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김주경 옮김, 이예나 삽화 / 북레시피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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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만 알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책을 완독하게 됐다. 특별히 프랑스 완역본에 중간중간 일러스트(연필화)가 삽입된 점이 끌렸다.


사랑받지 못한 괴물 캐릭터는 낯설지 않다. 다만 이 소설 속 인물은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함과 차별성을 가진다. 부모에게조차 외면받은 얼굴을 가진 에릭은, 오페라 극장 지하 은신처에서 유령처럼 산다. 그는 가수 크리스틴에게 음악 천사로서 접근해서 실제로 성악 지도를 해주어 그녀의 실력을 놀랍도록 향상시킨다.


에릭은 매력적인 목소리와 노래 실력, 바이올린 연주, 작곡 능력 등을 가졌지만, 자신의 외모 때문에 늘 가면을 가린 채 숨어 지내왔다. 그는 오페라 유령이라는 발신인 이름으로 오페라 극장 관장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원하는 지정석을 요구하고 기존 가수 대신 크리스틴을 무대에 세우라고 요청한다. 관장들이 이를 우습게 무시하자, 천장 위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직원이 즉사하고 잘난 척이 심한 기존 가수 입에서 두꺼비 소리가 나오는 사태가 발생한다. 낡은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사고의 타이밍도 그렇고 영혼은 없으되 정교한 악기였던 가수의 목소리가 끔찍하게 변한 대목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이 인간 이상의 존재인가 싶을 정도였다.


에릭의 소망은 크리스틴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 나아가 그녀와 결혼해서 함께 음악적 교감과 일상을 나누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와 천재적인 음악성에 매료된 그녀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도 사랑해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정작 크리스틴은 에릭의 음악적 재능에 끌렸지만 그를 불쌍하게 느끼며 동정했을 뿐, 그녀 마음속은 어릴 적 인연이자 첫사랑 라울로 가득했다.


라울은 소위 음악 천사에게 마음이 빼앗긴 크리스틴에게 질투와 의심, 걱정을 표출하고, 이후 크리스틴은 에릭이 천상의 존재가 아닌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자신을 납치해서 가둔 데 공포를 느끼며 가면 뒤 얼굴까지 보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크리스틴과 라울은 이튿날 함께 도망치기로 하나 둘의 밀회를 엿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에릭이었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는 야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 결과 야수가 마법에서 풀려나 멋진 외모의 남자로 변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떠할까. 야수가 흉측한 외모와 달리 부드러운 매너남, 알고 보니 잘생긴 남자였다는 설정은 판타지일 뿐이다. 사랑받지 못한 자의 자기합리화는 나쁜 남자, 스토커, 범죄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혐오스러운 외모 때문에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은 에릭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사랑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신으로부터 외모 대신 천재적인 음악성을 선물 받은 자로서, 공포스러운 오페라의 유령이 아니라 신비스러운 천재음악가로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면 어땠을까. 오늘날이라면 얼굴 없는 가수로 음원만 내놓아도 되었을 텐데.


예인들에게 음악 천사 같은 존재는 매혹의 대상일 듯하다. 크리스틴이 에릭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해하지만, 음악 천사가 아닌 것을 안 순간 떠났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에게 건네는 동정이란, 상대방의 감정만 헤집는 일이 아닌가. 소설을 통해 크리스틴뿐 아니라 에릭, 라울의 심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이 영화, 뮤지컬이 줄 수 없는 소설만의 매력일 터이다.


이 소설을 계기로 영화를 찾아보고 싶고, 조승우 주연의 뮤지컬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소설에서는 상상만 했던 에릭의 목소리를 영화, 뮤지컬에서 직접 들어볼 수 있으니까. 소설 속 공연 장면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현되는 것이니, 이 작품이 뮤지컬로 꾸준히 인기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저주받은 외모를 가진 자의 천재적인 음악성, 선량한 음악 천사와 무서운 유령의 이중성, 사랑받지 못한 자의 집착과 광기, 범죄 등 복합적인 감정을 유발케 하는 에릭 캐릭터는 문학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될 요소다.


"오페라의 유령은 정말 존재했다."로 시작되는 프롤로그와 "이것이 오페라 극장의 유령의 실제 이야기다."로 시작되는 에필로그는 작가 가스통 르루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1장부터 27장에 이르는 과정에서 오페라의 유령인 에릭, 그가 집착하는 크리스틴, 그녀를 사랑하는 라울, 그를 돕는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몰입해서 읽게 된 소설이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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