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지도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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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인문학 공부 혹은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식의 축적이나 자랑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맞닿는 것. 우리는 실상 제대로 살기 위해, 가치 있는 한평생을 위해 고전과 역사를 돌아보고 오늘의 문학과 사상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던가.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1권으로, 선생님의 유작 <별의 지도>는 '별'을 뿌리 삼아 수많은 가지를 뻗어가는 이야기 나무와 같다.

1부 별을 바라보는 마음

저자는 윤동주의 <서시> 속에 동양적인 문맥의 (하늘) '천' 개념이 담겨 있다고 봤다. 나아가 동양의 사고는 서양의 그것과 달라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올바른 삶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한자로 임금 '왕'은 천지인의 석 '삼'을 수직으로 이은 글자다.

"아무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 하늘의 힘과 지, 땅의 힘, 거기에 인, 인간의 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람만이 왕이 되고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32쪽)

이 내용은 더 구체화된다. 임금 '왕'에서 하늘을 걷어내면 흙 '토'만 남는데 땅과 사람만 지배해서 리더가 된 자는 진정한 왕이 아니란다. 또한 저자는 공자와 노자의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전부인 줄 아는 우리에게 공자는 "떼라, 국가를 없애봐"라고 하고(인간주의), 노자는 그런 공자도 소인이라고 칭하면서 "그 사람도 빼라"고 한다는 것이다(무위자연).

한국인의 강한 '천인상관' 사상(인간이 스스로 천지에 종속되는 삶)에 대해, 저자는 비판적 시각을 가진다. "철학은 현실의 공포나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을 다루는 분야"(61쪽)라는 정의가 와닿았다. 주변의 변화에 휘둘리며 일희일비하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철학적 인간이 되려면 불행에 좌절하지 않는 희망이 필요하고, 그 희망이란 '소유'가 아니라 '존재'다.

2부 별과 마주하는 마음

저자에 따르면, 서구 사상의 큰 물줄기는 플라톤의 관념론(하늘)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재론(땅)이다. 서양의 이원론, 이항 대립사고는 동전 던지기에서 보듯 일직선의 사고인 반면, 동양에서는 가위바위보로 삼항 순환 사고다.

저항시인의 프레임을 거두고 시대상황을 배제한 채 윤동주의 <서시>를 읽어본다면? 이 시는 앞서 사람까지 빼라는 '노자'까지 나아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시인은 한국인이든 아니든 죽음의 운명을 타고난 모든 인간을 사랑했고 자신의 운명 앞에 버티고 싸우는 게 아니라 하늘까지 올라가 땅이 아닌 별을 노래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맹세하고 소원했다. 그렇다면 어떤 부끄러움인가. 저자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하늘이 나를 봤을 때의 부끄러움, 땅의 사람(법, 제도 등)이 나를 보았을 때의 부끄러움, 그리고 꽃과 같은 자연이 나를 보았을 때의 부끄러움이 있어요."(102쪽)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서시>는 저항시(정치), 인간주의시(휴머니즘), 종교시의 층위로 읽히지만 전체적인 뜻은 천지인이다.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애, 인간애, 우주애라는 것이다. 시 속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란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마음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고, 마지막 구절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의미는 모든 것을 죽게 하는 바람인 시간이 별에 스치면 영원까지 간다는 것. 그렇게 별까지 가는 여정은 부끄러움이 없는 길이 된단다.

3부 별을 노래하는 마음

여기서는 앞서 언급한 "시인의 마음"이 구체화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이 시인의 마음이다. 이때 시인은 역사 속 영웅이 아니라 햄릿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시 속에서 끝없이 흔들리면서 죽음 앞에서 영원으로 가고, 현실 앞에서 이상으로 가고, 괴로움 앞에서 노래하고 사랑을 하는 존재이지요."(141쪽)

저자는 <서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시인의 마음"을 품자고 권면하는 듯하다. 그가 의미하는 시인이란 시집을 낸 문인이 아니라 이 책의 독자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 풀잎의 괴로움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부끄러움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모두 시인이다.

이 책의 제목 <별의 지도>는 미학자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첫 문장과 연관된 것이다. 저자 역시 지도가 없던 시대 유일한 지도인 별자리, 그렇게 별이 지도가 되던 시절에 인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자문한다. 저자는 "별을 바라보며 꾸는 꿈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력"(222쪽)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질문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당신 삶의 그릇(병 혹은 부대)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그저 좋아서 자주 암송하던 윤동주의 <서시>가 이토록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시였구나, 새삼 감탄하면서 읽었다. 이 책에는 주된 이야깃거리인 그 시뿐 아니라 시인의 다른 시들,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와 더불어 저자 특유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별'을 뿌리 삼은 거대한 이야기 나무인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시인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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