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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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도서관에서 마음에 깊이 와닿는 그림책을 읽은 후 작가 이름을 기억해 두었지요. 그 작가의 또 다른 그림책을 봤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됐어요. 제가 기억했던 그림체와 느낌과는 뭔가 달라서 이름을 잘못 기억했나 싶었을 정도였지요. 알고 보니 동일한 작가가 맞았어요. 그 작가가 궁금해져서 에세이를 찾아 읽었는데요, 고단한 삶 가운데 치열하게 꿈을 붙든 사람이구나, 그림책을 정말 사랑하는 작가구나 하는 강렬한 인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작가의 또 다른 에세이를 반가운 마음으로 펼쳐봅니다. 바로 고정순 작가님의 <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입니다.


이 책은 세트로 구상되었던 모양이에요. 본문을 읽기 전,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게 되거든요.


고정순 작가와 정진호 작가가 일 년 동안 주고받은 삶에 대한 생각들을 모은 편지 형식의 에세이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정진호 작가님의 에세이 <꿈의 근육>을 먼저 읽었어요. 두 권 모두 각각 25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세부적인 소제목은 다르지만 같은 주제어를 달고 있지요. '달'부터 시작해서 '못다 한 이야기'로 끝나는 구성입니다. 몇몇 주제어를 골라 두 작가님의 글을 연이어 읽어보기도 했답니다. 편집자의 제안으로 '둘이 쓰는 에세이'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고정순 작가님의 글은 자주 상대방(정 작가 지칭)이 드러난다는 특성이 있어요. 각 편지글 끝부분마다 다르게 표현된 문구도 재미있어요.


아이처럼 잘 웃는 친구에게 하품 잘하는 친구가.

친구의 건강을 걱정하는 결코 건강하지 않은 친구가.

철들기 싫은 띠동갑내기 친구가.


'초능력'에 관한 글에서 작가님은 초라한 능력을 초능력이라고 자조한대요. 그러면서 요즘에는 점점 청력을 잃어 가는 아버지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합니다. '시작'에 관한 글에서는 "시작만큼이나 중요한, 어쩌면 시작보다 더 어려울지 모르는 마지막"을 말해요. 이 책의 제목은 "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친구가."라는 한 편지글의 끝부분에 기인하는 듯한데요, 아마 다음 구절로 그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끝이 주는 위안이 있어요. 내가 죽음을 자주 이야기하는 이유죠.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부정하지 않아요. 그 반대일지도 몰라요."(36쪽)


현재 삶이 버겁고 힘겨울 때 누구나 우울감이나 절망에 빠지게 되는데요, 작가님의 글을 보면 애써 생의 고통과 어두움을 외면하기보다 담담히 바라보고 묵묵히 통과하는 모습이 그려져요. 겉으로 생의 의욕을 강하게 내비치지 않아도 속내는 자신과 타인과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나는 느낌. 친구분이 작가님에 대해 "아닌 척하면서 마음을 다 줘 버리는 의뭉스러운 사람"이라고 표현하신 맥락과 통하는 것도 같고요.


'위로'에 관한 글에서 작가님은 스스로 사람을 위로할 줄 모른다고, 독자들에게 오히려 위로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겠노라고 다짐하지요. 깊은 진심이 느껴져서 여기에 일부를 옮겨봅니다.


"내가 만든 이야기로 상처받는 사람은 없을까, 거짓과 위선을 위로와 위안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을까? 매번 날 돌아보겠다고, 그런 마음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위로가 된다면 허락된 시간 동안 계속 해 보겠다고 말이죠."(69쪽)


작가님은 시인을 꿈꾸었고 지금도 몰래 시를 쓴다고 하네요. 마흔 넘은 친구들과 어울려 '문방구 밴드'를 만든 적도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작가님의 가족, 추억, 일상, 면역 질환 이야기를 읽어가다가 탁, 멈추게 된 문장이 있었어요. 깜짝 놀랐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어요. 그냥 여기까지만 쓰도록 할게요.


소설과 달리 글쓴이의 모습이 솔직하게, 때로는 직설적으로 드러난 에세이에 대해, 그런 글쓰기 방식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됩니다. 독자로서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에세이를 제대로 읽어내는 일이란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서평 혹은 독서일지라는 이름의 이 글이, 작가님의 풍요로운 생각과 느낌, 이야기를 너무 단조롭게 전달하고 만 것은 아닐까 싶었고요. 작가님의 다른 에세이 <그림책이라는 산>과 같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말만 덧붙여봅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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