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건 내 쪽이었다. 이 언니는 전화 목소리도 참 씩씩하고 다정하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 P56
그전에도, 그후에도,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에게 셀 수없이 많은 ‘어서와‘를 들었다. 그렇지만 인회 언니의 그것처럼 진심으로 사람을 반기는 목소리는 만나보지 못했다. 방안에는 세미나용으로 썼음직한 탁자가 있었다. - P59
"나는 있잖아, 이 일이 참 재밌다. 그래서 어떻게든 꼭 잘해내고 싶어." 낙관도 비관도 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걷는 사람만이 할 수있는 말이었다. - P65
언니는 우리를 위해 맥주를 시킨 뒤 잠시 나갔다 왔다. 곧 돌아온 언니 손에는 편의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고, 그 안에 숙취 해소 음료 두 병, 츄파춥스 세 개, 그리고 비락식혜 캔 하나가 들어 있었다. 언니가 그중 노란 캔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 P69
민교수 외의 공역자는 다른 대학 중문과 교수인 그의 배우자였다. 인회 언니의 이름은 책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 P75
제게는 어떤 선택권도 없습니다. 이제 저의 권리는 이곳을 떠나는 것뿐입니다. 중어중문과 대학원을 자퇴합니다. - P79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이니?" 질문의 형식이라고 해서 진짜 질문인 건 아니었다. 엄마의질문은 어릴 때부터 늘 내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 P91
괜찮음과 괜찮지 않음 사이에서 적절하게 밸런스를 조정하는것이 이 직업에 가장 필요한 덕목일지도 몰랐다. - P95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사이, 조직 검사를 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는 문장을 스무 번쯤 말했고, 검사 결과 악성입니다. 라는 문장을 열 번쯤 말했다. 누군가의 눈빛이왈칵 흐려지는 것을 그만큼 보았다는 뜻이다. - P103
하나하나의 일들이 조금씩 어긋나 맞물렸다. 그런걸 불운이라고 부른다. 다 부질없는 가정이었다. - P107
"그냥 내가 오늘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교수님이랑이거 같이 마시면서 엄마 생각하고 싶어서, 그래서 사왔어요. 이거 드세요. 나쁜 거 아니에요. 캔커피 중에서 제일 비싼 거예요." - P116
가느다란 실 같은 불안으로 우리는 이어져 있다. 이런 것도 연결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119
같이 노는 사이가 친구가 아니면 누가 친구란 말인가. - P124
여자 조심하랬더니 자기도 이미 안다는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문장이라고 안희는 생각했다. 무슨 소리야? 스스로를 조심하라고 해야지. 본인 자신을그게 그거라면서 남편은 짜증을 냈다. 말문이 턱 막혔다. 안희가 하려던 말을 도리어 그가 먼저 했다. - P127
안희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남편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뼛속까지 이기적인 건 알았지만 진짜 너무한다. 그 여자는 연예인이라고. 원래 그런 거야, 그럴 수 있는 거야.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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