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 마지막 3년의 그림들, 그리고 고백 일러스트 레터 1
마틴 베일리 지음, 이한이 옮김 / 허밍버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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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반 고흐에 대해, 지난해 미술사학자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화가의 예술에 영감을 준 장소를 따라가며 화가의 행보를 되짚어보는 방식의 글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가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언젠가 화가의 편지만 엮인 책을 찾아 읽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훌쩍 흘러 이제서야 화가의 편지에 다시 주목해본다.


저자는 반 고흐 전문가이자 영국의 미술 전문지 기자인 마틴 베일리로, 이 책은 특별히 화가가 프로방스에서 지내는 동안 썼던 편지를 주로 다룬다. 저자가 볼 때, 화가의 걸작들이 프로방스에서 보낸 27개월 동안 그린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즈음 세상에 남겨진 260통 가운데 "일상과 작품에 관한 시각"을 제공하는 내용들로 추려져 있다. 저자는 화가의 기독교식 이름인 '빈센트'로 지칭하며 서술하는데, 이 글에서도 그 호칭을 사용하겠다.



이 책은 크게 빈센트가 프로방스 중앙부에 위치한 아를에서 보낸 편지, 그가 머물던 정신병원이 있던 생레미에서 보낸 편지, 그리고 '추신' 격으로 파리 인근의 작은 마을인 오베르에서 보낸 편지로 구성된다. 서두에 동생 테오를 비롯한 편지의 수령인들이 누구였는지 생몰연대와 함께 간략한 서술을 실어서 독자의 사전 이해를 돕는다.


편지 소개와 더불어 그와 연관된 그림의 완성본뿐 아니라 스케치도 실었다. 해당 그림의 핵심도 언급하는데, 가령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드로잉은 빈센트의 걸작 <해바라기> 연작의 전조라고 칭한다. 또한 <빈센트의 침실> 스케치에서는 벽에 어머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채색할 때는 빈센트가 풍경화로 바꾼 것을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편지와 관련 그림들을 통해, 빈센트의 인생과 예술 세계를 더욱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기를 기대하며, 한 페이지씩 넘겨본다.


화가 동료 베르나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붓이 가는 대로", "본질적인 것을 포착하여"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수필을 "무형식의 형식"이 있는 글이라 칭하듯이, 자연스럽게 그리되 본질을 놓치지 않는 화법이란, 비단 그림에 한정된 내용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내 붓질에는 체계가 없네. 나는 불규칙한 터치로 캔버스를 두드린다네. 그냥 붓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지. (중략) 나는 표현이 되든 안 되든 본질적인 것을 포착하여 드로잉하려고 애쓴다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느끼려고' 하네. 단순화한 색조로 말이야."(49쪽)


베르나르에게 보내는 다른 편지에서, "선과 색채의 예술도 존재하지만, 언어의 예술도 존재하며, 그것은 오래 남는다네."(51쪽)라며 지나가듯 한 말도 인상적이었다. 빈센트의 미술작품뿐 아니라 서간문도 후세에 남게 되리라는 사실을 마치 예고하는 것처럼.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빈센트의 여러 편지들에서 그 나름의 색채론을 엿볼 수 있었다. "미래의 화가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채색화가'가 될 것"(58쪽)이라는 말이나, 정확한 색채가 아니라 "색이 만들어 내는 조화든 부조화든, 그 효과를 대범하게 과장해야만 해."(72쪽), "나는 진실된 색을 표현하느라 다소 애를 먹고 있어."(82쪽)를 비롯해, 빈센트는 자기 그림의 색조와 그 효과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다. 이런 대목을 읽다 보면, 미술작품 감상법을 배우는 느낌도 든다.


색채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그림을 그렸고 어떻게 표현했다는 식으로 써내려가니, 그의 편지는 해당 그림에서 화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의 스케치, 완성본, 화가의 의도 등을 흥미롭게 봤다.


한낮의 햇빛 아래 밀밭에서 그림 작업을 하는 게 "매미처럼" 즐겁다고, 서른다섯이 아니라 스물다섯에 프로방스에 왔어야 했다는 소회를 밝힌 대목도 있다. 사로잡힘, 푹 빠짐, 매혹이라는 단어도 곳곳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빈센트는 예술적 영감을 주는 장소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를 받아 사용하던 빈센트는, 저자 표현에 따르면 "다소 순진하게도" 친구와 함께 사는 게 경제적이라고 확신했다. 그가 기다린 친구는 고갱이었다. 함께 지내면서 빈센트과 고갱이 각각 표현한 의자 그림을 대조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반면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에서 쓸쓸한 마음이 스치기도 했다.


"내 그림들이 팔리지 않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언젠가 이 그림들이 물감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 날이 오겠지."(125쪽)


이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지내야 했던 때, 빈센트는 신경쇠약증에 시달리고 앓는 시기 가운데서도 정신병원에서 바라본 풍경,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본뜬 그림,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는 그림 등을 그려낸다. 빈센트가 오베르에 머물면서 보낸 편지들 가운데는 그의 사후 발견된 편지들이 여럿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마지막 편지 일부를 소개해본다.


"진정성이란 가급적 잘하려고 애쓰는 데만 몰두하는 근면 성실한 정신으로써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중략) 내 그림들, 나는 그것들에 인생을 걸었고, 내 이성은 그로 인해 반쯤 허물어져 버렸지."(242-243쪽)



이 책을 통해,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프로방스에서 보낸 시기부터 오베르에서 최후를 맞을 때까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가 가족,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희망에 부푼 상태로 작품 이야기를 하는 대목도 있었지만 절망하고 좌절된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대목도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감정의 진폭만큼 다양한 생각과 느낌이 교차될 듯하다.


그의 고단했던 삶과 안타까운 마감이 그가 남긴 작품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 책 덕분에 더욱 세밀하게 빈센트의 편지와 그림, 삶과 예술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아가 진정성과 영원한 가치에 대한 사유로 뻗어가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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