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지적인 삶을 결산하고 시간이 남으면 고해성사 하듯이 거듭난 어린아이처럼, 새롭게 보는 자연, 인간, 사랑을 소박하게 써나가고 싶습니다."(15쪽)
저자는 피조물인 줄 모르고 살았던 무신론자의 시각과 다른 새로움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앙 얘기를 되도록 안 하려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위선으로 흐르기 쉽고 믿는 것 이상의 얘기를 하게 될까 봐. 세례 한 번 받았다고 금세 착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이 책에서, 저자가 세례를 받게 된 연유를 들어볼 수 있어요. 저는 이 표현도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돈과 권력을 따르지 않고 일상적인 것을 초월한 가치를 추구해 글을 쓰고 말하고 살아온 삶 자체가 신앙의 문지방에 서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겠죠."(24쪽)
"신앙의 문지방"이라고 했지만 실상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읽다 보면,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 그 이상의 감동, 감화가 있어요.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너무 많아요. 밑줄 긋고 곱씹을 문장들도 정말 많고요. 가령 "지성은 눈물에 무력하다"고 전제한 뒤 저자는 눈물의 의미를 풀어냅니다. "사랑은 눈물입니다."라고요. 또한 "단 하나의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삶을 믿는 것입니다."라는 문장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저자의 명성교회 간증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신동아' 인터뷰에서는 기독교 매체와 다른 접근의 질문들도 엿보게 되는데요, 지성과 영성의 양립이 아닌가, 조건부 신앙 아닌가, 종교 귀의가 문학 활동의 연장선인가, 현재 믿는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구원은 없는가 등입니다. 우문현답이라는 말처럼, 저자의 답변에 주목해서 볼 부분들이 많습니다.
"무지에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극한까지 가서 그 문턱에서 신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151쪽)
위의 말과 더불어 "크리스천은 지혜의, 지식의 끝에 열리는 것"이라는 표현에 공감했어요. 신앙이란 세상 지식을 외면하거나 거기에 무지한 게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신앙인이라면 경직된 예술이 아니라 더 자유로운 감성을 담은 예술을 구현할 테고요. 이 책을 통해 지성의 한계, 오늘날 여러 위기, 교회와 기독교의 역할 등 여전히 예리한 시각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어요.
저자는 2017년 인터뷰에서도 "신앙의 문지방"에서 서성거렸다고 표현했는데요, 예전에는 성경의 모순이 보여서 믿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 모순 때문에 거꾸로 믿는다는 말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통해 그 배경을 이해해볼 수 있어요. 이 책은 지성이 영성으로 넘어가는 과정, 풍부한 지성에 깊은 영성이 더해진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지성과 영성은 분리되거나 배척된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특별하지요.
"알다시피, 저는 지금 (치료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암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약도 안 먹어요. 왜? 제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발자국 소리로 오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98쪽)
신앙인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저자가 죽음 앞에서도 어떻게 저토록 담담하고 초연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는, 믿음과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질문해본 시간이었어요. 신앙서적으로 읽든지 철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사유로 읽든지, 이 책은 갇혀 있던 어항을 깨고 날아오르는 물고기를 보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저자의 시 '미친 금붕어'에 나오는 구절로 이 글을 마쳐봅니다.
"금붕어들의 자유로운 비상을 위하여
나의 비상을 위하여"(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