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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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만큼 종교와 무관하게 많은 이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시인이 또 있을까 싶어요. 이번 신간 시집은 새로운 시들과 기존의 것들에서 가려 뽑은 시들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햇빛 일기라는 말이 정말 좋아요. 일단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 따뜻한 기분이 들어서 좋고요. 수녀님의 시를 한 편씩 읽으면서 몸도 마음도 포근해지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수녀님 시의 매력은 무엇보다 솔직하고 친근한 일상과 어휘가 아닐까 싶어요. 2008년 암 환자가 되신 이후로는 아픔, 고통, 이별 등을 글에 자주 담게 되셨다고 하는데요, "작은 위로가 필요한 아픈 이들에게"라는 이 책의 부제도 그 연장선이겠지요.


먼저 햇빛과 관련한 시들을 살펴봤어요. 수녀님은 빨래를 널다 만난 햇빛의 고요, 눈부심에 "황홀하여 눈이 멀 뻔했네"('햇빛 향기' 중)라고 말하고, 병원의 링거 주사에 비유해 '햇빛 주사'를 말하기도 합니다.


차가운 몸이 이내 따뜻해지고

우울한 맘이 이내 밝아지는

햇빛 한줄기의 주사

('햇빛 주사' 중)


"천상의 밝고 맑은 말을 안고" 오는 햇빛으로 위로받는 글('햇빛 일기1' 중), 햇빛으로 얼굴, 손, 마음을 씻고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도 햇빛으로 웃어주리라 기대하는 글('햇빛 일기2' 중)도 만날 수 있어요. 수녀님 시가 주는 힘은, 아픈 날의 일기, 병상 일기, 노년 일기 등에서 표현된 고통, 그리움, 기도의 심정이 깊이 내재된 까닭이겠지요.


수녀님의 시들을 천천히 읽어가다가, 자주 나오는 단어 '위로'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때 제가 정말 좋아했고 갈망했던 단어(지금도 좋아하지만 예전만큼 기대를 많이 품지는 않아요.)이기도 한데요, 수녀님의 글을 통해 진정한 위로의 지혜를 배워봅니다.


이별의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마음껏 그리워하라고 말하는 게 더 아름다운 위로라는 표현('이별의 아픔' 중)도 공감했고요, 아픈 사람에게 아픈 얘기, 좋은 약이나 음식, 죽음 준비 얘기는 "그냥 정도껏만" 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위로의 좋은 방법이라는 말('위로의 방법' 중)에도 수긍했어요.


그가 잠시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대책 없이 울면 같이 울어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위로에도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 함께 배워가기로 해요

('슬픈 사람들에겐' 중)


수녀님은 자신의 연륜과 인생 경험으로 무엇인가 가르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더불어 배워가자고 말합니다. 또한 이 시집에서, 시인의 감성이 돋보이는 시들도 좋았어요. '어느 날 꽃과의 대화' 일부를 발췌해 소개해볼게요.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에서

피어나느라고 수고했어요


오늘도 그 자리에서

힘든 순간을 잘 견디며

살아내느라고 수고했어요


수녀님에게 꽃은 자연 만물 중 하나이기도 하나, 만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송이 꽃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예를 갖춰 정성껏" 대하는 모습('손님맞이' 중)을 보여주지요. 꽃, 나비, 나무, 함께 사는 이들에게 이름을 부르면서 행복한 이유도, 그로 인해 겸손해지고 하루가 거룩해지기 때문('이름 부르기' 중)입니다. 삶을 긍정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수녀님의 화살 기도 같은 말을 저도 되뇌어보게 됩니다.


좋다 좋다

그래 그래


이 뜻이 무엇일까, 어떤 상징성이 있을까 곱씹지 않아도, 쉬운 말로 풀어낸 수녀님의 시들이 편안함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시적 감성은 단순히 말랑말랑하거나 한껏 가볍지만은 않아요. 수녀님 자신이 고통과 슬픔과 죽음을 껴안는 일상을 담아냈기 때문이겠지요. 비 오는 날 이후 맞이한 햇빛처럼, 이 시집은 삶과 희망에 대한 새삼스러운 감격과 감사, 기쁨을 일깨워주는 듯해요.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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