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의 심리학 - 심리학자가 들려주는 딸의 불안, 스트레스, 관계에 대한 이야기
리사 다무르 지음, 최다인 옮김 / 시공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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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그중 스트레스와 불안에 대한 책들이 주는 느낌은 익숙함이다. 여전히 스트레스와 불안에 취약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있다는 착각도 든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런 부류의 책에 눈길을 두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한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어떻게 딸에게 적용해볼 수 있을까, 궁금해지고 기대감을 가지게 되니까. 이 책을 쓴 사람은 두 딸의 엄마이자 임상 심리학 박사, <여자아이의 사춘기는 다르다>라는 책의 저자다.


이 책은 딸들이 느끼는 정신적, 감정적 압박감에 대한 쉬운 해답도, 즉효약도 없다는 전제로, 아이들이 성장하며 직면할 문제를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찾자는 의도를 담았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스트레스와 불안에 대한 이해, 가정생활, 동성과의 관계, 이성과의 관계, 학교생활, 문화적 압력 등으로 구성되고, 상대적이고 확률적으로 남자(아이)보다 심리적 긴장을 많이 느끼는 여자(아이)의 사례와 그 해결 방안, 부모에게 주는 권면을 서술한다.


먼저 자신이 가진 자원 이상을 요구하는 역경만이 해로운 스트레스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같은 상황에 처해도 한쪽은 가볍게, 또 다른 쪽은 버겁게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변화를 일으켜 적응을 요구하는 생활 사건, 일상적 번거로움, 만성적 스트레스로 분류되는데, 해로운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일단 수용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방법이 필요하다. 가령 부모의 잦은 싸움에 무력해진 청소년에게, 저자는 부모의 싸움을 말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를 잠시 잊는 방법, 기분 좋아지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기분의 통제권을 쥐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불안의 작동 원리 및 일상적 불안에 대응하는 법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감정적, 정신적 부담이나 긴장감이라면 불안은 무서움, 두려움, 공항 같은 감정이다. 실제 삶에서 둘은 서로 얽혀 있고 이로움과 해로움의 양면성을 가진다. 저자는 스트레스와 불안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의 일부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심리적 압박감을 감당할 수 없다면 회피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회피는 불안을 키운다"는 구절을 보고 뜨끔했다. 딸이 두려운 상황에서 무조건 도망치기보다 조금씩 위협에 다가가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도울 방법을 찾자는 것인데, 찰나의 안도감을 위해 당장 위협을 피하게 해주면 장기적으로 불안을 악화시킨단다. 이 책에서는 감정 폭발, 과잉 반응을 하는 딸에게 어떻게 대응할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12-14세 사이 청소년의 뇌에서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이 일어나기 때문에, 무너지거나 폭발하는 딸에게는 부모의 신중하고 침착한 반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채로운 연구 결과도 소개되어 있는데, 부모가 실제 가족의 경제적 능력보다 더 검소하게 살기를 택하면 아이가 느끼는 압박감이 감소한단다.


저자는 예전에 여자아이와 상담할 때,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거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굳세게 버티고 조금이라도 부당하다고 느끼면 맞서 싸우라"(137쪽)고 무조건 격려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눈을 더 크게 떠봤다. 내가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맥락의 말이기에. 스스로 돌이켜볼 때 억울해도, 부당해도 뭔가 많이 참았던 학창시절인 것 같아서,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너무 순하게 굴지 말라고 말하곤 한다. 저자는 딸들이 누군가와 반드시 맞서야 할 때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공공연히 맞설지 말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점도 알려야 한다고 덧붙인다. 부당함과 모욕에 반드시 맞서라고 가르치면 뜻하지 않게 딸의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에 수긍해본다.


이 외에도, 이 책은 잠들기 전 일정 시간 아이를 소셜 미디어에서 떨어뜨려서 얻는 유익을 말해주고, 딸들이 비교와 경쟁, 시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언해준다. '이성과의 관계' 편에서는 여자아이가 성희롱에 대처하는 방법을 비롯한 성교육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미국 청소년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남학생들의 선을 넘는 언행이 많이 심하구나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또한 저자는 딸들의 공부 방법을 공붓벌레에서 전략가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남학생들과 달리 여학생들은 항상 공부에 전력을 쏟고 모든 과목에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잘하는 과목에 힘을 빼고 에너지를 아껴서 부족한 과목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학교는 남자아이에게 자신감 공장 같은 역할"(241쪽)을 한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남자아이는 나쁜 성적을 받아도 그런 실패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반면, 여자아이는 자신을 혹사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저자는 여자아이의 소모적 공부 방법이 장기적으로 해롭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미국의 한 회사에서 고위 관리직 여성 비율이 극히 낮은 원인을 알아보던 중, 여성 직원은 자신이 해당 직책의 지원 자격을 100퍼센트 만족할 때만 그 자리에 지원하는 반면 남성 직원은 그 요건의 60퍼센트를 만족한다고 여기면 지원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소개글과 차례를 봤을 때, 당장 아이에게 적용할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직 학령기 전의 딸들을 둔 독자라고 해도 읽어두면 좋겠구나 정도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굳이 의미 부여를 하자면 호기심과 장기적 관점으로 읽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특히 마지막 장인 '문화적 압력'을 접하면서 지금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구나 싶다. 저자 덕분에, 우리 문화가 여자아이에게만 요구하는 부당하고 확고한 기대치, 우리 사회가 여자아이에게 씌우는 올가미에 대해 새삼 상기하면서, 동시에 딸들이 지혜로운 말과 올바른 가치관을 장착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제안들을 살필 수 있었다. 결론이자 핵심인 다음 말을 곱씹어본다.


"스트레스와 불안은 정면으로 마주해야 제대로 다룰 수 있다. (중략) 부모로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딸이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도전 과제와 기회 앞에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법을 배운 여자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용감한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316-317쪽)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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