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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탄생 -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는 하루 10분 연기 수업
윤용근 지음 / 들녘 / 2024년 6월
평점 :
제목과 소개 문구를 보자마자 읽고 싶었던 책이에요. 배우 지망생은 아니지만, 배우라는 직업군, 연기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지요. 돌아보면, 대학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쓰거나 목소리 연기를 했던 시간이 있었고, 그래서였는지 성우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고, 어떤 직장과 기독 소모임에서 연극 한 편을 준비해서 작은 무대에 선 적도 있었지요. 나서기 싫어하는 성향과 별도로 연기가 재미있고 매력 있게 다가왔었는데요, 당시에는 잠시라도 나 아닌 타인이 되어보는 시간, 대사 속 감정을 공감하면서 밖으로 표출해보는 게 좋았나 봐요.
이 책의 저자는 모스크바 쉐프킨 국립 연극대학교 배우 예술과를 졸업했고, 이후 연극, 영화 작품에서 주조연 배우로 출연했고, 학생들에게 연기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21년 첫 영화 연출작 <부서진 페르소나>를 발표했고 2022년에는 알베르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을 연출, 대학로 열린 극장에서 초연했다고 해요. (검색해보니 <부서진 페르소나> 오프닝 시퀀스가 나오네요.)
차례를 보면, 크게 연기 공부의 중심 잡기, 배우의 기본기(화술과 발성), 연극 연기, 영화 연기, 필승 오디션 연기의 기술, 그리고 힐링 연기로 이루어져 있어요.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연기 지망생과 현재 연기를 하고 있으나 실력이 늘지 않는 배우, 연기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었다고 합니다. 각 장마다 주요 사항을 간단하게 정리해주고, 장의 세부 내용마다 10분 키포인트가 요약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아요.
메소드 연기는 자신이 역할 속으로 들어가서 그 인물을 살아 있게 구현함으로써 '연기의 본질'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다.(22쪽)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는 하루 10분 연기 수업"이라는 부제가 있는데요, 세부 장을 읽어내는 데는 10분도 안 걸릴지 모르겠으나 저자가 압축하고 정리해서 핵심만 뽑아낸 듯한 문장들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해요. 연기에 대해 얼만큼 아느냐에 따라 그 시간이 단축되겠지요.
가령 저자가 말하는 연기의 원리 중 이성, 의지, 감정에 대한 정리가 꽤 명쾌해요. 그런데 무슨 말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어요.
"이성으로 생각하고 의지로 행동하면 감정은 딸려온다. 안 딸려와도 상관없다."(35쪽)
감정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런 식의 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다음 진도를 나갈 수가 없어요. 곱씹어 읽느라고요. 그런데 이어지는 문맥을 읽다 보면 그렇구나 한단 말이지요. 얼마전 <선재 업고 튀어>에 나왔던 정영주 배우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 배우는 슬픈 장면을 찍을 때 일부러 감정을 절제하려고 애썼대요. 대본만 봐도 오열할 것 같았지만 극중 인물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그런 맥락이었다고 기억해요. 같은 감정이라도 캐릭터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으니까 그렇겠지요.
저자는 앞에서 감정이 안 딸려와도 상관없다고 하고서,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 이후 이렇게 정리해줍니다.
"이성으로 분석하고 의지로 행동하세요. 그러면 감정이 따라옵니다."(42쪽)
책을 읽으면서 연기 수업을 받는 기분이 됩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연기 편에서는 상황, 목적, 사건으로 자기소개하기, 자신의 경험 이야기하기, 남이 쓴 독백을 자신의 이야기로 각색하기 등이 있네요. 글쓰기 시간 같아요. 대본 분석, 전사(대본에 나타나지 않은 인물의 과거 역사), 캐릭터 구축 방법도 예시와 함께 나와 있습니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배우 역시 치밀한 공부가 필요하네요. 자기가 맡은 캐릭터 공부.
저자는 화술과 발성 훈련도 해주는데요, 국어 시간인가, 아나운서 지망생을 위한 책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연극 연기, 영화 연기도 구분해서 서술해주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드라마에 나왔던 김혜윤 배우 인터뷰에서 봤는데요, 영화과를 갔던 이유가 영화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고 해요. 그만큼 연극 무대와 영화 현장은 여러모로 다를 테니까요.
오디션을 제대로 준비하는 법도 나와 있는데, 그보다 먼저, 실력이 있어도 떨어질 수 있는 여러 사례를 실어줌으로써 오디션 떨어져도 실망하지 말라는 위로부터 전해주는 내용이 인상적이에요. 역시 앞서 언급한 드라마에 나왔던 변우석 배우 인터뷰를 보니, (쓰다 보니 제가 특정 드라마의 배우들 인터뷰를 많이도 찾아봤네요.) 오디션을 수없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지요. 대본 리딩 이후 그만두게 된 적도 있다고 하고요. 그가 중간에 연기를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기자로서 이렇게 안 좋은 상황이 생기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자신을 위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배우는 온전하고 유연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마음의 중심을 잡았으면 좋겠습니다.(394쪽)
위 내용은 비단 연기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거예요. 우리 모두 일상 가운데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존재감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느낌일 때라도, 안 좋은 상황과 타인의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꿋꿋이 가야 하니까요. "삶의 무대에서 우리는 모두 연극 배우"라는 진부하지만 진리인 표현도 있지요. 우리는 여러 회차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 단 한 번의 공연을 하고 있는 중.
이 책에서 특별한 점은 힐링 연기 편이에요. 기능 혹은 기술적인 연기론에 머물지 않고, 연기자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배우라는 직업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이 책은 1차적으로 연기자 지망생, 초보 연기자 등이겠지만, '메소드 연기'가 도대체 뭐지 하는 궁금증이 있거나 화술과 발성, 취미 연극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보면 유익합니다. 개인적으로, 화술과 발성 편은, 요즘 묵독을 많이 해서 좀 걱정인 예비초등 뽀야, 목소리 힘이 많이 떨어지셔서 염려스러운 엄마와 함께 훈련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