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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 -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박혜진 외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지금 일을 하러 가고 있다. 기차 안에서 내일 해야할 일의 일정과 내용을 생각한다.
여름의 풍경이 스쳐가는 창 밖을 보면 다른 그림과 말의 조각들이 초록의 산과 푸른 하늘에 무늬처럼 떠오른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서 하던 생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이디어와 고민들이 여름 구름에 모양을 더하며 흘러가는 중이다. 무사히 끝내고 돌아오자는 기도는 마음에 붙들어 매놓는다.
몸이 아파서 2년여 가까이 일을 쉬었는데 이제 다시 일을 하고 있으니 ‘쉬었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누군가는 갑자기 몸이 아파진 내게 그렇게 몸을 챙기지 않고 일만 했으니 몸이 아플 수 밖에 라고 했지만 아니다 일의 죄가 아니다 일이 몸을 병들게 하지는 않는다. 일의 고통이 몸에 직접적으로 전염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데서 아픔의 원인을 찾아야 하기에 일상 위에 놓인 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픈 것은 벌이 아니라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늙음에는 순서가 있지만 아픔 혹은 병은 그렇지 않아서 예고도 없이 일순간 누군가의 일상과 인생을 뒤흔들 수 있다. 병도 장애도 당사자만의 잘못도 실책도 아님을 이제서야 알겠다고 이렇게 말 할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일을 쉬고 있는 기간은 휴식이 아니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일의 분량이 줄어든다고 나의 직업이 말소되지도 않았고 나의 과거가 희석되지도 않았다 나의 마음이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움직이자 몸 또한 일을 손에 잡으려고 부던히 노력해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다시 지금의 내 곁으로 와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심스레 다시 손에 쥐는 것을 거들고 있다
그 수고가 기특하기도 다정하기도 해서 평생 직업이라는 형체가 희미하게 느껴지던 말이 아마 누군가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한 순간을 향해 모여드는 신비한 구름 같은 모양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은 고통의 일부와 보람의 일부가 한데 뭉쳐진 저 뭉게구름을 닮은 것 같다 어느 순간 시야에 느닷없이 나타나선명하게 아름답기도 하고 손에 잡히지 않고 붙잡아 둘 수도 없는 거대한 집합체인 저 구름. 오늘도 내일도 저 뜬구름을 마음에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