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어령 대화록 2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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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 <메멘토 모리>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2008년 초 CBS라디오의 한 방송부터 2017년 말과 이듬해 초에 걸친 '크리스천투데이' 인터뷰 기사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 편의 영성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세례를 받으셨다는 기사를 접했을 당시, 저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었지요. 당시 제가 세례의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교회에 등록하고 일정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과정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였던 때였나 봐요. 지금은 그 무게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 선생님의 따님 이민아 목사님의 간증집을 읽었는데요, 그 책을 보면서 선생님의 신앙 이야기가 많이 궁금해졌어요.


선생님이 세례를 받으신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손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해요. 이민아 목사님은 자신도 견디기 힘든 슬픔 앞에서 초신자인 아버지 신앙이 크게 흔들릴까 봐 염려하셨다고 하는데, 오히려 아버지가 하나님을 계속 붙들고 나아가시는 모습에 놀랐다는 맥락이었어요. 그 내용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어가게 되었고요, 실제로 이 책에서 CTS의 한 방송 중에 앞선 이민아 목사님의 책 구절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결국 <당신, 크리스천 맞아?>라는 책은 선생님이 독자들에게 던지시는 질문인 것만 같아요. (이후 글에서는 '저자'로 통칭해서 쓰도록 할게요.)



"지나온 지적인 삶을 결산하고 시간이 남으면 고해성사 하듯이 거듭난 어린아이처럼, 새롭게 보는 자연, 인간, 사랑을 소박하게 써나가고 싶습니다."(15쪽)


저자는 피조물인 줄 모르고 살았던 무신론자의 시각과 다른 새로움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앙 얘기를 되도록 안 하려는 이유가 있다고 해요. 위선으로 흐르기 쉽고 믿는 것 이상의 얘기를 하게 될까 봐. 세례 한 번 받았다고 금세 착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이 책에서, 저자가 세례를 받게 된 연유를 들어볼 수 있어요. 저는 이 표현도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돈과 권력을 따르지 않고 일상적인 것을 초월한 가치를 추구해 글을 쓰고 말하고 살아온 삶 자체가 신앙의 문지방에 서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겠죠."(24쪽)


"신앙의 문지방"이라고 했지만 실상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읽다 보면,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 그 이상의 감동, 감화가 있어요.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너무 많아요. 밑줄 긋고 곱씹을 문장들도 정말 많고요. 가령 "지성은 눈물에 무력하다"고 전제한 뒤 저자는 눈물의 의미를 풀어냅니다. "사랑은 눈물입니다."라고요. 또한 "단 하나의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삶을 믿는 것입니다."라는 문장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저자의 명성교회 간증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신동아' 인터뷰에서는 기독교 매체와 다른 접근의 질문들도 엿보게 되는데요, 지성과 영성의 양립이 아닌가, 조건부 신앙 아닌가, 종교 귀의가 문학 활동의 연장선인가, 현재 믿는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구원은 없는가 등입니다. 우문현답이라는 말처럼, 저자의 답변에 주목해서 볼 부분들이 많습니다.


"무지에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극한까지 가서 그 문턱에서 신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151쪽)


위의 말과 더불어 "크리스천은 지혜의, 지식의 끝에 열리는 것"이라는 표현에 공감했어요. 신앙이란 세상 지식을 외면하거나 거기에 무지한 게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신앙인이라면 경직된 예술이 아니라 더 자유로운 감성을 담은 예술을 구현할 테고요. 이 책을 통해 지성의 한계, 오늘날 여러 위기, 교회와 기독교의 역할 등 여전히 예리한 시각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어요.


저자는 2017년 인터뷰에서도 "신앙의 문지방"에서 서성거렸다고 표현했는데요, 예전에는 성경의 모순이 보여서 믿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 모순 때문에 거꾸로 믿는다는 말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통해 그 배경을 이해해볼 수 있어요. 이 책은 지성이 영성으로 넘어가는 과정, 풍부한 지성에 깊은 영성이 더해진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지성과 영성은 분리되거나 배척된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특별하지요.


"알다시피, 저는 지금 (치료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암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약도 안 먹어요. 왜? 제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발자국 소리로 오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98쪽)


신앙인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저자가 죽음 앞에서도 어떻게 저토록 담담하고 초연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는, 믿음과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질문해본 시간이었어요. 신앙서적으로 읽든지 철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사유로 읽든지, 이 책은 갇혀 있던 어항을 깨고 날아오르는 물고기를 보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저자의 시 '미친 금붕어'에 나오는 구절로 이 글을 마쳐봅니다.


"금붕어들의 자유로운 비상을 위하여

나의 비상을 위하여"(169쪽)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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