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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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목적으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1933년생으로 아흔이 넘은 인물이 전해주는 삶의 연륜을 경청하고 싶은 마음이 또 하나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2세였던 그는 뉴욕의 빈민가인 사우스브롱크스에서 자랐다. 다섯 살 무렵 폐렴과 백일해에 걸렸고 전염병에 걸린 아이들과 함께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다. 당시에는 약이 없었기에 주변 아이들이 사라져가는 공포 가운데 버텼고, 퇴원 후에는 동네 아이들에게 유대인처럼 생긴 외모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


이후 동네 패거리에 들기는 했는데 싸움과 도둑질 등의 못된 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는 추종자보다는 리더가 될 요량으로, 여덟 살 때부터 리더 아이들의 특징을 연구했다고 한다. 남자 또래 문화의 중요한 관건인 큰 키의 이점이 더해져, 그는 학교 리더가 된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시칠리아 마피아일지 모른다는 아이들의 편견으로 왕따를 당했고, 온 가족이 브롱크스로 돌아온 후에는 반전처럼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이 된다.


브루클린 대학에 입학한 후 심리학을 접하게 되는데, 실상 그는 어릴 때부터 "직관적인 어린 심리학자"였다. 빈민가에서 살았던 경험 탓인지, 그는 왜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유혹에 굴복하는지, 착한 아이들이 나쁘게 변하는지 궁금했단다. 선을 지킨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점은?


정작 1950년대 심리학 수업은 지루해서 선악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점을 해결해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실험을 진행하는 연구방법론 수업을 들은 계기로 정말 재미있어서 심리학 전공을 굳힌다. 학부 과정을 최우등생으로 졸업했으나 예일대 대학원 심리학과에서는 흑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합격을 보류했었다.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어떻게 합격이 결정됐는지, 이 책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예일대 졸업 후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오해를 받은 사례는 앞선 세 가지(밑줄 친 부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일 터이다.


유년기와 주요 사건을 읽어가면서 궁금해졌다. 빈민가, 지독한 가난, 일하기 싫어하고 자녀 교육에 관심 없는 아버지 밑에서, 그는 어떤 원동력으로 공부에 몰입하고 자기 진로를 개척했을까. 그가 받은 오해와 편견은 훗날 심리학 연구를 위한 발판이 되기까지 했으니, 자기가 처한 불운한 상황마저 유익한 도구로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 책 속에는 그의 대학원과 교수 생활, 연구 및 사회운동, 집필, 새롭고 독창적인 탐구, 그동안의 주요 실험 및 이론에 대한 입장과 개요 등이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다. 사회심리학의 논의들이 어떠했는지 그 역사를 볼 수도 있고, 실험 및 이론의 주창자인 그가 직접 밝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책은 상황의 힘을 증명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비롯한 여러 연구들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이 책을 계기로, 역으로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고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이었다. 여러 사례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대통령 닉슨이 캄보디아, 라오스로 전쟁을 확산시키는 상황에서, 그는 학생들과 함께 전쟁 반대 시위를 이슈화하는 일들을 했다. 또한 학생들에게 "유익하고도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을 주는 수업의 일환으로 산타나의 <악풍> 음악으로 악에 관한 수업을 시작했다.


인터뷰를 마감하면서, 그는 묘비에 새겨지기를 바라는 문구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수줍음과 무지, 자기합리화의 감옥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그 과정을 즐겼으며, 많은 이에게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동기를 불어넣었다."(255쪽)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이 책의 표지를 접하고 좀 무서웠다. 그래서 얼른 본문 내용을 읽어나갔다. 다 읽고 나서 표지 속 얼굴을 빤히 보는 중이다. 책 말미의 포토 갤러리와 함께. 다시 보니 더 이상 무섭지 않을 뿐더러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제 그의 책들을 한 권씩 찾아나설 요량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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