀는 일흔 살이었고 아직도 삶이 놀라웠다. - P265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에요."
딸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서를 비는 거야."
이마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무 늦었지.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 P263

나는 만족한다. 이마치를 자주 볼 수 있다면 유치원 기둥이라도 종일 깨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270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나는 그곳에서 눈을 뜬다. 얼음조각처럼 하얗게 굳어버린 내 몸, 삼인칭이 된 내 몸을 내려다본다. 나는 나무 위에 있다. - P276

이제 내가 이마치의 곁을 맴돌던 유령임을 알 것이다. 노아의 그림자임을 알 것이다. 바다를 사랑한 서퍼임을 알 것이다.
몸을 입고 이마치를 만나는 일은 금기였다. 하지만 영원히 앎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마치를 향해 가야 했다. 이마치를 구해내야 했다. - P278

이마치가 끝까지 기억한 사람은 딸이다. 그 외에는 모든 이가 사물로 변해버린다. 아침이면 책장과 휴지통이 건들거리며다가오고, 접시와 리모컨이 말을 건다. 그리고 마침내 딸마저도 사라져버린다. 딸은 작은 머핀으로 변한다. 이마치는 그것을 방안에 감추어두고, 배가 고플 때마다 조금씩 베어먹는다. - P281

. 우리 자신이 파도 같다는 말에 이마치가 슬쩍 뒤돌아보며 웃는다. 그녀는 더이상 비밀이 없고, 한줌의 공기처럼 가벼워져서 날아오른다. 무한한 파도, 영원한파도, 그녀 자신의 파도 속으로. - P283

여기 일곱번째 책을 보탠다. 대단치 않은 소설이라고 해도 완성하고 보면 언제나 큰 기쁨이 있다. 발톱 열 개가 다 빠져도좋을 만큼. 살면서 그러한 기쁨을 누리는 것에 숨죽여 감사하고 싶다.
2025년 봄정한아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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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뭘 쓰든 그건 니 자유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근데그렇다고 해서 니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한테도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니? 내가이미 충분히 버거울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어? 무슨 염치로 그걸 말하는데? - P235

그 어떤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어째서인지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이 내가 듣기에도 궁색했다. - P236

내가 죽고 나서.
......? #이런 건 내가 죽고 나서 마음껏 쓰라고. - P237

그간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데 실패하고, 나에 대해 쓰지 않는 방법을 찾는 데 실패한 것처럼, 나는 시간을 앞으로 빨리 감는 방법을 찾는 데 실패했다. - P241

그래서 엄마는 어땠는데? 내가 미웠어?
내가 한참을 웃다가 물었고, - P242

아니, 예뻤지. 너무 예뻐서 저기 사거리에 있던 베비라에서빨간색 들어간 거, 꽃무늬 들어간 거,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런옷만 사 입혔지. - P242

혹시 말이야. 그런 게 다 너한테 영향을 준 걸까? 내가 잘못한 건가? - P243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요구르트 세 줄을 샀다. 그리고 두 줄은 파란집 할머니네 대문 앞 의자에 봉지째걸어두었다. 문득,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시라는 인사와 함께 몇 마디가 생각나 적었는데 결국 메모는 넣지 않았다. 그냥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성범이 엄마가 주고 간 거라고 믿으셨으면 해서. 야쿠르트가 아니라 요구르트여서 완전히 속일 수는없겠지만. - P248

그때 엄마가 전화기 너머에서 말을 이었다.
가까이 살면 좋겠어. 지금은 너무 멀어. - P251

*최근 장애를 보는 주된 관점인 ‘사회적 모델‘은 장애를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가 제공하는 자원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불리함과 상대적인 활동 제약 상태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사람 앞에 경사로가 없을때, 시각장애인에게 큰 활자의 책이 없을 때, 발달장애인에게 적절한 학습 보조가 없을 때, 비로소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 장애가 없어지기도하고 생겨나기도 한다. 장애는 개인에게 늘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바깥 세계와 만날 때 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장애인의 몸과 정신도 모두 서로 다르듯 장애(인)의 양상과 경험도 각자 다르다. 각자의 몸과 정신은 수없이 다양한 여러 형태의 인간 스펙트럼 중 하나가 발현된 형태일 뿐이므로, 모두가 서로 다른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멸칭이었지만 자긍심의 명명으로 전유된 퀴어처럼, 장애를 (실패와 고난이 아니라) 고유한 신체(들)이자 자긍심의 매개(들)로 볼 수는 없을까.
여기에서 페미니즘 및 퀴어적 관점을 통과하여 장애를 해석하는 ‘정치적/관계적 모델‘이 시작된다(앨리슨 케이퍼,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이명훈 옮김, 오월의봄, 2023). 이는 좋은 몸, 좋은 삶, 좋은 미래에 대한 가치판단 체계가 편향되어 있음을 가시화하고 그 강박으로부터 모두를 해방하는 것이다. - P262

게이 삼촌이자 선배인 자신이 얼마나 씩씩하게, 아름답고 경이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다면, 이미 학교에서 자연화된 규범적 남성성 때문에 위축되고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한 찬오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 P269

삶에 맞게 규범을 바꾸는 것이 사랑이다. 한정된 규범 내에서 ‘거의‘ 살게 하는 폭력 말고, 각자가 ‘온전하게‘ 살게 하는 것이야말로. - P273

그렇게 김병운 특유의 세대 간 ‘미리 보기‘와 ‘다시 보기‘는 퀴어를 단독자로 내버려두는 것이아니라, 퀴어 친족을 형성하게 하여 서로를 돌보고, 그를 통해다시 자신을 돌보게 한다. - P273

소설의 얼개도 더 자유로운 곳을 찾아 떠나지 않고 고향과 유년으로 회귀하는 패턴이다. 사건의 발단 역시 인물 ‘나‘
의 움직임을 통해 촉발되기보다는 타인이 들려주는 과거가
‘나‘의 곁으로 밀려들어오면서 시작된다. 대개 엄마나 수다스러운 친구를 거친 집안의 소문, 동네의 풍문에서 소설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언은 짐짓 고립된 단독자로 상상되거나 자처하기 마련인 퀴어 인물에게 구체적인 가족의 역사, 이웃과의 관계성을 부여한다. 혐오에 맞선 단단한 개인 혹은 연인의 내밀한 이야기에 집중하던 한국 퀴어 문학의 관습에 비하면 김병운은 상대적으로 주변의 관계들로 확장하는 일에 더관심을 기울인다. 그렇게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는 개별적퀴어 존재론에서 사회적 퀴어 존재론으로 확장해간다. 지금김병운의 소설을 읽는 기쁨이 여기에 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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