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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이 ㅣ 로빈의 그림책장
안드레스 칼라우스키 지음, 무리엘 미란다.후고 코바루비아스 연출, 주하선 옮김 / 안녕로빈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칠레의 안드레스 칼라우스키가 쓴 동명의 연극을 그림책으로 만든 작품. 칠레 그림책도 생소하고 원작인 연극도 낯설었지만 제목이 주는 느낌은 익숙함을 안겨줍니다. 엘로이 모레노의 소설 제목 <보이지 않는 소년>도 연상이 되었고요.
연극을 위해 제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이 일러스트로 활용되었다고 해요. 얼핏 보면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 속 캐릭터와 비슷한 질감 같기도 하지요. 여기서는 두 아이가 등장합니다. 성격이 다른 형제인 펠리페와 막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그것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아요. 독자들이 각자 짐작만 해볼 뿐이지요. 다만 무섭고 슬픈 일이 일어났었나 봐요. 그 이후부터 펠리페가 투명해지기 시작했어요. 막스는 어떻게 하면 펠리페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신탁 상자로 지칭된 텔레비전에 물어요. 기도하는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제발 좀 가르쳐달라는 의미로 간구하는 깊은 내면의 대화일 수도 있겠고요.
신탁 상자는 별 도움이 안 되고, 보이지 않는 펠리페와 그를 보고 싶어하는 막스 둘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보여요. 그 도움은 나중에 등장한 할아버지인데요, 할아버지가 나타나자 펠리페도 보이기 시작해요.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말해요.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건 중요해."
아이들이 감당하기에 무섭고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아니 어른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치부되지만 아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상처와 두려움의 감정에 휩싸일 때, 아이들은 스스로 "쉿!" 하면서 침묵하고 의기소침해지며 스스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어른들의 영향도 있겠지요. 절대 말하지 마. 그냥 잊어버려. 너 때문이잖아. 이런 식의 말들로 아이들이 상처와 두려움과 대면하는 과정을 아예 차단시킨 게 아닌지.
그림책 속 아이들뿐 아니라 이 땅의 아이들, 그리고 지난 시절 침묵하거나 투명해졌던 아이였던 지금의 어른들 모두, 이제라도 이야기하고 기억했으면 해요. 자기 감정과 담담히 마주하면서요. 펠리페와 막스의 할아버지처럼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든든히 지켜주는 어른의 역할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