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당신을 위한 사랑이야기이다. - P197

"Mogę?"(앉아도 될까요?)남자가 내 옆 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나는 같은 방향을 계속 걷는 노인 때문에 한 번 놀랐고 이어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이 거대한 남자 때문에두 번째로 놀라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 P301

"Więc pani mówi po polsku?"(그러니까 폴란드어를 하시는군요?)
"Tak."(네.)아주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남자는 내가 받아 든 책더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Druga wojna światowa?" (2차 세계대전이요?)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책더미를 안아 들고 턱으로 눌러균형을 잡으며 간신히 서 있던 참이었다. 남자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안고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왔다. - P304

그 맥락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그의 아파트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원룸에 가까운 구조였다. 작고 좁았지만, 천장이 무척 높았고 그 천장에는 하늘이 보이는 창문이 나 있었다. 밤의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거울처럼 비치는 그 창문에 떠오른 내 몸과 자신의 묶인몸의 반영을 쳐다보면서 그는 중얼거리곤 했다.
"아름다워." - P308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고 공산주의도 무너졌고 이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로우니까 아이들이 저녁 7시에 밖에 나가서 놀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어."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
"아무 말도 안 했어." - P311

이해와 용서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가 속삭였다. 다
"묶어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P320

이제 내가 기다릴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계속 욕실에서 있었다. 누군가 기적처럼 찾아와서 이 삶에 묶인 나를 풀어주기를 기다리며.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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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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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0대를 뒤흔들었던 책을 40이 넘어 개정판으로 다시 읽는 반가움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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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가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이 위선이나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꾸며 보이고 거짓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일은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위‘라는 말을 알게 된 뒤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졌다. 나의 분리법은 위선이 아니라 작위였으며 작위는 위선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만 엄밀한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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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어른들이 나를 귀여워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자기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밀을 저당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귀여워할 수밖에없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비굴함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알았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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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1969년 겨울, 나는 조그만 좌식책상 앞에 앉아서 ‘절대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목록을 지우고 있었다. 동정심, 선과 악,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 마침내 목록을 다 지운 나는 내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연필 쥔 자국이 깊게파인 것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인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뭔가를 쓰다가 이따금 연필을 내려놓고 가운뎃손가락 마디의 옹이를 한참 내려다보곤 한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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