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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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여러 책들이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선생님의 책이 출간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뒤늦게나마 선생님의 책들을 부지런히 읽어볼 마음을 품어본다. 항암치료를 마다한 채 기력을 다해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죽음까지 기록할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는 기사(김지수 기자의 글)를 접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생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자 애쓰셨을까 궁금했다. 우리의 삶이란 이 세상을 한 뼘 더 좋게 만들고 가는 발자취라고 할 때, 선생님이 남기고 간 흔적은 그 범위가 꽤 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흔적 중 하나,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두 손에 받아들었다.

서문을 여는 '날게 하소서'라는 시는, 마치 선생님의 기도문이자 새해맞이 덕담 같다. 총 51행의 시를 천천히 읽으면서 정말 여기에 적힌 대로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8쪽)

선생님이 14년 전에 썼다는 이 시는, <생각의 생각>이라는 책의 새 옷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의 날개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듯하다. 비상시국에 필요한 비상, 슬픔을 뜻하는 비상과 하늘을 나는 비상 가운데, 선생님은 비상의 절망 속 하늘을 날아오르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날아오름의 의미만으로 '사고의 자유', 그 단초를 보여준 게 아니겠는가. 이 책은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이분화된 흑백논리의 덫에서 벗어나는 것, 갇힌 사고의 틀을 부수는 것을 도와줄 목적으로 쓰인 글이기에.

본문은 열세 가지의 생각을 담고 있다. 먼저 '흙과 디지털이 하나되는 세상'에서는 흙의 지혜와 디지털 정보를 대비하듯 보여주나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이 진짜 정보기술의 힘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의 말을 빌어 '스마트 파워' 곧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한데 결합한 힘을 말한다. 이 글은 수미상관처럼 마지막 글 '선비 생각이 상과 만나다'로 연결되어 이해할 수 있겠다. 한국 경제 속에서 어우러진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선비 자본주의'로 칭하는 선생님의 견해를 헤아려본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의 글이 주는 교훈도 되새겨본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기적의 사다리, 영혼이 높아지는 디딤돌 삼으라는 말씀. '뽀빠이와 낙타의 신화'에서는 오류와 오역 혹은 신화와 허구 세계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를 서술하면서, 놀이와 상상, 창조의 힘으로 삶을 허구와 이미지로 충만하게 하는 '호모픽토르', 일상성에서 탈출하는 탈영병을 꿈꾸라고 권면한다.

'종소리처럼 생각이 울려왔으면'은 감성 에세이 한 편 같다. 우연히 작은 종을 흔들어 투명한 소리를 내는 것에 놀라 40여 년 전 알프스 고원을 지날 때 듣던 소리를 떠올리고, 존 던의 기도서에 나오는 문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풀어낸다. 여기서 종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이었다고. 존 던은 누구를 위해 울리는 종소리인지 묻지 말라고 말했다. 바로 나를 위한 종소리, 내 죽음의 조종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누군가의 죽음은 내 크나큰 생명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는 뜻으로 봤다. 그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인 셈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고, 누군가의 생명이 나와 똑같은 샘물에서 흘러온 데 기인한다. 이 글의 귀결은 우연히 흔든 종소리처럼 자신 안에서도 침묵하던 소리가 울려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생님은 그로 인한 생각들을 글로 쓰고 싶다는 갈망을 전한다.

이 외에도 책을 통해 '벽'과 '세 마리 쥐'의 상징성을 각각 풀어간 글, '신발'에 관한 전방위적 접근의 글, 방어를 위한 '성'과 공격을 위한 '길'에 의미를 부여한 글, '거북선'에 대해 재고를 촉구한 글을 살필 수 있다. 한국 문화와 음식, 한국인 생각을 다룬 글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가 간과해왔던 우리 것들, 특히 그 속에 담긴 지혜와 깊이에 대해 자긍심이 생긴다.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우리가 가진 지식의 효용성과 유동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동서양 문명, 옛 말과 최신 용어가 무리 없이 섞여들어간 글 속에서 궁극적인 지향점은 간명해 보였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닐런지. 옛것을 끌어와 새것에 접목시키고, 낡은 생각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활짝 펼쳐보면서, 우리가 가진 지식은 인간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한에서 유의미할 뿐이다. 나이가 들고 아는 지식이 조금씩 쌓일수록 우리는 편견과 고정관념, 자기만의 아집이 생기고 만다. 자기가 아는 게 전부인 양. 그것을 깨부수는 힘은 무엇일까. 이 책은 거기에 대한 답변을 선명하게 해줄 것이다.

생각의 비상이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게 될, 귀한 책을 만났다. 선생님의 서원시처럼, 우리 국민 모두 날아오르는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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