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술사
박은주.양지열.김만권 지음 / 미디어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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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이다. 일단 언론에 대한 비판서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저자들은 PD, 변호사, 정치철학자 3인으로, 프롤로그에서 제목의 의미를 풀어준다. 이 책을 읽기 위한 기본 전제라고 생각하기에, 그 내용을 소개해본다.



"탈진실의 시대에 늘어나고 있는 거짓말 기술자들, 새로 생겨난 개소리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의 거짓말과 개소리를 암묵적으로 때로는 명시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를 '언론술사'들이라 부릅니다."(8쪽)



거짓말과 개소리는 어떻게 구분될까. 저자들은 해리 G.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2016 번역본)에 사용된 개념을 끌어온다. 거짓말은 진실의 맥락을 따르는 척 노력하지만, 개소리는 그런 맥락을 무시하고 필요한 맥락을 예술가처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적용하자면, 권력자와 청중은 자기 이익에 부합하다면 진실과 무관한 개소리도 기꺼이 내뱉고 받아들이고 있기에, 오늘날은 '개소리의 시대'라 칭할 만하다. 저자들은 언론이 거짓말에 맞서고 개소리를 걸러내는 '제4의 권력'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해주기를 바라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함께 찾아보고자 나섰다.


세 명의 저자들이 각자 맡은 영역이 분명한 책이다. 전반적인 구성을 보면, PD는 언론에 관한 이슈를 사진자료, 영화 소개 등의 개요로 선보이고, 변호사는 연상되는 그림을 읽어주며 해당 주제를 서술하고, 정치철학자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며 핵심 문제를 정리, 논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구성 방식과 각 주제별 내용을 보면, 한 가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접근했기에 흥미로울 뿐 아니라,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책에서 제시된 이슈에 별 관심이 없던 독자들에게도 '언론술사'들의 행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듯하다. 이는 분명히 이 책의 장점이자 독특한 지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담아낸 내용의 무게와 비중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팬데믹 시대 가짜 뉴스를 퍼나르는 언론의 모습부터 여론몰이, 검언유착, 재난 보도, 친일 보도, 대북 보도, 사생활 보도의 문제점, 5.18 광주와 6월 민주항쟁 당시의 언론,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의 모습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우리 시대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식견을 담아주기를 기대했다. 제시된 많은 자료(사진, 그림, 책 소개)는 핵심 주제 언저리에 머물면서, 그 주제를 이해하기 위한 우회적 혹은 상징적 장치로 기능하거나 오히려 시선을 분산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문제점을 꿰뚫고 파고들 때는 에둘러 말하는 방식보다 직설 화법이 많은 내용을 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들이 글을 쓴 의도를 헤아려본다면, 프롤로그 중 "언론이 맞는 고난 위에 비난을 더하기 위한 책이 아니에요."라는 표현과 연관성이 있겠다. 어쩌면 저자들은 독자들이 혹 날이 선 비판 내용에 공분과 갑갑증이 생기지 않도록, 그림도 감상하며 쉬어가면서 읽도록 배려한 것일지 모르겠다. 이들의 친절한 경어체를 따라가면서, 논리와 표현을 들여다본다.


여론조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이게 여론조사의 결과이니 옳다'가 아니라, '그 여론의 판단이 얼마나 민주적 삶의 원리에 부합하는가'부터 살피는 것이다. 저자들은 징벌적손해배상제에 대한 입장을 질문 형태로 서술한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하지만, 기본적 사실에도 충실하지 않은 보도를 해왔던 모습을 보면 과연 언론의 자유가 오보할 자유, 확인 없이 보도할 자유인가. 국민들의 정파적 태도를 부추기며 진영 간의 혐오와 적대감을 확산하는 보도를 내보낸 책임은 없는가.


검찰은 언론의 주요 취재원으로, 언론은 비리 수사와 재판 등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사안에 대해 빠른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문제는 검찰 말만 믿고 받아쓰기하듯 기사를 써대는 것이다. 검언유착으로 재판 전에 여론 법정에서 유죄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법정도 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언론은 검사 한쪽의 입장을 보도할 게 아니라, 검사와 피고인이 어떤 주장을 펼치고 어떤 증거를 내놓는지, 그 안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


친일 보도와 관련한 내용은 역사적 배경 설명과 함께 서술되어 있다. 저자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감각을 잃어가는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친일'을 일삼던 이들이 자신들의 행적을 가리고 사회적 지탄을 돌리는 데 '반공'과 '반북' 프레임을 사용했다는 것, 그런 프레임이 작동될 수 있었던 배경은 사회적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 그중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였다는 사실을 명시한다. 일제강점기에 독립 대신 밥그릇 싸움만 하던 이들 언론사는, 정파적 이익에 따라 분단을 조장하고 군사독재를 지지했으며 여전히 정파성의 틀에 갇힌 보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친일 보도를 비롯해 대북 보도는 언론사에 한정된 문제를 넘어서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부분인 듯하다. 그만큼 언론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저자들은 보편복지, 아동학대 사건, 인종 차별, 노동문제 등을 다루는 맥락에서, 언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언론술사'의 범주 속에 거짓과 막말을 쏟아내는 언론뿐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청중도 포함시켰다는 점을 상기해본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언론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비난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현재 언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직시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이슈가 기사화될 때 과연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비판적으로 읽어내면 좋을지 모색해보려는 듯 보인다. 물론 언론이 사실에 대한 심층 보도를 하는 기본 역할에 충실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전제가 되어 있지만.


오래전 정파가 다른 두 신문사의 주요 기사 혹은 사설을 비교하며 읽은 적이 있다. 헤드라인을 어떻게 달았는지, 메인 사진을 무엇으로 내걸었는지 주의 깊게 보기도 했다. 이 책을 보면서, 가짜 뉴스가 팽배한 오늘날, 기사화된 내용들에 좀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곧 선거철이 다가올 텐데, 그때 나도 모르게 '언론술사'가 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실상 마음속 깊이, 우리 정치와 언론에 대한 피로도가 가중되는 느낌부터 배제하는 게 절실하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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